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 오픈 테니스의 해프닝 -조코비치의 실격패 [방석순]



www.freecolumn.co.kr

US 오픈 테니스의 해프닝 -조코비치의 실격패

2020.09.24

경쟁하고 싸우고, 하는 짓은 아마도 살아 있는 것들의 본성일지도 모릅니다. 별로 부추기고 싶지 않은 그런 본성을 오히려 잘 길들이고 훈련시켜 그야말로 공정하고 안전한 룰 안에서 기량을 겨루도록 만든 인간의 창작품이 스포츠라 하겠습니다. 그렇게 경쟁, 투쟁이 스포츠 무대에 오르면서 가장 강조되는 사항이 규칙의 준수요 페어플레이입니다. 규칙이 지켜지지 않고 비신사적인 행위가 발생했을 때의 위험한 결과를 생각하면 너무도 당연한 요구입니다.

지난 13일 뉴욕에서 끝난 올해 두 번째 그랜드슬램 테니스대회 US 오픈에서는 뜻밖의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세계 랭킹 1위이자 톱시드인 최강자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 33, 세르비아)가 뜻밖에 경기 도중 실격패를 당한 것입니다.

남자 단식 16강전에서였습니다. 상대는 20번 시드의 카레뇨 부스타(29, 스페인). 이전 세 차례 대결에서 조코비치는 한 번도 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날따라 부스타의 반격이 만만찮았습니다. 앞서가던 첫 세트에서 자신의 서브 게임까지 빼앗기며 5-6으로 역전당하고 말았습니다. 실망한 듯 조코비치는 주머니에 남아 있던 볼을 꺼내 베이스라인 뒤로 쳐냈습니다. 하필이면 이 볼이 여자 선심의 목에 명중했습니다. 선심은 그 자리에 쓰러지며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물론 조코비치가 선심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자제력을 잃어 하지 말았어야 할 동작을 취한 것입니다.

조코비치는 깜짝 놀라 쓰러진 선심에게 달려가며 사과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심판진은 이 위험한 사태를 야기한 조코비치에게 실격패를 선언했습니다. 조코비치가 거듭 의도하지 않았던 단순 실수였음을 해명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게 바로 그랜드슬램 테니스대회의 규칙이었기 때문입니다. 1995년 윔블던에서는 팀 헨먼(영국)이 볼 걸을, 2017년 데이비스컵에서는 데니스 샤포발로프(캐나다)가 심판을 공으로 맞혀 실격되었습니다.

남자 테니스 빅 3 가운데 유일하게 출전했던 조코비치는 그렇게 대회 중도에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최근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연전연승, 대적할 선수가 없었던 그로서는 허무한 도중하차였습니다. 그랜드슬램 우승 20회의 페더러, 19회의 나달을 추격하던 조코비치의 18회째 우승 기회도 물거품처럼 사라졌습니다.

너무도 아쉬웠지만 조코비치는 자신의 실수와 그에 대한 판정에 수긍, 상대 선수 부스타에게 축하의 악수를 건네고 코트를 떠났습니다. SNS에는 “결코 고의로 한 것은 아니지만 매우 잘못된 행동이었다. 대회 주최 측에도 사과한다. 이번 일을 성숙한 인간으로서 발전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사태는 조코비치 개인은 물론 US 오픈대회로서도 참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최고의 선수가 경기도 제대로 치러보지 못한 채 경기장에서 물러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오른 테니스 스타는 떠나는 모습도 남다르구나, 하는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룰에 승복해 책임지고 물러나면서 상대에 대한 축하 인사도 잊지 않았습니다.

조코비치의 그런 멋진 퇴장은 그날 순간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전부터 그는 상대의 멋진 플레이에 엄지를 치켜세워 칭찬을 보내던 멋쟁이였습니다. 2년 전 부상에서 회복되어 돌아온 호주 오픈 16강전에서 약관의 정현에게 뜻밖에 6-7, 5-7, 6-7로 완패한 후 정현의 어깨를 다독이며 축하해주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빅 3가 모두 빠진 US 오픈 테니스 남자단식 결승에서는 한 번도 그랜드슬램 우승 경력이 없는 2번 시드의 도미니크 팀(27, 오스트리아)과 5번 시드의 알렉산더 즈베레프(23, 독일)가 맞붙었습니다. 초반 두 세트를 2-6, 4-6으로 내리 잃었던 팀은 3세트부터 반격을 펴 6-4, 6-3, 7-6<타이브레이크 8-6>으로 따내며 힘겨운 역전승을 거두었습니다. 4시간이 넘는 혈투가 끝난 후 두 선수는 코로나로 인한 상호 격리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코트를 넘어와 얼싸안은 채 서로를 축하하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 코로나 때문에 관중석의 박수와 함성이 사라진, 텅 빈 코트여서 둘의 포옹은 더욱 애틋해 보였습니다.

▲ 승자 팀(왼쪽)과 패자 즈베레프의 포옹

보름 동안 테니스 코트에서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 아름다운 모습이 연출될 때마다 편법, 탈법, 불법 시비에 거짓과 발뺌, 말 바꾸기와 망언이 낭자한 우리 사회의 그늘진 모습들이 겹쳐 떠올라 머리를 어지럽혔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