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외교 서두를 이유 없다(1) [신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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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외교 서두를 이유 없다(1)

2020.09.08

지난 8월 24일은 대한민국 외교사에 가장 큰 오점(汚點)으로 남은 외교 분야 기념일입니다. 1992년 이날 대한민국은 베이징(중화인민공화국, 이해를 돕기 위한 표기 임)과 수교함과 동시에 타이베이(중화민국)와는 단교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대한민국을 멸망시키려던 베이징에게는 면죄부를 주었고, 상해 임시정부 수립을 지원하고 대한민국 탄생을 도왔으며 6・25 때 우리를 지원한 타이베이에게는 회복 불가능한 상처(배신)를 남겼습니다. 임기 말의 대통령이 북방외교를 마무리하겠다면서 서두르다가 남긴 가장 참담한 외교 결과입니다. 조급함이 만든 아픔이기도 합니다. 그 뒤 우리는 대통령이 임기 내에 못다 한 일을 후임 정권으로 넘겨주는 것이 더욱 빛나는 업적이라는 것을 잊었습니다.

베이징은 수교회담에서 미일 등과 수교 때 내세웠던 ‘하나의 중국 원칙’을 우리에게도 들이밀었고, 수교 협상팀이 (지시에 따랐겠지만) 냉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는 UN에서도 인정한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던 조항을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또 국가 자존심과 명예 원칙 그리고 국가 수립의 정당성을 인정한 UN결의 등 중요한 가치를 스스로 훼손했습니다. 이처럼 한・중 수교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습니다.

시간이 필요하다던 타이베이와의 외교관계는 군사작전(군 출신이라서?) 하듯이 일거에, 매몰차게 끊었습니다. 아시아인(유교)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의(義)를 저버림으로써 우리는 한족(漢族, 베이징 타이베이 모두 포함)에게 믿을 수 없는 국가・국민이 되었습니다. 타이베이에게는 배신자, 베이징에게는 불신의 아이콘으로 낙인찍혔습니다.

지구상의 수많은 국가 중 베이징과 타이베이와 동시에 수교할 수 있는 국가는 대한민국 하나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유일한 권리를 너무 쉽게 포기해 아주 많은 것을 잃었고, 잃고 있으며, 대한민국이 통일되기 전까지는 계속 잃을 것입니다. 베이징과의 수교가 경제적으로 큰 이득이며 북한을 간접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많은 것이 우리만의 생각으로 끝났습니다. 북한은 보라는 듯이 핵무기를 개발해 대한민국을 겁박하며, 베이징은 은근히 이를 후원하는 모습입니다.

랴오둥반도의 다롄 박물관은 모택동 일가의 밀랍 인형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6・25 때 중공군으로 파병돼 전사한 모택동의 아들(모안영)을 중공군의 영웅으로 떠받들기 위한 것이지요. 동시에 베이징이 주장하는 항미원조(抗美援朝)를 대대적으로 홍보합니다. ‘미국에 대항하고 북한을 도왔다’는 즉 대한민국을 말살하려던 내용을 드러내놓고 한국 관광객에게도 자랑합니다. 인형을 본 지 꽤 지났으나 지금까지도 불쾌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는 국운이 걸린 포커 게임에서 북한을 압박할 외교, 경제의 에이스 카드를 손에 쥐고서도 카드를 덮었습니다. 현재 두 카드를 모두 사용할 수만 있다면 한반도의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겁니다. 전 세계가 북한 핵무기 제거를 위해 온갖 제재를 다 가해도 북한 경계를 몰래 넘나드는 중국 물자가 있는 한 100% 제재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삼척동자라도 압니다.

지금부터라도 대한민국이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가지고 차근차근히 베이징과 외교를 펼쳐가야 합니다. 최근 베이징과 수교할 때와 같은 조짐이 여기저기서 감지됩니다. 한족(漢族)의 만만디(萬慢的), 한・베이징 외교에 딱 맞는 말입니다. 얼마 전 조선일보에 게재된 베이징 특파원의 기사로 글을 맺습니다. “1992년 한중(필자 註, 베이징)수교가 이루어졌던 이유 중 하나는 천안문사태로 인한 서방의 제재와 압력에서 탈출하기 위한 중국의 전략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당시 한국은 수교를 서두르면서 중국이 북한을 압박해 도발을 억제해 주길 기대했고, 그런 기대는 실망으로 돌아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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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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