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고구마를 먹지 않나요? [김영환]




www.freecolumn.co.kr

당신은 고구마를 먹지 않나요?

2020.10.08

추석이 지난 강화도 곳곳에서 특산물인 ‘속노랑 고구마’ 수확이 한창입니다. ‘고구마 캐기 체험 및 판매’라고 쓴 플래카드가 곳곳에서 펄럭입니다. 고구마 가격도 약간 올랐죠. 많은 농산물 값이 오르고 있는데 기상 변화와 농약, 농자재 대금 인상의 탓이 클 겁니다. 고구마는 생육기에 장마가 너무 길어 알이 잘아 산출이 줄었다고 합니다.

며칠 전 대낮의 강화도 순환도로 가에 고구마 순을 좋아하는 어린 고라니가 어디로 갈까, 서성대고 있었습니다. 야행성 동물인데 산에 먹을 게 없으니 환한 낮에 버젓이 길가로 내려온 것입니다. 이들은 배가 고프면 고구마 밑 대만 남기고 모조리 먹어 치웁니다. 농민들은 이들을 막으려고 모종을 심기 전에 일찌감치 망을 둘러칩니다. 고구마 재배가 꼭 쉬운 일은 아닙니다.

고구마가 지금은 건강식품, 다이어트 식품으로 유명하지만, 과거에는 기근에 대비하는 구황식물이었습니다. 영조 39년인 1763년, 조엄(1719~1777)은 제11차 조선통신사의 정사(正使)로 약 1년 간 472명을 이끌고 일본을 방문하여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맛본 뒤 그 종자를 갈 때와 돌아올 때 두 차례 얻어 전국에 퍼뜨립니다.

고구마는 대개 ‘사쓰마 이모(薩摩茅)’라고 하는데 대마도에서는 특히 ‘효도 감자’라고 부르며 소중히 해왔습니다. 90퍼센트가 산지인 척박한 대마도에서 몇 차례의 기근을 넘기도록 효를 행했다는 것이죠. 조엄은 저서인 <해사일기(海槎日記)>에 “대마도에서는 먹을 수 있는 풀뿌리가 있어 이를 ‘효행모(孝行茅)’라고 하며 그 소리[倭音]는 '고귀위마(古貴爲麻)'다. 반쯤 익힌 밤과 비슷한 맛으로, 날로도 먹고, 쪄 먹고, 구워 먹고, 쌀 등과 섞어 죽을 끓여 먹고, 밥에 섞어 먹을 수도 있다. 이를 동래[萊州]에서부터 심고, 제주도와 다른 섬에 심고, 전국으로 문익점(文益漸)이 목화를 퍼뜨린 듯 한다면 어찌 우리 백성에게 큰 도움이 아니겠는가.”라며 고구마를 심고 저장하는 방법까지 소상히 쓰면서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일본의 고구마는 중국의 남부에서 1597년 류큐(오키나와)의 미야코지마(宮古島)로 전래하였고 이후 일본의 규슈 지역으로 전파되어 이윽고 대마도에도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선통신사가 부산에서 출발해 대마도, 이키(壹岐)섬을 거쳐 규슈 본섬을 지나가는 사행(使行) 길에서 고구마를 발견한 것은 역사의 지정학적 숙명입니다.

그의 소원대로 ‘고귀위마’는 ‘고구마’라는 이름으로 뿌리내려 조선시대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전역에서 식량난에 허덕이던 민초들의 구황식물로 쓰였습니다. 어릴 적 시장에서 찐 고구마를 몇 개씩 무더기로 좌판에 모아놓고 서민에게 팔던 행상들이 기억납니다. 요즘도 간혹 잔챙이만 남은 남의 밭을 기웃거리다가 고구마를 주워 날로 깎아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선에 새로 도입된 고구마를 길러 농민들이 재미를 보자 그 이득을 가로채려는 탐관오리들은 고구마 순을 뺏어가는 등 재배 농민에게 흡혈귀처럼 달라붙어 생산량이 엄청나게 줄기도 했습니다. 신료들이 폐단을 없애 달라고 상소했습니다.

조선의 산업의 근본은 말할 것도 없이 농업이었죠. 조선에서 농사를 이끄는 소를 죽이는 것은 살인보다 2등급 낮은 중범죄였습니다. 임금과 신하들이 농사를 발전시켜 백성의 삶을 지키려고 고구마 재배, 환곡, 제방과 송수관 조성, 수레, 수차(水車), 소의 보호를 놓고 펼치는 허심탄회한 대화가 실록에 상소와 비답(批答), 전교로 끝없이 이어집니다. 정조대왕은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농사를 지어 살아간다. 농사가 잘되지 못하여 백성들이 곡식이 없으면 나라가 어찌 다스려지겠는가. 나 자신이 먹는 것은 줄일 수 있지만, 백성들이 끼니를 거르게 할 수는 없다.”라며 농민의 근면을 강조하고 배를 채우고 기름지게 할, 맛 좋은 고구마를 적극적으로 심도록 권장했습니다. 농사 발전을 위해 널리 구언(求言)한 상소문들을 읽고선 “인재는 거리가 멀고 가까움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더욱더 알 수 있겠다. 몹시 가상하다.”고 치하하면서 특채를 검토하라고 지시도 하죠.

요즘 나아졌나요? 9월 초 창원시에서 굶어 죽은 후 거의 보름 만에 발견된 정신장애 모녀, 최근 기적적으로 소생한 인천 ‘라면 형제’의 화상, 북한군에 살해되고 불태워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태가 겹쳐집니다. 어디를 봐서 “사람이 먼저다”의 나라인가요.

추석 전에 차례를 지내려고 강화에서 햅쌀을 샀습니다. 최고가 품종인 고시히카리(越光)였습니다. 한번 맛보면 바꾸기 어렵죠. 고시히카리는 2차 대전 전부터 일본 니가타, 후쿠이, 지바 등의 농업연구자들이 시작해 약 10년간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품종입니다. 니가타현 우오누마 산 고시히카리는 일본곡물검정협회의 식미(食味) 랭킹에서 16년간 최상위인 특A급을 받았답니다.

반일이라면 뭐든 물어뜯을 사람들을 보면서 고시히카리와 아키바레(秋晴)는 일본이 개발한 쌀인데 왜 ‘NO JAPAN’ 대상이 아니었을까, 먹는 쌀은 못 하겠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일본 언론은 한국 정부가 한국의 논에서 일본의 벼 품종 ‘추방’사업을 전개한다고 8월 한국 언론을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그러자 일본 인터넷에는 “탈일본 운동 여기까지 왔다. 쌀도 반일이야?”, “일본의 쌀이 분명 맛있는데 왜?”, “맹목적인 반일 하지 말고, 판단은 소비자에게 맡겨야 하잖아.” 라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고시히카리는 국제화하여 미국 캘리포니아 등에서도 생산되고 있습니다.

고구마는 250년 넘는 한일관계의 유대를 갖고 있습니다. 당시 사쓰마 번(藩)에서는 고구마가 반출금지 품목이었는데 몰래 대마도로 유출되었답니다. 작년의 농민신문 인터넷을 보니 일본 규슈에서 2010년에 개발한 신품종 고구마 ‘베니하루카’는 당도가 25브릭스를 넘는데 우리 고구마 재배 면적의 4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밀수 품종'이라는 겁니다. 일본 품종 쌀을 추방하자며 ‘죽창 들고 반일 하자’는 식의 반국제화 세력에 묻고 싶어집니다. 우리 식탁에서 고구마도 추방할 차례냐고요. 일본 벼 품종 추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금 고구마를 입에 대지 않고 있나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