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막는 ‘진인사대천명’ [노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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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막는 ‘진인사대천명’

2020.09.25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관상용 열대어 구피에게 먹이를 줍니다. 베란다에 가지런히 놓인 꽃들에게도 인사를 합니다. 믿음이 두터운 기독교인답게 찬송가를 틀어놓곤 잡곡밥에 된장국, 쌈채소, 멸치호두볶음, 들기름에 지글지글 구운 두부구이를 반찬으로 식사를 합니다. 뒷산을 30분가량 걸어 소화를 시킵니다. 집 안을 청소한 후 둥굴레차를 마시며 뜨개질을 합니다.

여든세 살 엄마의 일상입니다. 봄부터 여름 내내 아들딸에 사위, 며느리, 손주 열한 명의 카디건을 짰습니다. 지금은 귀한 자식을 우리집에 보내준 고마운 사람이라며 사돈들에게 선물할 조끼를 뜨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식사도 대충하고 혼자 우울하게 시간을 보내던 엄마가 변했습니다. 치매 걱정 때문이랍니다. 웬만한 젊은이보다 바삐 손을 놀리고 있습니다.

뜨개질은 단순하지만 정신을 집중해야 해 마음을 가라앉힐 때 좋다고 합니다. 신경이 곤두선 날에는 코가 잘 꿰이지 않거나 코를 빼뜨린다네요. 그러면 아차 싶어 풀어서 다시 뜨면서 심신을 안정시킨답니다. 우리 오남매에게도 뜨개질로 마음을 다스리라고 권유합니다. 스스로를 관리하는 엄마가 참 존경스럽고 고맙습니다.

9월 21일은 ‘치매극복의 날’입니다. 정부가 2017년 치매국가책임제를 도입하며 제정한 법정기념일입니다. 누구도 걸리지 않으리라 자신할 수 없는 치매. 인간의 존엄성마저 앗아가는 치매. 이 끔찍한 질병에 대한 인식 제고와 함께 예방, 관리를 위한 범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정한 날입니다. 국가가 관리할 정도로 심각한 질병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5세 인구의 8~10%가 치매를 앓고 있으며 이 중 절반은 알츠하이머병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15분마다 1명씩 치매 환자가 발생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이런 식이면 2025년에는 국내 치매 환자 수가 1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아찔한 통계입니다.

사람들은 치매도 예쁜 치매, 미운 치매로 분류합니다. 치매를 앓는 이들의 모습이 다양해서겠지요. 얌전했던 사람이 험악한 욕을 한다든가, 폭력을 쓰는 등 가족과 주변 사람을 괴롭히면 미운 치매입니다. 예쁜 치매는 인지 기능이 떨어져 가족을 못 알아보더라도 잘 먹고 잘 자고 온순하게 지내는 이들입니다. 예쁜 치매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를 해볼게요.

아인슈타인은 기차 여행 중 차장이 검표하러 왔는데 표를 찾을 수 없었다. 주머니는 물론 가방까지 다 뒤졌지만 허사였다. 차장은 워낙 유명한 사람인지라 "괜찮습니다. 안 보여줘도 됩니다”라고 했다. 그래도 아인슈타인은 의자 밑을 더듬으며 허둥댔다. “정말 안 보여줘도 됩니다”라는 차장의 말에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한다. “표를 찾아야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 것 아니오.”

치매가 공포의 대상이 된 이유는 뚜렷한 원인과 치료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도 “예방이 중요하다”고 한 목소리를 냅니다. 온라인상에 치매예방수칙, 세대별 치매예방법 등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입니다. 나는 치매예방법 중 치매학회가 내놓은 ‘진인사대천명 수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진)땀 나게 운동하라. (인)정사정없이 담배를 끊어라. (사)회 활동을 열심히 하라. (대)뇌 활성화를 위한 독서·신문 읽기·글쓰기에 힘쓰라. (천)박하게 술 마시지 말라. (명)을 늘리는 음식을 먹으라.”

담배는 처음부터 입에 대지 않아 문제없습니다. 운동을 좋아하니 거의 매일 진땀 나게 하고 있습니다. 직업이 ‘기사 제대로(?) 읽기’인 덕에 매일 뇌를 굴립니다. 몸에 좋다는 음식도 제때 골고루 적당히 잘 먹고 다닙니다. 그런데 술에서 턱 막힙니다. 워낙 술을 좋아하다 보니 입에 대기만 하면 ‘천박’하게 많이 마십니다. 과음·폭음이 치매 위험을 1.7배 높인다니 이젠 술과도 이별을 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치매는 한자로 어리석을 ‘치(癡)’와 어리석을 ‘매(呆)’자를 씁니다. 라틴어로는 ‘정신이 없어진 것’을 뜻합니다. 어리석고 정신이 없어지면 아무리 증상이 순하다 해도 결코 예쁠 수 없습니다. 건강할 때 예방하는 게 아름답고 현명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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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노경아

경향신문 교열기자·사보편집장, 서울연구원(옛 시정개발연구원) 출판담당 연구원을 거쳐 현재 이투데이 부장대우 교열팀장. 우리 어문 칼럼인‘라온 우리말 터’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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