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동판 1549장으로...시간을 담아낸 ‘괴력의 건축가’


올해 ‘젊은건축가상’ 수상한 정웅식


    올해 젊은건축가상(문화체육관광부 주최) 수상자 중 하나로 정웅식(온건축사사사무소 대표)을 선정하면서 심사위원회는 그를 가리켜 “울산에서 활동하는 ‘괴력’의 건축가”라 평했다. “장인의 힘과 정성을 건축의 표면에 담아내는 길을 개척했다. 그의 콘크리트와 동판은 건축가의 땀과 고뇌가 어떻게 건축물을 살아 숨쉬게 하는지 보여줬다.” 그간 주요 건축상 수상자와 수상작은 수도권에 몰렸고 지방은 주목받을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렇지만 지역에도 묵묵히 자기 세계를 구축하며 도시의 풍경을 가꾸는 건축가들이 있다.


울산 구도심 옥교동에 완공해 작년 한국건축가협회상 ‘베스트7’(매년 완성도 높은 건축물 7곳을 선정한다)에 들었던 카페 ‘동네가게 녹슨’은 장인처럼 재료를 파고드는 정웅식의 방식을 보여준다. 최근 이곳에서 만난 그는 “건물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려고 일부러 가끔 들른다”고 했다. ‘시간을 담는 건물’을 지어달라는 요청에 건축가는 과거뿐 아니라 앞으로의 시간까지 담고자 했고, 그 해법이 외벽을 감싼 1549장의 동판이었다.


울산 구도심에 설계한 카페 '동네가게 녹슨'. 불에 그을리고 구긴 1549장의 동판을 외부에 붙여 시간의 흐름에 따른 부식의 효과가 드러나도록 디자인했다. 작년 한국건축가협회 '베스트7'에 선정됐다. /건축사진가 윤준환




금속이 부식돼 가는 모습을 통해 세월의 흐름을 드러내는 건축물들이 종종 있지만 동판을 하나하나 그을리고 구겨서 붙인 녹슨 앞에 섰을 때 느껴지는 공력(功力)은 남다른 것이다. “불길이 닿는 지점마다 온도나 가열 시간이 조금씩 달라지면 한 장의 동판에서도 부식 효과가 다르게 나타날 것으로 봤다. 불규칙한 구김도 비슷한 효과를 낸다. 자연스러운 구김을 표현하기 위해 자갈 위에 동판을 깔고 자동차를 몰며 바퀴로 짓눌러 보기까지 했다.”


결핍이 창의를 낳는다. 금속공예를 연상시키는 ‘녹슨’의 기법은 정웅식이 개발한 콘크리트 기법의 연장 선상에 있는데, 이는 현실의 한계를 디자인으로 극복한 결과물이다. 초보 건축가 시절, 공사비도 부족하고 원하는 수준의 노출 콘크리트 완성도도 얻기 어려웠던 정웅식은 거푸집 안쪽에 강한 불길로 그을린 목재를 대고 콘크리트 반죽을 부어 넣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러면 불탄 고목처럼 거친 질감이 콘크리트 표면에 남는다. 외장재에 들어갈 비용을 절약하는 동시에 독특한 미감을 얻는 이 방식으로 특허도 받았다.


올해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한 온건축사사무소 정웅식 대표. 나뭇결 무늬가 보이는 배경은 실제 나무가 아니라, 나무의 질감을 표현한 콘크리트다. /건축사진가 윤준환




정웅식은 울산에서 태어나 모교인 울산대에서 강의하며 울산에서 설계 사무실을 운영한다. 고향의 풍경을 바꿔나가는 울산 건축가의 뚝심이 ‘프로젝트 용적률 게임’이나 ‘댄스 빌딩’ 같은 소규모 상업 건축물에서 드러난다. 5층짜리인 두 건물은 층이 높아질수록 임대료가 낮아지는 상가 건물의 한계를 건축으로 보완한 결과 독특한 디자인이 도출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용적률’은 2층을 살짝 줄이면서 얻은 면적을 3~5층에 배분했다. 대신 2층에 발코니를 둬서 다각적인 공간 활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후속작 격인 ‘댄스 빌딩’은 3층을 잘록한 허리처럼 줄이고 1·2층과 4·5층을 각각 복층으로 구성한 결과 춤추듯 역동적인 외양을 갖게 됐다. 외피로 쓰인 콘크리트에 금속 가루를 섞어서 빛의 각도나 날씨에 따라 조금씩 다른 질감이 느껴지도록 했다.


2층에서 줄인 면적을 3~5층에 배분한 결과 주변의 비슷비슷한 상가나 주택들과 차별화됐다. 살짝 좁아진 2층에는 대신 다각도로 활용할 수 있는 발코니를 마련했다. 건물 측면의 계단 부분엔 작은 구멍이 촘촘한 금속 소재를 썼다. 반투명한 금속은 건물 내부와 도로 사이에 얇은 커튼을 친 듯한 시각적, 정서적 효과를 낸다. /건축사진가 윤준환




3층이 잘록한 허리처럼 들어간 댄스 빌딩. 독특한 형태를 위한 게 아니라, 3층을 줄이고 1~2층과 4~5층을 각각 복층으로 구성한 결과로 나온 디자인이다. /건축사진가 윤준환


“‘용적률‘은 획일화된 상업 건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했고 ‘댄스 빌딩’은 아파트로 둘러싸인 신시가지에서 강한 몸짓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이 매일같이 마주치는 작은 건축물들이 점점 좋아진다면 도시의 거리도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했다.

울산=채민기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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