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백당나무 열매와 ‘사랑의 열매’[박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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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백당나무 열매와 ‘사랑의 열매’

202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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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당나무 (인동과) 학명 Viburnum opulus var. calvescens

한겨울의 황량한 숲속에서 루비처럼 빛나는 백당나무 열매를 보면 ‘사랑의 열매’가 떠오릅니다. ‘사랑의 열매’는 해마다 12월이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자선냄비와 함께 한 해 끝자락의 상징물이기도 합니다. 뉴스 앵커의 옷깃에 매단 사랑의 열매가 보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이제껏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숱한 사건과 코로나 19 대유행으로 점철된 한 해의 12월이 되었나 봅니다. 일상이 깨지고, 상식과 관행이 뒤집히고 혼란스럽기만 했던 올 한 해도 어느새 저물어 가나 봅니다.

산야에 풀도 꽃도 없는 12월은 황량하기만 합니다. 봄부터 꽃을 찾아 헤매대던 꽃쟁이들에게는 푸른 초목과 꽃이 그립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때쯤 나타난 방송인과 소위 유명 인사들의 옷깃에 달린, ‘사랑의 열매’라고 불리는 배지에 유달리 눈길이 갑니다. 언제부터인가 저에게는 이 배지를 볼 때마다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짙은 초록빛 줄기와 강렬한 빨간 빛의 탐스러운 열매가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저 배지는 어떤 나무의 열매일까? 어떤 나무에서 유래했을까?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보니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홈페이지에 ‘백당나무와 사랑의 열매’라는 항목에 아래와 같은 설명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랑의 열매는 1970년 초부터 수재의연금과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금할 때 보건복지부 산하 이웃돕기추진운동본부에서 사랑의 열매를 ‘상징’으로 사용해왔으며, 사랑의 열매 형태는 우리나라 야산에 자생하고 있는 산열매를 형상화했습니다. 한편, 2003년 2월 산림청에서 “백당나무”를 이달의 나무로 선정하면서 사랑의 열매와 닮은 점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글을 살펴보면 사랑의 열매가 무슨 나무의 열매라고 딱히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야산에 자생하고 있는 산열매를 형상화’한 것이라고만 했을 뿐이며 산림청에서 설명한 백당나무를 애매하게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출처에 관한 명확한 설명이 어디에도 없다 보니 야생화를 좋아하며 꽃을 찾는 꽃쟁이들 사이에서는 ‘사랑의 열매’ 유래에 관하여 나름대로 타당성 있는 여러 설이 나돌고 있습니다.

사랑의 열매를 닮은 나무 열매로는 백당나무 외에도 겨울철 야산에서 만날 수 있는 호랑가시나무, 백량금. 피라칸타, 낙상홍 등이 있습니다. 이들 중 크리스마스 카드와 장식에 사용되는 호랑가시나무는 잎의 가시, 붉은 열매가 그리스도의 가시 면류관, 붉은 피 등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12월의 모금 활동과 나눔, 사랑을 의미한다는 차원에서 호랑가시나무가 사랑의 열매와 가장 많은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랑의 열매’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열매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저는 한겨울에 백당나무 열매를 볼 적마다 ‘사랑의 열매’가 연상됩니다. 백당나무는 위에서 말한 호랑가시나무, 백량금. 피라칸타와 달리 남부지역만이 아닌 우리나라 전 지역에 고루 자생하고 있습니다. 또한 찬바람 휘몰아치는 겨울 숲속에서 사랑의 열매처럼 맑고 영롱한 빛의 새빨간 열매를 매달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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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이 많은 꽃, 새빨간 열매가 돋보이는 백당나무

‘마음’이라는 꽃말을 가진 백당나무는 북반구의 온대와 아열대에 널리 분포하는 낙엽 활엽관목입니다. 잎은 마주나고 끝이 세 개로 갈라집니다. 꽃은 5∼6월에 흰색으로 핍니다. 가장자리의 크고 하얀 꽃은 곤충을 유혹하기 위한 무성화(無性花)이고 가운데 부분의 작은 꽃들이 수술과 암술을 가지고 열매를 맺는 정상화(正常花)입니다. 열매는 핵과(核果)로서 둥글고 빨간색입니다. 아주 밝고 맑은 빨간 구슬 같은 모양의 열매는 가을에 익어 겨울까지 달려 꽃보다 붉은 열매가 더 돋보이는 관상수입니다.

백당나무 이름의 유래는 꽃이 흰색이고 당분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꿀이 많아 밀원(蜜源)식물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백당나무의 붉은 열매는 겨울 산새의 비상용 먹거리입니다. 깨물면 단물이 톡 터질 것만 같이 맑고 곱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단맛이 아니라 맛이 씁니다. 겨울 먹거리가 눈에 묻히거나 바닥이 날 때까지는 산새도 별로 접근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겨울이 다 가도록 열매를 산새들이 남겨둔 까닭은 냄새와 맛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꽃말이 ‘마음’인 백당나무, 한여름에는 벌, 나비에게 풍부한 꿀을 제공하고 먹거리가 귀한 한겨울에는 산새의 비상용 먹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사랑의 열매가 갖는 의미에 부합한 나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 개의 빨간 열매가 달린 사랑의 열매는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빨간색은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하나로 모인 청색 줄기는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사랑의 열매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정신을 담고 있는 상징물입니다.

어둡고 춥고 황량한 겨울 숲속에서 만나면 포근하고 따뜻함을 전해 주는 백당나무 열매를 닮은 ‘사랑의 열매’를 봅니다. ‘따뜻한 사랑의 마음과 하나로 모인, 더불어 사는 사회’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작금의 암울한 우리 사회를 보면 분노가 치밉니다. 오직 내 편, 남의 편으로 딱 갈라져 기본 상식도 양심도 저버린 뻔뻔함과 몰염치로만 치달아 집단 최면에 빠져버린 것 같습니다. 한 해를 보내며 새해를 기다리는 세밑에 ‘사랑의 열매’가 갖는 숭고한 의미를 어떻게 하면 우리 마음속과 사회에 되살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집단 최면에 빠져 이성과 합리성을 잃어버린 편갈림 사회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책임과 봉사 정신으로 사회를 이끌어 가야 할 여야(與野) 의원 나리들이 몰상식한 집단으로만 보이니 어찌하면 좋습니까?

정의의 판단은 지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 상식으로 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의 목적, 그것도 일방적으로 설정한, 그 목적 달성이 모든 과정과 절차는 위법 부당해도 발전적 방향이며 민주화라는 집단 최면에 함몰된 궤변만 넘쳐납니다. 이 판국에 지성과 상식, 교양과 예의, 원로와 초보의 차이점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저 몰염치와 뻔뻔함, 위선과 거짓, 내로남불, 변하여 변한다는 무원칙의 난장판이 펼쳐지는 세상입니다. 이 난감한 시국에 ‘사랑의 열매’가 지닌 뜻이 마법처럼 번져나게 할 수는 없을까? ‘사랑의 열매’를 바라보며 참으로 참담하고 답답한 심정으로 새해의 꿈도 잃고, 가는 한 해를 탄식으로 보내야만 하나 봅니다.

(2020. 12. 15 자유칼럼)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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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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