돈 좀 아낍시다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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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좀 아낍시다

2021.01.25

연초에 모 정부 부처의 시무식을 온라인으로 진행한다며, 아나운서가 진행을 하면 좋겠다고 협조 요청이 왔습니다. 아나운서는 상업적인 행사의 출연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만, 정부 부처의 요청에는 대체적으로 협조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출연료의 경우도 김영란 법의 취지를 살려서 과도하게 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때가 때인지라, 일이백만 원이라도 돈을 더 써가면서 시무식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재난 지원금으로 수조 원을 썼으니 고작 몇 백 만원은 돈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써야 할 돈과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돈은 구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난해 코로나 사태로 지자체의 축제가 불가능해지자 어떤 지자체는 축제를 취소해 예산을 절약한 반면, 졸속으로 온라인 축제를 강행해서 수억 원의 예산을 효과 없이 쓴 곳도 꽤 많았습니다. 구로 G페스티벌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2020 구로G페스티벌 온라인 전환 안내 영상은 4개월 동안 175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명인과 가수들이 출연한 동영상도 제작했는데 조회수가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돈은 써야 하겠고, 코로나 시국이라 사람들이 모여서는 안 되겠고 결국 생각해낸 것이 동영상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리는 것이었는데, 출연자와 기획사의 주머니만 채우고 세금은 낭비한 꼴이 됐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코로나 시대에 집콕 홍보 영상을 만들었는데, 온가족이 거실에서 방방 뛰면서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층간 소음 유발과 5명 이상의 인원이 실내에 모여 춤을 추는 행위는 방역지침에 어긋난다는 비난이 일자, 복지부는 “코로나로 인한 우울감을 역동적이고 힘찬 댄스를 통해서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해명하고, 사전에 충분히 여러 사항을 고려하지 못해 물의를 빚었다며 사과를 했습니다.

영상 제작과 홍보에도 세금이 쓰였을 텐데, 돈 써서 하는 일이 왜들 그 모양일까요? 그리고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왜 쓸데없이 영상을 만들어서 논란을 자초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요즘 같은 때는 보건복지부가 돈을 써야 할 곳이 정말 많을 것 같은데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몇 푼 되지 않는 돈에 너무 쌍심지를 켜는 것 아니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써야 할 곳에 수 조원을 쓰는 것은 아까운 돈이 아니지만, 단돈 백 원이라도 쓸데없는 데 쓰는 돈은 아까운 법입니다. 평생 대중교통만 타고 다니며 교통비를 아끼는 가장도 자식들 대학 등록금을 아까워하지 않고 내는 법입니다. 세금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국가의 가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이 낭비를 하면 식솔들은 굶습니다.

유리알 급여를 받으면서 필자가 평생 나라에 낸 세금이 얼마일까 계산해보니 억 단위가 되는 것 같습니다. 숱한 야근과 출장, 스트레스를 감내하면서 버는 돈인데 국가는 당연하게 점점 더 많은 세금을 요구합니다. “엤다! 세금.” 이라고 호기 있게 얘기하면서 세금을 던져 주면 폼이라도 낼 수 있을 텐데, 내 손에 급여가 들어오기도 전에 낚아채 갑니다. 고맙다는 말도 없이 가져갔으면 제대로 아껴가면서 잘 쓰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세금 내는 국민은 그저 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막가는 잔치를 벌이고, 쓰지 않아도 되는 돈들을 쓰는 거겠지요.

이 모든 것이 포퓰리즘 때문이라는 비판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는데, 정치하는 사람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듯합니다.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기 때문에 재정상황, 재원 여건도 고려해야 할 중요한 정책 변수 중 하나라는 점을 늘 기억해야 한다.”는 홍남기 부총리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자영업 손실보상제 법제화’를 논의하자는 정세균 총리의 지시에 나라 곳간을 책임지는 부총리의 소신을 얘기한 것인데, 코로나로 어려운 민생을 살피기 위한 재정 지출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쓸데없이 돈을 쓰는 일은 단 몇 푼이라도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 지리산 산청 곶감 축제가 온라인으로 열렸습니다. 홈페이지 방문자가 25만 명이나 됐고, 직거래를 통한 온라인 곶감 판매가 330억 원이나 되는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필자가 뒤늦게 알고 인터넷으로 곶감을 주문하려고 했더니 모두 품절이었습니다. 이런 축제는 지역 농가와 소비자 모두에게 즐거움과 이익을 선사합니다. 국민이 낸 세금은 이렇게 써야 합니다. 생각 없이 돈만 쓰는 기획을 하고 그 결과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세금 먹는 하마 같은 분들이 꼭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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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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