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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앞에 ‘개’, 그래도 곱거늘, ‘개상사화’

20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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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상사화 (수선화과) 학명 Lycoris flavescens (붉노랑상사화)

'거리는 멀게, 마음은 가까이’, ‘뭉치면 죽고 헤어지면 산다.' 이제까지 듣고, 보고, 배웠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희한하고 별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팬데믹(pandemic)으로 세상이 확 뒤바뀐 것 같습니다. 곰곰 생각해보니 듣도 보도 못한 세상사가 한둘이 아닙니다, 통일, 화합 외쳐대면서 부추기는 내 편, 네 편 편 가르기로 어느 사이에 사회가 이분법으로 쫙 갈라지니 서로가 불구대천, 앙숙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부모, 형제, 친구, 동창 아랑곳하지 않고 진영 논리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정의, 평등, 공정의 잣대는 내 편인가 아닌가에 따라 양심, 체면, 거리낌도 없이 수시로 들쭉날쭉한 묘한 세상을 맞고 있습니다. 기관도 아닌 개인에 관하여 3억 원짜리 ‘OO백서’가 나오더니 5백만 원짜리 'OO흑서’도 나옵니다. 야릇하게 바뀐 세상사를 조목조목 지적하는 ‘시무 7조’가 나오더니 ‘유창하나 혹세무민하고 편파에 갇혀 졸렬하고 억지스럽다.’라는 ‘사돈 남 말 하는’ 반박문도 나왔습니다. ‘잘못했음’의 지적에 대해서는 어김없이 되받아 한술 더 뜨는 ‘되치기 공세’와 ‘남의 탓’으로 돌리는 데에 이골이 난 뻔뻔함에 엉기가 납니다. 기존의 통념적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떳떳하게 낯 내놓고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를 두고 ‘개판’이라고 합니다. 야릇한 느낌이 드는 용어입니다. 이러함에도 많은 사람이 이 사태를 지지하고 있다는 세상사가 믿기지 않고 야속하기만 합니다.

하늘마저 변했나 봅니다. ‘1973년 기상관측 이래 가장 길었다.’는 장마가 끝났다고 하더니만 다시 태풍 8호 ‘바비’, 태풍 9호 ‘마이삭’, 태풍 10호 ‘하이선’이 연이어 비바람을 몰고 와 산천을 뒤흔들며 할퀴고 지나갔습니다. 많은 강수량과 일조량 부족으로 작물이 잘 자라지 못해 올가을의 풍작은 기대난망이라 합니다. 이토록 엄청난 사람 사는 세상의 변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흐르는 계절 따라 산들꽃은 행여 시기를 놓칠세라 때맞춰 고운 꽃을 다투어 피웁니다. 이 난리 북새통의 세상 변화와 긴 장마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전과 다름없이 계절의 순리 따라 피어난, 곱고 화사한 꽃무리를 만났습니다. 정명(正名)인 붉은상사화보다 개상사화로 더 널리 알려진 꽃입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제껏 대수롭지 않게 넘겨왔던 꽃 이름 앞의 ‘개’자가 부쩍 신경이 쓰입니다.

이름 앞에 ‘개’자가 붙은 꽃이 참 많습니다. ‘변변치 못한 또는 야생의’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배고픈 시절 ‘식용 가능성과 맛’의 차이를 두고 ‘개’와 ‘참’을 구분했던 것으로도 보입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럽고 소탈한 느낌도 드는 앞말입니다. 개꽃, 개살구, 개망초, 개별꽃, 개쑥부쟁이, 개불알꽃, 개양귀비, 개나리... 어느 것 하나 예쁘지 않은 꽃이 없습니다. 개상사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름 앞에는 ‘개’자가 붙어도 곱기만 합니다. 그런데 왜 사람 사는 세상사와 사람 앞에 ‘개’자가 붙으면 그리도 혐오스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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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앞에 ‘개’를 달았지만 화사하기 그지없는 개상사화

상사화(相思花)는 그 이름 한자어가 뜻하는 바와 같이 ‘잎과 꽃이 만날 수 없어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꽃입니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여 상사화라 이름 붙은 꽃으로는 상사화, 붉노랑상사화, 진노랑상사화, 제주상사화, 위도상사화 등이 있습니다. 이중 분홍빛의 꽃을 피우는 상사화를 제외하곤 모두가 개상사화라 불리다가 근래에 들어 각기 제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연노랑 꽃잎에 붉은 꽃밥을 지닌, 아직도 속칭 개상사화라 불리는 이 꽃은 붉노랑상사화와 사뭇 달라 보임에도 붉노랑상사화의 일종으로 분류하고 있어 억울할 것만 같은 꽃입니다. 대부분의 상사화는 꽃 색이 고유색으로 고정되어 있지만, 붉노랑상사화는 흰색, 노란색, 붉은색 등 다양합니다.

풀꽃은 으레 싹이 트고 잎이 나고 햇볕을 받아 자라서 꽃을 피웁니다. 그러고 나서 열매를 남긴 후 햇볕이 약하고 추운 겨울이 되면 사라집니다. 그러나 상사화는 사뭇 다릅니다. 봄이 되면 다른 풀꽃과 마찬가지로 일찍 싹을 틔워 무럭무럭 자라다가 햇볕이 강한 6~7월이면 잎이 말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여름 장마가 끝나고 가을이 시작되는 8~9월이 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그 자리에서 잎도 없이 꽃대만 불쑥 올라, 화사하고 고운 꽃을 피웁니다. 그러나 꽃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이내 시들고 마는 불임(不姙)의 꽃입니다. 흔히 상사화라고도 부르는 꽃무릇이 있는데 이는 생태 사이클이 아주 다릅니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점과 6~7월에 잎이 시들어 사라진다는 공통점은 있습니다. 하지만 꽃무릇은 꽃이 상사화보다 훨씬 작고, 한두 달 늦게 피고, 꽃이 지고 나면 11월경에 새싹이 나와 혹한 속에서 겨울을 납니다. 또한 열매를 맺을 수 있어 종자번식도 가능합니다.

개상사화는 전국적으로 분포하여 야산이나 들, 인가 주변, 절 주변 등 여기저기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꽃입니다. 꽃은 8월 말부터 노란색으로 피지만 개화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수술이 붉게 변합니다.

고유의 이름도 없지만, 여느 상사화와 다른, 황금빛 밝은 색의 곱고 화사한 꽃을 피우고 열매도 맺지 못한 채, 불현듯 사그라지는 개상사화,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 합니다. 이름 앞에 ‘개’자가 붙은 개상사화가 이다지도 곱거늘, 근래 들어와 변한 인간사(人間事)의 판세 앞에 ‘개’자를 붙이기에는, ‘개’자라는 단어마저 너무 아깝고 턱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판세를 무슨 ‘판’이라 이름 지어 불러야 하나? 개상사화 앞에 서니 쓰잘데기 없는 고민거리가 생겼습니다.

(2020. 9월 곱고 화사한 개상사화 앞에서)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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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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