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신년 회견을 지켜본다 [임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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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신년 회견을 지켜본다

2021.01.07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할 모양입니다. 시기와 방식이 확정된 건 없지만 이달 중순 이후 2월이 되기 전에 기자회견을 할 것 같습니다. 궁금한 것은 참 많습니다. 우선 이명박·박근혜 두 전 대통령의 사면 문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적절한 시기에 두 전 대통령의 사면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말한 바 있으니 이에 관한 질문이 나올 것이고, 대통령은 답을 해야겠지요.

코로나19 방역과 백신 확보문제, 부동산 대책을 비롯한 민생문제, 추미애-윤석열 갈등으로 전락한 소위 ‘검찰개혁’, 남북상황, 새로워져야 할 한미관계, 4·7 재보선과 내년 대선 등 질문할 거리가 정말 많아 보입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통합과 소통을 강조하며 취임했지만 기자회견은 고작 세 번, 취임 100일 회견까지 치면 네 번 했습니다. 이번에 이어 내년 초에 또 연례 회견을 해도 기껏 여섯 번입니다. 박근혜 7회, 이명박 9회, 노무현 45회, 김대중 20회와 비교가 안 됩니다. 언론과 담을 쌓고 살아온 셈입니다. 심지어 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뉴질랜드 순방길에 나선 2018년 12월 1일 기내 간담회 때는 “(국내문제는) 짧게라도 질문을 받지 않고 답하지도 않겠다”고 아예 입을 막아버렸습니다.

문 대통령이 기자들을 제대로 만난 건 취임 100일 회견(2017년 8월 17일)이었습니다. 그 뒤 2018년 신년회견은 나름대로 활발했습니다. 각본대로 문답을 주고받던 박근혜 전 대통령 때와 달라 내외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2019년 1월 10일 신년회견에서 “경제 기조를 안 바꾸는 자신감의 근거”를 묻는 질문에 맞닥뜨렸습니다, 1대 1 대담으로 진행된 2019년 5월 취임 2주년 회견은 질문 기자가 무례하다는 둥 논란이 빚어졌습니다. 이어 2020년 1월 14일 신년회견에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마음의 빚” 운운했다가 지금까지도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기자회견을 할 때마다 재미를 보지 못한 거지요. 한마디로 체통을 구기고 김이 샜는데 기자들을 만나고 싶겠습니까?

게다가 답변하기 난처한 문제, 대통령이 상황에 대해 어둡고 무지하거나 나서봤자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 늘어났으니 언론이 성가시고 기자들이 귀찮아지는 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임기는 얼마 남지 않았는데 부정적 평가와 반감은 자꾸 높아지고 코로나19 때문에 즐거운 해외여행 외교도 할 수 없으니 정말 답답하고 갑갑할 것입니다.

집값과 전셋값 폭등, 세금 폭탄, 일자리 전멸, 특권과 반칙의 만연, 집권 여당의 내로남불 행태로 세상이 어지러운 판에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싸움으로 온 국민이 스트레스를 받는데도 대통령은 숨어 있었지요. “월성 1호기는 언제 폐쇄하느냐?”고 물어 조기 폐쇄를 조장해 놓고 본인은 모르쇠로 일관해왔습니다. 또 불량품 재고 창고에나 처박혀 있을 법한 사람들을 자꾸 기용하니 무슨 생각으로 나라를 끌어가는지, 생각이 있기는 한 건지 알고 싶습니다. 코로나 백신 확보에 대해, 구치소 방역에 대해 그렇게 많이 지시를 했다는데 왜 영이 안 서는지도 궁금합니다.

율곡 이이의 글을 보면 선조는 항상 문을 닫고 말없이 앉아 있을 뿐 내관과도 말을 나누지 않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고, 평소 무슨 책을 보며 무슨 말을 듣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율곡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전하께서는 오늘날 국가의 형세에 대해 의관만 정제하고 가만히 앉아 있더라도 끝내 나라를 보전할 수 있다고 여기십니까? 아니면 바로잡아 구제하고 싶어도 대책을 모르십니까? 아니면 뜻이야 있지만 어진 신하를 얻지 못해 일을 추진하기 어렵다고 여기십니까? 그도 아니면 흥하든 망하든 천운에만 맡기고 인력을 들이지 않으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문 대통령도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의전 대통령, 바지사장, 얼굴마담이라는 비아냥이 나도는 것이겠지요.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경향신문 1월 6일자 칼럼에 인용한 어느 문파의 댓글을 재인용하겠습니다. 지난해 12월 26일 한 기자의 기사에 붙인 댓글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어떻게 주변 관리를 이렇게 하셨습니까. (중략) 조국 이후로 어떻게 이렇게 망가집니까. 내 편 챙기다가 정권 다 말아먹고, 내 편 아니면 다 적폐로 돌리고, 국민들 갈라치고, 추미애 같은 사람 내세워서 뭘 어쩌겠다고 기용해서 이 사달을 만듭니까. 내년 7월이면 나갈 총장 그렇게 몰아붙여야 했습니까? 자기 정치하는 추미애에게 속도 조절을 요구하거나 말 안 들으면 경고하셨어야죠. 이 중요한 시기에 법무부 장관이 모든 이슈 독점하게 놔두고 그나마 정권 운영동력이었던 방역도 구멍 나고, 부동산 말아먹고, 외교도 특별한 성과가 없고, 정치는 실종되고. 이게 뭡니까 대체.”

문파의 비판도 이 정도입니다. 남은 임기는 1년 4개월인데, 이미 잘하기는 어려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 본인과 여당이 저질러 놓은 잘못과 오류를 바로잡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습니다. 지지율이 30% 중반으로 고착되면 레임덕이 본격화하게 됩니다. 지지율이 지금 이 정도나 되는 것도 나로서는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이번 신년회견은 뭘 새롭게 어떻게 하겠다고 내세우고 선언하는 행사가 아니라 과오를 솔직히 털어놓고 인정하고 사과하는 자리, 그래서 국민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주는 자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의 기자회견을 나는 물고기가 튀듯 활발발(活潑潑)하다고 평가한 적이 있습니다. 생각이 다르더라도 토론이 활발하면 보기에 좋고 국민들이 새로 활력을 얻게 됩니다.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하더라도 모처럼의 회견이 시간 낭비, 전파 낭비가 되지는 않도록 하십시오.

아울러, 기자들에게도 주문하고 싶습니다.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이란 없습니다. 질문은 공격적이되 태도가 무례하지 않으면 됩니다. 질문은 기자의 특권이자 의무입니다. 질문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자는 사회감시 역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거리끼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물을 것을 제대로 물어 질문의 힘을 보여주기 바랍니다. ^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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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철순(任喆淳)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역임. 현재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등 수상. 저서 ‘노래도 늙는구나’, ‘효자손으로도 때리지 말라’, ‘손들지 않는 기자들’, ‘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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