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력발전 저주파의 진실


"밤마다 윙윙"···시골마을 둘로 쪼갠 풍력발전 저주파의 진실


    “몇 달째 집을 내놨는데도 보러 오는 사람도 없어요. 옛날에 이곳이 좋아서 요양 삼아 살려고 왔는데 이젠 풍력이 안 보이는 데가 없잖아요. 집을 버리고 갈 수도 없고….”

 

경북 영양군 영양읍 양구리의 한 마을. 암 판정을 받고 2003년 이곳으로 이사와 살고 있는 김의환(70) 씨는 17년 만에 마을을 떠나려 한다고 했다. 김 씨는 “산책 삼아 밖에 나가면 ‘윙윙’하면서 소리가 들린다”며 “다른 데로 옮기려고 집을 팔려고 내놨는데도 묻는 사람조차 없다”고 호소했다. 그의 집 맞은편 산꼭대기에서는 풍력 터빈이 쉴새 없이 돌고 있었다.'


경북 영양군 양구리 인근의 풍력발전단지. 양인성 인턴


[클린에너지 패러독스, 팩트로 푼다]


① 육상풍력, 정말 친환경일까?

경북 영양군 양구리 일대는 전국에서 풍력발전단지가 가장 밀집한 곳 중 하나다. 바람이 워낙 좋은 데다가 인구밀도가 적어 풍력발전에 적합하다고 꼽힌다.

 

2008년 맹동산에 첫 풍력단지가 들어선 이후 올해 초 가동을 시작한 영양양구풍력발전단지까지 총 4개의 풍력발전단지가 양구리를 둘러싸고 있다. 이 지역의 풍력발전단지 용량은 220.95MW로 전국 풍력발전단지의 14.8%에 이른다. 



 

여기에 또 하나의 풍력발전단지 건설이 추진되면서 주민과 갈등을 빚고 있다. 마을 주변 도로에는 ‘영양제2풍력사업을 백지화하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풍력에 동네 갇혀” vs “지역에 도움”


영양군 삼의리 주민인 남실관 씨가 풍력발전단지가 마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동환PD


주민을 따라 가장 먼저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선 맹동산 정상부에 올랐다. 주변 산 능선을 따라 88개의 풍력터빈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아래로는 골짜기마다 작은 마을들이 보였다. 


영양군 삼의리에 사는 남실관 씨는 현재 풍력단지 건설이 추진 중인 산을 가리키며 “저기 풍력발전단지가 생기면 동네가 갇히게 돼 그 밑에서는 사람이 살 수가 없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풍력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우리 동네는 충분히 있으니까 더는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민 중엔 지역발전 등을 이유로 추가 건설을 찬성하는 이들도 있었다. 삼의리 이장인 장수상(58) 씨는 “영양은 '육지 속의 섬'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다”며 “풍력발전 회사가 들어옴으로 인해서 지역에 젊은이가 들어오고, 회사에서도 장학사업·노후주택 개선 같은 여러 활동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민원 해마다 증가 


신재생에너지발전 관련 민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처럼 신재생에너지를 둘러싼 갈등은 점점 커지고 있다. 미래통합당 윤한홍 의원이 전국 17개 시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전국의 신재생에너지 관련 민원은 총 1972건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에너지 전환이 본격화되면서 민원 건수도 2017~2019년에 각각 309건, 538건, 601건으로 3년 연속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총 274건의 민원이 발생했다.

 

윤 의원은 “매년 신재생에너지 민원 통계를 받을 때마다 그 수치가 증가하고 있다”며 “이는 신재생에너지로 인한 주민 고통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풍력은 태양광과 함께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의 핵심축이다. 바람의 힘으로 전기를 생산해 대표적인 친환경 에너지로 꼽힌다. 

 

하지만, 최근 육상풍력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지역 주민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또 풍력발전단지 조성 지역 대부분이 산줄기, 특히 대간·정맥·지맥 등에 입지해 생태계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른바 ‘친환경의 역설’이다. 취재팀은 풍력 발전을 둘러싼 논란을 팩트체크했다.

 

팩트체크①-저주파 소음 피해 있나


경북 영양군 양구리 풍력발전단지 인근에서 소음을 측정하는 모습. 양인성 인턴


풍력발전단지 인근 주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호소하는 게 소음이다. 터빈이 돌면서 발생하는 소음이 주민들의 일상생활은 물론 건강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산에 올라 운행 중인 풍력터빈 아래에 서보니 날개가 바람을 가르면서 내는 소리에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양구리에서 만난 한 주민은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서고 나서부터는 밤에 소리가 나니까 주민들이 밖에 아예 나오지 않는다”며 “비 오는 날에는 물방울이 튀어서 소리가 더 심하게 난다”고 말했다. 산 넘어 홍계리 주민도 “밤마다 ‘웅웅’하는 소리가 들려서 창문을 닫고 산다”고 했다.

 

주민들이 더 걱정하는 건 저주파 소음이다. 저주파 소음이란 주파수 100㎐(헤르츠) 이하의 소리로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등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풍력터빈처럼 일정한 속도로 회전하는 대형 기계장치에서 주로 발생한다.

 

환경부는 2018년 7월 발표한 ‘저주파 소음 관리 가이드라인’에 12.5~80Hz의 주파수 중 어느 한 하나에서도 음압레벨(dB) 기준을 초과하는 경우 저주파 소음의 영향이 있다고 밝혔다. 이는 일반적인 사람의 50%가 불편함을 호소하는 수준이다.

 

취재팀은 실제 풍력발전단지에서 얼마나 저주파 소음이 발생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정밀 소음측정계로 저주파 소음도를 측정했다. 풍력터빈과 약 50m 떨어진 곳에서 주파수별(12.5~80Hz) 음압레벨을 측정한 결과 주파수별 9개 기준 중 5개(31.5~80Hz)에서 기준치를 초과했다. 당시 풍속은 평균 6m/s였다.

 

1㎞ 밖까지 저주파 소음 영향 미쳐


 

전국 풍력발전단지 6개소의 저주파소음 기준 초과 여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실제 전국적으로 풍력단지의 저주파 소음을 측정한 데이터를 보면 환경부의 가이드라인을 초과한 곳들이 많았다. 2016년 한국교통대학교 산학협력단이 환경부의 용역을 받아 조사한 ‘국내 풍력발전단지 소음영향조사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남과 제주 풍력발전단지 6개소는 이격거리 250m 기준 6곳 중 5곳에서, 1㎞ 기준 4곳 중 2곳에서 주파수별 기준을 초과했다. 해당 발전단지 1㎞ 이내의 민가 15곳 중 47%(7곳)에서도 저주파 소음의 영향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저주파 소음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부족한 게 현실이다. 1995년 일본 환경청은 저주파 소음으로 인한 피해사례 23건을 분석했는데 2명 중 1명꼴로 압박과 진동을 느꼈으며 초조감, 불면, 두통, 귀, 가슴, 복부의 압박감, 전신 위화감 등의 고통을 호소했다고 밝혔다.

 

김범석 제주대 풍력공학부 교수는 “(저주파 소음에 대한) 규정을 두고 그 규정을 초과하게 되면 풍력발전 사업장에 ‘대책을 마련하라’고 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아직은 권고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팩트체크②-생태계 훼손할까


 

산 정상부를 따라 줄지어 서있는 풍력발전기. 김동환PD


풍력발전단지가 생태계를 훼손한다는 주장도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육상풍력단지가 설치되는 고지대 능선부는 식생이 우수하고 산림 생태계가 잘 보전되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경북 청송군 현서면 면봉산 일대에 추진 중인 ‘면봉산 풍력발전단지’ 조성 사업도 환경 훼손 등을 이유로 몇 년째 주민들과 갈등을 겪고 있다.

 

주민들은 풍력단지 건설로 산양, 멧돼지 등 산에 사는 야생동물들이 서식지를 잃고 민가로 내려온다고 주장했다. 양구풍력발전단지 인근에서 옥수수 농사를 하는 한 주민은 “풍력발전단지가 생긴 이후로 멧돼지들이 내려와 농작물을 먹어치우는 일이 갑작스레 많아졌다”고 했다.

 

풍력발전단지에서 발생한 저주파 소음이 꿀벌의 활동을 방해한다는 주장도 있다. 영양군 석보면 삼의리에서 30년 넘게 양봉업을 하는 안효종 씨는 “풍력발전단지가 생긴 이후로 저주파 소음 등의 방해로 인해 집으로 돌아오는 벌의 개체 수가 눈에 띄게 줄었고, 양봉장의 벌 160만 마리 정도가 거의 전멸되다시피 집단 폐사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풍력단지 입지 철새도래지와 일치”


경북 영양 풍력발전단지. 양인성 인턴


조류가 풍력발전기 날개와 충돌해 죽거나 철새의 이동 경로에 영향을 준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조류보호단체(American Bird Conservancy·ABC)는 미국에서 매년 수십만 마리의 새와 박쥐가 풍력터빈의 날개에 충돌해 죽는다고 추산했다. 건물이나 차량 충돌보다는 피해 규모가 작지만, 실제 피해 개체 수는 알려진 것보다 많을 것이라고 주장한 연구도 있다. 충돌로 사망한 사체가 포식자들로 인해 사라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철새 이동이 많은 국내의 경우 풍력발전으로 인한 조류 충돌 피해에 대한 조사 자체가 이뤄지지 않아 정확한 피해 규모를 가늠할 수조차 없다.

 

지난해 풍력에너지저널에 게재된 ‘해상풍력이 조류에 미치는 영향 평가를 위한 모니터링 필요성’ 논문에 따르면, 국내 풍력단지 입지는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지리적으로 철새도래지와 일치한다. 풍력단지는 발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평균 풍속이 높은 고지대나 해안 지역에 주로 조성되는데 이런 지역들은 바람 길목이나 개방된 상공을 이동 경로로 이용하는 새에게도 중요한 서식지이기 때문이다.

 

이후승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바람길이 우선인 국내와 달리 해외에서는 풍력발전사업에 들어가기 전에 새들에 대한 영향이 어떨지를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충돌 위험이 높은 곳을 피한다”며 “해외에서 문제가 없다는 식의 결과를 가져와서 풍력발전소를 아무데나 설치해도 된다는 건 과장된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날개에 검은색 칠하자 피해 70% 감소 


노르웨이 스묄라 지역의 풍력발전단지의 날개에 검은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Ecology and Evolution


실제로 해외에서는 조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스묄라 풍력 발전소에서는 터빈의 날개 세 개 중 한 개에 검은색 페인트를 칠했다. 날개가 빠르게 회전하면서 윤곽선이 보이지 않는 모션 스미어(motion smear) 효과를 줄이기 위해서인데, 실제로 페인트를 칠한 이후 조류 사망률이 70%가량 줄었다고 한다.

 

둘로 갈라진 공동체…“지역에 떠맡겨”


풍력발전단지에 둘러싸인 경북 영양군 양구리의 한 마을. 양인성 인턴




주민과 갈등도 풍력발전이 풀어야 할 숙제다. 실제로 풍력 발전을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 모두 오랜 갈등 탓에 마을이 둘로 갈라진 데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장 씨는 “형님·동생하면서 지냈던 분들인데 10년 이상 갈등을 경험하면서 지역이 양분되는 것이 굉장히 안타깝다”며 “국가가 개입해서 해결해 줘야 하는데 자꾸 지역으로 떠맡겨버리니 갈등이 어떻게 봉합이 되겠느냐”고 말했다. 

 

환경부에서는 2018년 무분별한 개발을 막고 주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계획입지제를 연내 도입하기로 했지만, 관련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3년째 시행조차 못 하고 있다.

 

이상범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계획입지제의 핵심은 주민과 협의를 통해 발전사업 후보지를 찾고, 환경에 미칠 영향을 사전에 평가한다는 것”이라며 “주민이 협동조합 등의 형태로 풍력발전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양=천권필 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양인성 인턴 feeling@joongang.co.kr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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