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척하라, 정의가 제척되지 않게 [고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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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척하라, 정의가 제척되지 않게

2020.12.23

윤석열 검찰총장을 징계한 결정이 법의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의 절차상 위법, 방어권 침해, 징계사유 부당성’을 이유로 징계 집행을 정지해 달라는 소송이 서울행정법원에 제기됐습니다. 징계 위원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 사람이 들어갔다는 것이고, 그 사람들은 스스로 심판자 자리에서 빠져나오거나(회피), 그 심판에 참여하면 안 되므로(기피), 징계위 구성이 위법하다고 주장합니다.

민사소송법 제41조(제척 이유)와 제49조(제척)에는 ‘1. 법관 또는 그 배우자나 배우자였던 사람이 사건의 당사자가 되거나, 사건의 당사자와 공동권리자ㆍ공동의무자 또는 상환의무자의 관계에 있는 때, 2. 법관이 당사자와 친족의 관계에 있거나 그러한 관계에 있었을 때, 3. 법관이 사건에 관하여 증언이나 감정하였을 때, 4. 법관이 사건당사자의 대리인이었거나 대리인이 된 때, 5. 법관이 불복사건의 이전 심급의 재판에 관여하였을 때’에 해당할 때에는 그 판사는 그 재판을 맡을 수 없습니다. 분쟁을 다루는 소송에서 기피나 회피 제도는 ‘선수가 심판까지 맡을 수 없다’는 것이 기본입니다.

한편, 다른 곳에서는 ‘선수가 심판을 맡는 식’으로 운영되는 데가 없을까요?

먼저,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자격을 살펴보죠. 법원조직법 제42조(대법관 임용자격)에 ‘20년 이상 1. 판사ㆍ검사ㆍ변호사 2.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서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법률에 관한 사무에 종사한 사람 3.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서 공인된 대학의 법률학 조교수 이상으로 재직한 사람’ 중에서 45세 이상인 사람이 될 수 있게 규정돼 있습니다. 또, 헌법재판관은 ‘1. 판사, 검사, 변호사 2.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서 국가기관, 국영·공영 기업체, 공공기관 또는 그 밖의 법인에서 법률에 관한 사무에 종사한 사람 3.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서 공인된 대학의 법률학 조교수 이상의 직에 있던 사람’에서 15년 이상 있던 40세 이상인 사람 중에서 임명합니다.

위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은 현재 경력이나 자격을 기준으로 정했습니다. 저렇게 정하면 ‘선수가 심판을 겸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판사 검사 변호사 관련 업역에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면 아득합니다. 정부입법으로 추진하려고 하면 당장 법무부, 법제처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국회로 넘어가더라도 각 상임위 법률심사소위에 변호사 출신 국회의원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넘기 힘들고, 우여곡절 끝에 상임위를 넘어도 다음 단계인 법사위에는 대부분 변호사 출신이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니 국회를 통해 변호사 제도를 바로잡기란 꿈꾸기 어렵습니다. 결국 정부에서는 법무부와 법제처, 국회에서는 변호사 출신 의원(선수)이 심판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소송에서 최종 심판자는 대법관입니다. 대법관은 그 임기를 마치면 변호사로 활동할 사람입니다. 미래의 선수가 지금 심판 자리에 있습니다. 법률의 적용과 해석에서 헌법에 위반되는지 최종 판단자는 헌법재판관입니다. 그런데 헌법재판관 임기를 마치면 변호사로 돌아갈 사람들입니다. 변리사법을 둘러싼 사건에서, 미래의 선수가 지금 심판 자리에 있을 때, 바로잡기가 얼마나 힘드는 지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미래 선수가 심판 자리에 있을 때, 자기 목을 죄는 제도에 손을 들어 줄 수 있을까요? 실제 사건을 경험해 보면 결코 그들의 판단이 ‘정의롭다, 헌법 정신에 맞다, 공정하다’고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정녕 제도가 공정해지려면 ‘국회의원은 변호사 업역 관련 입법 절차에서 빠져라,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은 임기를 마친 뒤 변호사로 활동할 수 없다’는 것을 제도로 도입해야 합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사건은 워낙 관심이 높고, 온 국민이 지켜보는 사건이니 ‘선수와 심판 역할, 즉 선수이면서 심판을 맡았는지’를 엄격하게 판단하겠지요. 국민의 관심을 많이 끌지 못하지만 현실적으로 공정 사회로 가는 데 꼭 필요한 제도, 즉 국회의원, 대법관, 헌법재판관이 현재 또는 미래 선수가 심판 자리에 앉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사회에서 ‘전관 비리’라는 말이 많이 줄어들고, 그만큼 공정한 사회로 갑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선진화되면 좋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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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고영회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1981)와 박사과정을 수료(2003)했으며, 변리사와 기술사 자격(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가 있습니다.
대한변리사회 회장, 대한기술사회 회장, 과실연 공동대표, 서울중앙지법 민사조정위원을 지냈고, 지금은 서울중앙지검 형사조정위원과 검찰시민위원,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법원 감정인입니다. 현재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와 ㈜성건엔지니어링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mymail@patinf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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