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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집에서 '구독'한다고?

2020.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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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구독이란 말은 신문이나 잡지를 정기적으로 배달받아서 보는 걸 말하는데, 요새는 반찬에다 커피, 과자, 이젠 편의점 얼음 컵까지로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소비자들 입장에선 좋아하는 먹거리를 정기적으로 저렴하게 소비할 수 있고, 업체 측도 단골을 확보라는 이점이 있어서 구독 서비스는 빠르게 확산할 거란 전망입니다. 보통 책이나 영상을 정기적으로 보려고 매달 돈을 내는 구독 서비스가 이젠 분야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더워진 날씨에 얼음이 담긴 컵부터 갓 구운 빵까지 구독하는 이색적인 서비스가 속속 나왔습니다."

어느 방송의 앵커가 한 말입니다. 문장도 이상한 곳이 있지만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다음은 앵커의 소개에 이어진 취재 기자의 보도.

“날이 더워지며 찾는 사람이 부쩍 늘자 편의점에서는 얼음 컵 정기권을 내놨습니다. 구독기간 동안 매일 얼음 한 컵을 싼 값에 가져갈 수 있어 알뜰족들에게 인기입니다. 인기제품부터 갓 출시한 신제품까지 여러 종류의 과자를 배달해주는 구독 서비스도 있습니다. 매달 다르게 구성한 과자 박스 열어보는 재미에 SNS에서는 구독 후기가 잇따라 올라옵니다. 대형 백화점들도 매일 갓 구운 빵을 제공하는 ‘빵 구독’부터, 매주 반찬 고민을 덜어주는 ‘반찬 구독’까지 다양한 구독 서비스를 내놨습니다. 코로나 이후 비대면 바람에 실적이 급감한 오프라인 업체들이 구독 서비스를 통해 충성 고객들을 붙잡아두려는 겁니다.” 

이 보도에도 나왔듯이 원래 구독은 책이나 신문 잡지 따위를 구입해 읽는 것을 말합니다. 방송 기사에 한자가 나오지는 않지만 기사가 말하는 購(구)는 사다, 구하다, 친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며 讀(독)은 읽다, 이해하다, 세다, 계산하다라는 뜻의 글자입니다.

이른바 ‘구독서비스’를 하는 상품은 빵이나 반찬 등 주로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이지 눈으로 읽고 이해해 정보나 지식을 늘리는 상품이 아닙니다. 그런데 구독이라고 하는 것은 신문 잡지를 정기적으로 배달하듯 이런 것들도 같은 방식으로 서비스를 한다는 점에서 만든 말이겠지요. 하지만 원래 구독이라는 말 자체에는 정기적으로 배달한다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그런데도 대학의 경영학과 교수라는 사람이 “구독자가 된다는 건 그 브랜드에 충성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라면서 맞장구를 치고 있습니다. 그 기사는 ”구독 소비자의 소비 패턴을 분석하면 물류비용을 아끼고 향후 수요도 예측할 수 있어 구독 서비스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입니다.“라고 끝납니다.

말의 개념을 제대로 모르니 옳게 보도할 수가 없습니다. 설령 대기업이나 제조업체가 그런 말을 ‘개발’해 보도자료를 돌리며 영업을 한다 하더라도 신문이나 방송은 말의 옳고 그름을 따져 바로잡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한자를 배우지 않아 개념을 모르는 어린 기자들은 선배나 데스크가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요즘 이런 기능이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비슷한 사례가 참 많지만, 이미 수도 없이 기사에 나와 대세로 정착된 것 같은 말 중에서 ‘탑재’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두 가지 기사를 무작위로 뽑았습니다.

1) 새 제품 모두 마스크 본체는 100% 재활용할 수 있는 투명한 실리콘 등으로 돼 있고 자체 김 서림 방지 기능까지 있어 마스크를 벗지 않아도 스마트폰의 얼굴 인증을 쉽게 할 수 있다. (중략) 그중 첫 번째 라인인 헤파 제품은 기본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충분히 차단할 수 있는 N99 등급의 헤파 필터를 탑재했다. 이는 0.33㎛의 미세입자를 99.99997% 차단할 수 있다.

2) 경남 진주시는 오는 6일부터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3월 1일부터 유예했던 시내버스 탑재형 CCTV 불법주차 단속을 실시한다고 5일 밝혔다. 시에 따르면 고질적 안전무시 관행의 하나인 불법 주정차 문제를 개선하고 원활한 시가지 교통소통과 버스승강장 주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불법주차 단속에 들어간다. 시는 시내버스 3개 노선(130, 251, 350)에 각 노선별 3대씩 총 9대의 시내버스에 탑재형 CCTV를 장착해 지난해 12월 18일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여기 나오는 탑재(搭載)는 원래 물건을 나르기 위해 배나 비행기 자동차에 싣는다는 말입니다. 搭은 타다, 태우다, 싣다라는 의미이고 載는 싣다, 오르다, 머리에 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CCTV를 어디로 실어 나르거나 마스크를 운송하는 게 아니라면 위의 두 기사는 용어 사용이 잘못된 겁니다. 두 번째 기사의 맨 나중에 나오는 ‘장착(裝着)’이라는 말을 쓰거나 이런저런 장치를 갖추었다는 의미에서 ‘구비(具備)’라고 해야 할 것을 탑재라고 하고 있으니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컴퓨터 디지털 기기에 관한 기사에 수도 없이 나옵니다.

구독과 탑재, 이 두 가지 중에서 구독은 이제 막 사용되기 시작해 아주 널리 퍼지지는 않은 말입니다. 그러니 초장부터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언론 종사자들이 바로잡아주기 바랍니다. 특히 업계에 새롭고 정확한 개념의 용어를 만들어 내도록 촉구해야 합니다. 불러주는 대로, 자료를 받은 대로 쓰는 건 언론의 정도가 아니며 내 생각에는 그런 기자가 기레기입니다. 잘못된 말을 바로잡고 좋은 우리말을 찾아내 쓰는 것은 언론의 책무이기도 합니다. 이런 일에는 지면 제작이나 방송 편성권을 갖고 있는 부장급 이상의 선배들, 데스크들이 나서야 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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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철순(任喆淳)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역임. 현재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등 수상. 저서 ‘노래도 늙는구나’, ‘효자손으로도 때리지 말라’, ‘손들지 않는 기자들’, ‘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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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ngi, conpaper En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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