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안긴 혹독한 신참례(新參禮) [신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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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안긴 혹독한 신참례(新參禮)

2020.11.12

농민의 자격 같은 세 가지 기본 조건을 지난 3월부터 준비해 지난달 말 다 갖췄습니다. 농업경영체는 지난 7월, 농지원부는 8월에 등록을 마쳤으며 농협에는 10월 말에 조합원으로 가입했습니다. 신고서에 잉크도 마르지 않아 풋내가 물씬 풍기는 참신한 신참입니다. 의사자격증을 따고서도 인턴 레지던트를 거쳐야 제대로 의사가 되는 것처럼 농부도 단계별로 배울 일이 참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농업을 해 오신 분들께는 죄송합니다만 이제부터는 직업란에 농부라고 쓸 작정입니다.

올 농사는 천방지축 좌충우돌이었습니다.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어릴 때 어깨너머로 배운 것과 지난 몇 년 간 집 앞 화단에다 팬지 코스모스 상추 고추 오이 가지 토마토 등을 길러 본 것이 전부인데 겁도 없이 여섯 마지기 농사를 짓겠다고 달려든 결과지요.

봄날 굴삭기와 덤프트럭을 동원, 잡초와 수목이 우거진 농토를 정리하는 일부터 난관이었습니다. 모종 때는 곁눈질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들깨 파종 과정에서는 숫제 창피함을 느꼈습니다. 파종은 오래전부터 아시던 분이 직접 해 주셨습니다. 씨를 밭에 뿌려주고 새가 쪼아 먹지 못하게 부직포로 덮었습니다. 모종할 때는 더 당황했습니다. 그분은 이랑 간격은 충분하게 모종은 한꺼번에 3~4포기를 모아 중간을 휘게 땅에 묻으면 좋다고 설명했습니다.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성장을 약간 억제하는 것이 효과적이랍니다. 키가 너무 크면 송아리가 많이 달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할로윈 축제 때 ‘귀신을 쫓기 위해 조각한다’는 호박씨도 심었습니다. 개당 30~40㎏ 아주 크면 100㎏까지도 자란다고 소개된 것입니다. 씨앗 스무 개를 심었는데 싹이 튼 것은 고작 세 개뿐이었습니다. 줄기가 채 1m도 자라지 않았습니다. 물론 열매는 달리지 않았고요. 이밖에도 옥수수 콩 취나물 등을 파종했는데 잘 자라지 않았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올해 밀어닥친 세 차례의 태풍 때 개울둑이 터져 토사가 농토를 덮었습니다. 산과 경계한 지점이라서 고등학교 때 배워 잊고 있었던 선상지(扇狀地) 현상으로 힘들게 가꾸었던 농작물이 몽땅 피해를 입었습니다. 조금 남은 옥수수는 멧돼지가 몰려와 엉망으로 만들었고, 콩은 고라니가 달려들어 잎과 줄기를 뜯어 먹었습니다. 수확한 것은 볼품없는 옥수수 서너 자루, 스물 남짓한 호박이 전부였습니다.

필자는 이 결과를 농사에 처음 발을 내디딘 신참례(또는 신래: 어느 분야에 처음 참가한 자를 괴롭히는 일종의 잘못된 통과의례)라고 웃어넘깁니다.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입니다.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텐데, 자연의 가르침이니 겸손해집니다.

신참례는 고금을 통해 혹독했나 봅니다. 오죽하면 조선 경국대전에 '신래를 침학(侵虐, 심하게 괴롭히고 학대함)하는 자는 장(杖) 60에 처한다'는 벌칙 규정까지 두었겠습니까. 조선 최고기관인 도평의사사가 모든 관직에서 신참들에게 가하는 소위 신고식이 너무 혹독하다는 여론에 태조 1년 11월 25일 금하도록 청했습니다. 얼마나 심했기에 신참례 폐지가 건국 초기 역점 사업 중의 하나가 되었을까요. 후대로 갈수록 더 혹독해졌습니다. 관원이 된 신참에게 말을 주지도 않고 말 값이란 명목으로 돈을 뜯어냈고(태종 1년 윤 3월 23일), 성균관에서 임용대기 중인 신참에게 온갖 잡희(雜戲)를 시킨 관원이 의금부에 갇혔습니다(세종 5년 5월 27일).

신참례를 폐해야 한다고 조선 초기부터 명문화했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변함없습니다. 최근에는 어느 병원 간호사가 신참례(그들은 ‘태움’이라고 했음)를 못 견뎌 세상을 등졌다는 일이 보도되었습니다.

농사 이야기만 나오면 어느 자리에서나 아직도 멈칫멈칫합니다. 농사 경험이 많은 분들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들이 부럽습니다. 아주 형편없었지만 가을걷이가 끝났으니 도로 연수를 마치지 않은 초보운전자와 똑같은 심정으로 내년 농사를 기획합니다. 맨홀 묻기, 전기 가설, 관정 파기, 울타리 설치, 그늘막 마련 등 할 일이 참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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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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