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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막소 간 운동권 대부의 신세타령

2020.09.03

보소 보소 86동지 벗님네야,
가막소에 갇힌 신세, 왜 이리도 처량한가.
태양광 비리 의혹, 이리 뺀질 저리 뺀질,
그동안엔 잘 피해서, 이번에도 풀려날 줄 알았더니,
결국에는 꼬리 밟혀, 쇠고랑을 차게 됐소.
추미애의 미친 장풍, 한국 검찰 완전히는 못 죽였네.
죽긴커녕, 모질게도 살아남아,
내 모가지 칼 들이댄 저 ‘개검’이 악착같소.

올해 5월, 경찰 수사 시작될 때,
내 신세 이리될 줄, 나는 정말 몰랐다오.
그때 내 혐의는 전기공사업법 위반 등이었으나,
몇 해 전에 비슷한 혐의 수사받고 풀려난 적 있는지라,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더니,
경찰이 불구속 송치한 이 내 몸을,
북부지검 개검 나리, 절묘하게 구속하네.

86동지 국회의원 몇몇, 지자체장 두어 서넛 만나서는,
아는 사람 회사에서 취급하는 무선도청 탐지장치를,
관공서와 공공기관, 지자체에 두루두루 납품하게 힘써달라 스리슬쩍 부탁하고,
3억9천 받았다며
변호사법 위반으로 꼼짝없이 나를 엮네, 피할 길이 없었구려.

이제는 수갑 차고 포승줄에 꽁꽁 묶여
구치소와 북부지검 쉴 날 없이 오가면서,
그 돈 받아 혼자 썼냐 누구랑 나눴느냐, 추가 수사 받는 일방,
태양광 비리 의혹 파헤치는 끈질긴 문초(問招)에
슬기롭고 교활하게, 의연하고 배짱 좋게 버틸 일이 걱정이오.

그나저나 이 지경이 되고 보니, 86동지 벗님네들 미안하기 그지없소.
태양광 비리 의혹 말 나올 때마다,
동지들은 안 다치게 몸조심 말조심 입단속 몸단속 게으르지 않았으나,
돈 욕심을 못 눌러서 이 지경이 벌어졌네.

그러나 어찌하오, 돈이라면 다다익선,
밥 썩는 냄새는 못 참아도 돈 썩는 냄새에는 환장하는 똥86이 나뿐만은 아니잖소.
평생 돈 벌어본 적 없는 우리 86,
별 수입 없이도 아들딸들 거만금이 들어가는 해외유학 보내려면
여기서는 빌고 저기서는 뜯어야만 가능한 건 배웠잖소.
그래야만 천신만고 풍찬노숙, 겨우겨우 깔고 앉은 때깔 좋은 이 기득권, 최소 3대는 물려주지.

어떨 때는 눈빛으로 도원결의, 어떨 때는 술집에서 똥창 맞추기,
그렇게 맹서하며 거친 세상 헤쳐왔네.
종석이, 인영이, 두관이, 미향이 … ,
신문에 난 86 이름 차례차례 불러보니 열 손가락 부족하네.

직(職) 대신 집을 챙긴 동지들도 마찬가지.
촛불 팔아 대권 잡고, 180석 거대 여당 신주류가 되고 보니 이 기득권 꿀맛이네.
‘내 머리는 잘라도 내 머리칼은 못 자르오[此頭可斷此 髮不可斷]’가 아니라
‘내 목은 치소만은, 이 꿀통은 못 내놓소’이외다.

86 벗님네야, 그 꿀맛이 좋다한들 영원히는 못 가노니, 긴 꼬리는 밟히는 법.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
왕년의 운동권 대부, 내 모양이 처량하다.
가막소에 갇혀보니 국회의원 못한 것이 천추에 한이로세.
총선 두 번 떨어지고 백수신세 되어서는,
먹고살자 사업 길에 나섰으나 결국에는 이 모양이 되고 마네.
태양광 사업 한창일 땐, 낙선하면 건달 되는 국회의원 우습더니,
가막소에 갇혀서는 부러운 게 국회의원, 아쉬운 게 정치권력.
이권개입 국회의원, 들통나면 모르쇠요, 검찰이 부를 때는 일 바쁘다 안 나가네.
유야무야 뭉개다가 재판 가도 집행유예, 운 좋으면 무죄라네. 여러 명이 그랬다네.

86동지들아, 내 말 한번 들어주소.
3억9천 받은 돈, 용처(用處) 묻는 검사 질문 최선 다해 피할 테니,
동지들도 백방으로 손을 써서 가막소서 날 빼주소.
못 빼주면 검사 심문 못 견뎌서 무슨 말을 하게 될지,
누구 이름 불게 될지 지금 나는 모른다오.

탈 원전과 태양광도 아는 거 모르는 거, 내가 죄다 분다 치면.
여러 사람 귀찮아라, 다칠 수도 있을 거요. 그런 꼴 나기 전에 나를 얼른 빼주시오.
나를 못 빼주면 저 ‘검새’ 놈을 빼주시오.
추미애가 알아서 할 거라고? 그렇다면 다행이나 혹시라도 모를 일, ‘단도리’를 해주시오. 단단히 해주시오.

밤이 되니 가막소 공기 더 차갑네.
가을 기운 쓸쓸쌀쌀, 내 신세가 한량없이 처량하네.

*‘시무 7조 상소’와 이에 대한 하교(下敎) 형식의 답글이, 내용이야 어떻든 이 시대를 왕조시대로 착각하는 먹물들의 말장난이라는 비꼼이 넘쳐, 긴 세월 여염(閭閻)과 누항(陋巷)의 음률이었던 4·4조에 의지해 시대적 상황의 일단( 一 端)을 애타는 마음으로 풀어본 농문(弄文)임을 밝혀둠.
**왕년의 운동권 대부로 태양광 사업을 하다가 여권 인맥을 활용해 특정 도청탐지장비 제조업체의 국가기관 납품을 돕고 업체로부터 수억 원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8월 7일 구속되고, 27일 기소된 허인회가 글의 모델임. 이 글은 기소 전 시점에서 작성됨.
***가막소는 감옥(監獄)의 전라도 방언.
****단도리는 일의 순서를 말하는 일본말이나, 한국에서는 일을 꼼꼼히 하라는 뜻으로 종종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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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뉴시스 논설고문,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 역임.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 집필 중. 저서: '목사가 미웠다'(2003년),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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