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아들을 바꿔놓은 교양 수업 [권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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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아들을 바꿔놓은 교양 수업

2021.01.13

코로나로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면서 지난 학기 내내 아들은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고, 저는 온라인 수업을 하였습니다. 아들은 일찌감치 수학, 과학 과목을 좋아하여 초등 고학년 때부터 이과 쪽 공부에 치우쳤습니다. 고등학교도 그쪽으로 진학을 했고 지금은 전산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그런 아들을 보며 늘 근심거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너무 책읽기, 글쓰기, 사고하기가 부족하다는 걱정입니다. 아예 난 그런 거 못해, 싫어, 재미없어 라며 장벽을 치고 삽니다.

주위에서는 필자의 그런 걱정에 전공이 좋아 사회에 나가 잘 살 텐데 무슨 걱정이냐며 핀잔을 주곤 합니다. 하지만 인문학의 가치와 필요성을 잘 아는 필자한테는 그게 참 심각하게 느껴졌습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월급 많이 받고 경제적으로 걱정 없이 사는 게 꼭 잘 사는 것은 아니니까요.

요즘 젊은이들은 물질적 성공에 큰 가치를 두고 그것을 이루어내는 데 전력을 쏟는 것 같습니다. 최근 20대부터 재테크 붐이 불어 젊은 세대들이 주식 투자에, 아파트 투자에 여념이 없습니다. 부모세대가 온통 관심이라고는 그런 것밖에 없으니 그들 탓만 할 것도 못됩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 인성이니, 삶의 가치니, 인생철학이니 하는 말들은 듣기만 해도 고루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강단 생활에서 삶의 목적과 방향 감각도 없이 무작정 질주하기만 하는 청춘들을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게다가 그 목적지는 본인이 정한 곳도 아닙니다. 부모님이, 혹은 사회의 잣대가 세워준 목적지입니다. 그들은 너무 일찍부터 달리도록 채찍질을 당해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 목적지에 도달하면 행복할지에 대해서도 물어볼 여유가 없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인문학 교육과정인 클레멘트 코스(The Clemente Course)의 창립자이자 『희망의 인문학』((The Clemente Course in the Humanities)을 집필한 얼 쇼리스(Earl Shorris)는 한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문학은 세상과 잘 지내기 위해서, 제대로 생각할 수 있기 위해서, 그리고 외부의 어떤 ‘무력적인 힘’이 여러분에게 영향을 끼쳐올 때 무조건 반응하기보다는 심사숙고해서 잘 대처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공부입니다.

얼 쇼리스의 이런 주장에 필자는 100% 공감합니다. 그러니 문학, 역사, 철학이라면 몸을 부르르 떠는 아들이 걱정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학기 아들은 교양 필수 학점을 따기 위해 <일본 문학 읽기>라는 강좌를 수강했습니다. 졸업 학점을 위해 피할 수 없으니 그동안 애니메이션을 많이 봐서 좀 친근하다고 느낀 일본 문학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라쇼몽> 등의 단편을 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비롯하여 일본 대표 단편들을 읽는 것 같았습니다. 발표 준비를 하면서 필자인 엄마랑 토론도 하곤 했습니다. 그런 아들에게서 이상한 변화가 엿보였습니다. 처음으로 문학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소 난해하다고 할 수 있는 모더니즘류 소설들을 읽으면서 그 난해함과 뜻밖의 심오함에 놀라는 것 같았습니다. 아들은 워낙 문학적 바탕도, 소질도 없는 터라 노력에 비해 그저 그런 성적을 받고 그 강좌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방학하고 며칠 지난 뒤 아들이 책을 사 들고 들어왔습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억>이라는 책이었습니다. 꽤 두꺼운 두 권의 책이었습니다. 아들이 쑥스러운지 “표지가 멋있어서 사고 싶었어요.”라고 툭 내뱉었습니다. 그 두꺼운 두 권의 책을 다 읽기 전에 아들은 두 번째 책을 사 왔고, 이어서 세 번째 책을 사 왔습니다. 물론 모두 젊은이들 사이에서 최신 유행하는 소설들이었습니다. 이때쯤에는 반가운 마음과 ‘고전도 좀 읽어야 할 텐데...’하는 서운한 마음이 교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엄마 우리 집에 <데미안> 있지요?”라고 물었습니다. 하마터면 ‘그 나이 되도록 <데미안>도 안 읽었니?’ 하는 말이 나올 뻔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필자는 문고판을 탐독하던 중3 때 그 책을 처음 읽었으니까요. 물론 당시에는 거의 이해하지 못해 대학 시절 다시 읽어야 했지만 말입니다.

서재를 뒤져 책의 먼지를 털어 아들에게 내밀었습니다. 책의 표지부터 안의 편집까지 묵은 냄새가 푹푹 나는 낡은 책이었습니다. 아들이 거부감을 느낄 만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그런 책의 꼴에는 상관없이 말했습니다. “왜 사람들이 이 책을 자꾸 말하는지 궁금해서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아들은 그 책과 오래도록 씨름을 했습니다. 후반부에 가서는 너무 어려워서 하나도 이해가 안 간다고 징징대면서도 그 책을 읽어내려 애썼습니다.

그런 아들의 변화를 보며 <일본 문학 읽기>라는 강좌도, 그걸 지도하신 교수님께도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엄마가 해주지 못했던, 문학에 대한 관심을 심어 주었으니까요. 아들의 문학에 대한 관심이 한때의 호기심으로 멈추지 않는다면 그것을 통해 세상과, 사회와, 인간과 삶의 면면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고 생각하는 시각을 길러갈 테니까요. 덕분에 아들이 잘 먹고 잘 사는 법이 아닌, 사람답게 사는 법도 생각하며 살아갈 테니까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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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권오숙

한국외대에서 셰익스피어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현재 한국외대, 서울과학기술대 외래교수, 한국셰익스피어학회 연구이사. 주요 저서 『셰익스피어: 연극으로 인간의 본성을 해부하다』 『청소년을 위한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와 후기 구조주의』, 『셰익스피어 그림으로 읽기』 등. 『햄릿』, 『맥베스』,『리어 왕』, 『오셀로』, 『베니스의 상인』, 『살로메』 등 역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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