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수 적어 文 정부의 敵으로 몰린 국민들 ㅣ 벼랑 끝에서 눈뜨는 민심

[양상훈 칼럼] 머릿수 적어 文 정부의 敵으로 몰린 국민들


종부세 올릴 수 있지만 적을 공격하듯 하나

소수라고, 표 적다고 함부로 짓밟고 때리나


 

양상훈 주필


부동산 보유세 인상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집값 폭등은 젊은이들을 절망케 하고 많은 사람에겐 박탈감을 안긴다. 사회적 갈등이 너무 심하다. 부동산 보유세를 올려서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다. 정부의 정책은 국민을 궁지로 몰아 때려잡는 작전이 아니다. 국가 제도는 20~30년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몇 년 정도는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몇 년이 아니라 몇 달 뒤에 무슨 180도 뒤집기가 나올지 알 수 없다. 정책 변경의 진폭이 너무 커 온 국민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다. 어떤 세금이 올해 100만원 나왔는데 가진 것 그대로인 내년에 4000만원이 된다면 이것은 정책이 아니라 폭력이다. 세금을 10~20% 올려도 많이 올리는 것인데 갑자기 40배를 내라면 적(敵)을 공격하는 행위다.




지난 1일 서울 조세 저항 시위에 나온 50대 아주머니가 바로 정부로부터 적(敵)으로 몰린 국민이었다. 동영상을 통해 본 그의 6분 연설은 피를 토하는 것 같았다. 그 대부분을 인용한다. "저는 남편과 33년 자영업을 했습니다. 쉰 적도 없고 좋은 옷 명품 한번 들어본 적 없습니다. 애들과 놀이동산 한번 못 갔습니다. 지독하게 절약하고 일만 했습니다. 영세 자영업자들은 시간과 영혼을 돈과 바꾸는 것입니다. 노후에 조금 편하게 살고 싶어 경매를 배웠습니다. 법인으로 빌라 몇 채 샀습니다. 법인 등기 내고 사업자 등록 했습니다. 탈세한 적 없고 세금 연체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법인이 시장 교란 세력이라고 종부세 7.2% 내라고 합니다. 낡은 빌라 수리해서 1년 임대료가 480만원 나오는데 종부세가 600만원입니다. 빌라 하나는 1억4천 전세 줬는데 종부세가 1200만원 나옵니다. 이걸 낼 수 있겠습니까. 수입 있는 곳에 세금 있다고 했는데 이건 세금이 아니고 폭력이고 살인입니다. 그냥 솔직하게 재산을 몰수하겠다고 하십시오. 팔려고 내놨더니 취득세가 너무 많고 임대차법 때문에 살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팔 수도 없고 가지고 있으면 종부세가 어마어마하게 나옵니다. 제가 어떻게 살 수가 있습니까. 빌라는 법원 경매로 샀습니다. 법원이 저한테 빌라를 팔았습니다. 합법적으로 했는데 징계를 먹습니다. 저는 잘 수도 먹을 수도 없습니다. 제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어떤 사람은 국민이고 어떤 사람은 국민이 아닙니까. 다 똑같은 국민입니다. 법인은 탈세도 아니고 위법도 아니고 절세하는 것입니다. 자영업이 너무 힘들어 조금 편하게 살아보려고 했던 게 저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저한테 빌라를 팔아먹은 법원은 죄인이 아닙니까. 법인을 내주는 국세청은 죄인이 아닙니까. 다주택자는 형사처벌 해야 한다고 누가 얘기했습니다. 그러면 법원과 국세청도 감옥에 처넣으십시오. 그런 다음이면 저도 벌금 내겠습니다. 저의 공포를 아십니까.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국민을 위한다는데 우리는 국민이 아닙니까. 억울해서 잠을 못 잡니다. 어제도 4시까지 못 잤습니다. 먹어도 먹은 게 아닙니다. 어렸을 때 밥을 굶어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 정부는 국민을 달달 볶고 있습니다. 행복해지면 안 된다고, 부자로 살면 안 된다고 사지로 내몰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겠습니다. 문재인 내려와! 문재인 내려와!"




이분이 빌라를 산 때는 국토교통부 장관이 "세제 금융 혜택 드릴 테니 다주택자들은 임대 사업자로 등록하면 좋겠다"고 발표한 뒤였다. 정부가 하라는 대로, 법에 정해진 그대로 했다. 전 재산 8억5000만원을 털어 빌라와 오피스텔을 사 임대했는데 올해 41만원인 종부세가 내년에 4871만원이 된다. 국민이 정부 권유대로 했다가 날벼락을 맞는 나라가 됐다.


이분이 설마 했던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은 국민이고, 어떤 사람은 국민이 아닙니까'라고 물었는데 이 정권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다수(多數)에게는 영합하고 소수(少數)는 무시한다. 부자 대 서민, 세금 내는 소수 대 세금 쓰는 다수, 서울 대 지방, 강남 대 비강남, 대기업 대 중소기업, 최저임금 주는 사람 대 받는 사람, 정규직 대 비정규직, 사용자 대 노조, 의사 대 건보 수혜자, 서울대 대 서울대 폐지, 외고·자사고 대 일반고, 장군 대 병사 등 끝이 없다. 기준은 머릿수다. 세상을 다수 대 소수로 가르면 선거에서 항상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은 소수다. 그러니 무시한다. 5~10년 정도를 시한으로 매년 일정 수준 종부세를 올려가면서 대처할 시간을 줄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적(敵)을 때려잡아 비명이 나오게 만드는 방식을 선호한다. 눈앞의 선거를 이기려면 다수를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날벼락 맞은 아주머니는 정부 하라는 대로 하다가 소수가 됐다. 그들의 적(敵)이 된 것이다. 어느 운 나쁜 사람의 얘기일까. 누구든지,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의 적(敵)이 될 수 있다.

양상훈 주필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06/2020080600095.html





[류근일 칼럼] 벼랑 끝에서 눈뜨는 민심


극단·과격파 '그들만의 잔치'로 갈수록 좁혀진 촛불혁명

비폭력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성난 민심 흘러가고 있다

황혼이 깃들면 미네르바 부엉이가 나래를 펴듯

류근일 언론인


대한민국이 벼랑 끝에 섰다. 추락할 일만 남았다. 체제 소멸의 지옥문이 열렸는데 대중은 덤덤하기만 하다. 조지 오웰의 '1984'가 저만치 보인다. 혁명이 극단으로, 과격으로 치닫기 시작하면 그 끝은 전체주의·일당독재·공포정치다.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이 그랬다. 한국의 소위 '촛불 혁명'도 날이 갈수록 극단·과격파의 '그들만의 잔치'로 좁혀졌다. 보통 사람들은 빠지고, 단두대 모형을 든 특정 조직원들과 홍위병들이 직업 운동꾼들의 육탄으로 동원되었다.


권력을 잡자 586 실세들은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떼려 했다. 자유를 뗀 민주주의는 민중의 이름을 내건 또 다른 폭정, 민중민주주의와 전체주의를 뜻한다. 대기업 경영권 흔들기, 토지 공개념, 부동산 거래 허가제, 공룡 공수처 설치, 사법부 무기화, 일당 국회, 무소불위 입법, 세금 폭탄, 한미 동맹 퇴색, 연방제 개헌론이 폭주했다. "6·25 때 동족인 북한군에게 총을 쏜 사람이 무슨 영웅이냐"는 소리도 들렸다. 갈 데까지 간 미쳐버린 세상이다. 그러나 전기(轉機)는 오고 있다.


박원순 성폭력을 접한 2030, 특히 여성들이 문재인 정권 지지를 대거 철회했다. 7월 17일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는 "3040 문재인에게 속았다"였다. 7월 25일엔 돌팔이 부동산 정책에 항의하는 생활인들의 신발 던지기 집회가 있었다. 이들의 실시간 검색 챌린지는 '조세 저항' '문재인 내려와'였다. 7월 28일 이후의 실검 1위는 '문재인 파면'이었다. 중도층과 일부 여당 지지층도 이탈했다. 시진핑 중공에 항의하다 정직당한 쉬장룬(許章潤) 칭화대 교수는 "분노한 인민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 국민이 적폐로 몰렸는데 두려울 게 뭐가 있나?


지난 3~4년 운동꾼들은 거짓 선동(박근혜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 청소년 세뇌(왜곡된 현대사 교과서), 편 갈라 증오심 고취(적폐 몰이), 무지하고 무식한 시책(부동산, 탈원전), 현금 살포에 의한 유권자 매수를 자행해 왔다. 적잖은 대중이 현혹당하고 속아 넘어갔다. 거짓말도 크게 하면 먹힌다는 게 나치 선동가 괴벨스의 말 아니었나? 집단의 익명성 속에 잠겨 있던 군중은 그러나 일상의 삶이 파괴되면서 '깨어있는 개인'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땀 흘려 집 한 채 장만한 게 적폐냐?"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 들어온 것도 적폐냐?" "임대인도 국민이다"라고 외치며.


문제는 이 깨어나는 민심 에너지를 누가 어떻게 담아내느냐 하는 물음이다. 미래통합당 당권파는 그걸 제대로 담아내지도 못하고 그럴 여력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문재인에게 처음부터 반대했다"와 "문재인 지지하다 돌아섰다"를 합친 성난 민심은 비폭력 시민 불복종 운동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런 평화적 움직임은 인구의 3.5%만 가담해도 과격 혁명보다 두 배나 더 월등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게, 에리카 체노웨스 하버드대 교수의 연구였다. 과격 혁명은 폭정으로 갔고 비폭력 방식만이 민주화로 갔다는 점도 검증되었다. 폭력·비폭력 사례 300건을 검토한 결론이었다.


체노웨스 교수의 연구를 실천한 사례가 2018년 런던에서 있었던 '종(種) 소멸에 대한 항의(Extinction Rebellion)'였다. 가장 가슴을 찡하게 만든 사례는 1987~1991년에 있었던 라트비아·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 국민의 반소(反蘇) 평화 시위였다. 이 국민들은 인간 띠를 이루어 가요 축제라도 하듯 노래를 열창하며 맨 가슴으로 소련군 탱크를 막아섰다. 추하고 강포한 바이러스엔 아름답고 평화로운 '피플스 파워(국민의 힘)'가 항체라는 뜻이었다.




2020년 여름. 한국의 자유민주 시민들도 의식하기 시작했다. 성추행, 돈 추문, 아빠 찬스, 엄마 찬스 같은 오염 바이러스엔 아름다움과 평화의 에너지가 항체라는 것을. 황혼이 깃들면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나래를 편다. 민심도 때가 되면 홀연히 눈을 뜬다. 듣는가, 부엉이 나래 펴는 소리를?

류근일 언론인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03/202008030363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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