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치 월급 꼬박 저축해도 서울 최고 싼 아파트 한채 못산다


20년치 월급 꼬박 모아도…서울 가장 '싼' 아파트도 못산다


정부 규제 '풍선효과'로 저가 아파트값 상승 

서울 외곽서 4억대 아파트 드물어

"직장인 실수요자들 자력으로 집 사기는 불가능"


    올해 말 결혼을 앞두고 있는 중견기업 직장인 김모 씨(34)는 서울에서 아파트 매매를 알아보다가 낙담했다. 김 씨의 예산은 5억원으로 서울 구로에 작년부터 점찍어둔 단지가 있었다. 하지만 작년 말 4억원 후반대던 이 단지는 올 초부터 가격이 폭등하더니 최근 6억원대로 올라섰다. 김 씨는 “월급을 안쓰고 꼬박 모아도 집값 오르는 속도를 못따라가겠다”며 “이제 서민들이 서울에서 집을 사는 건 하늘의 별따기”라고 말했다. 


최근 6억원 이하 주택을 중심으로 신고가 거래가 속출하고 있는 금천구 시흥동의 한 아파트 단지.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20년간 봉급생활자가 월급을 한푼도 사용하지 않고 꼬박 모아도 서울 아파트를 매입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로 15억원을 훌쩍 넘는 강남권 초고가 아파트는 수억원씩 떨어지고 있지만, 되레 6억원 이하 저가 아파트 가격은 나날이 뛰고 있어서다. 김 씨같은 직장인 실수요자들이 자력으로 ‘내 집 마련’을 하기는 더 힘들어졌다.




"월급쟁이들 '내 집 마련' 점점 더 어려워져"

9일 KB국민은행의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5월 서울 아파트 하위 20% 단지(1분위)의 평균가격은 3억9776만원으로 두 달 전보다 1.28% 올랐다. 1분위는 서울 아파트값을 가격순으로 5등분해 비교한 KB부동산의 '5분위 평균 아파트값' 조사에서 가장 값이 저렴한 단지의 평균가격을 의미한다. 1분위에는 대체로 4억원 이하의 단지들이 주로 포진해있다. 


이 기간 서울 1분위(소득 하위 20%) 가구의 1분위 주택가격배수(PIR)는 18.4배다. 1분위 연간소득은 1887만원이다. 소득 하위 20%인 한 가구가 연 소득을 모두 모아도 내 집을 마련하는 데 18.4년이 걸린다는 뜻이다. 


3분위 가구의 1분위 PIR은 6.1배로 나타났다. 중간 계층인 3분위 가구가 서울에서 가장 싼 주택을 사는 데도 6.1년이나 걸린다. 연 소득을 한푼도 쓰지 않았을 때 주택 매매까지 걸리는 시간을 계산한 수치로, 실제로 평범한 월급쟁이가 집을 사기까지는 10~20년이 걸릴 것으로 추산됐다.


정부 규제로 고가 아파트 매매가격이 하락한 사이 풍선효과로 규제가 덜한 중저가 아파트가 인기를 끌면서 가격을 끌어올린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투기과열지구에서 9억원 넘는 주택을 구입할 때 대출을 차단하고 자금조달계획서와 함께 예금잔액증명서 등 증빙서류를 제출토록 하는 등 규제로 고가 아파트 매수에 부담이 커졌다. 이에 따라 중저가 아파트로 수요가 몰리는 것이다. 




통계에서도 1분위 아파트 값 뿐만 아니라 2분위 아파트도 6억3773만원으로 3월(6억2939만원) 대비 1.33% 올라 가장 큰 상승 폭을 기록했다. 3분위 아파트 값은 8억1294만원으로 1.11%, 4분위 아파트 값은 11억428만원으로 0.44% 올랐다. 반면 상위 20%(5분위) 단지의 평균 가격은 18억320만원으로 지난 3월(18억1304만원)보다 0.55% 떨어졌다.



중저가 주택의 거래량도 크게 늘었다. 정부가 작년 말 '12·16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후 올해 1분기까지 서울에서 거래된 아파트 중 절반 이상이 6억원 이하 중저가 주택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규제 대상인 9억원 초과 아파트의 거래 비중은 급감했다. 직방에 따르면 작년 4분기와 올해 1분기의 아파트 전체 거래 중 6억원 이하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38.4%에서 52.1%로 14%포인트가량 올랐다. 반면 9억원 초과~15억원 이하 아파트의 거래 비중은 19.5%에서 12.8%로 줄었고 15억원 초과의 비중은 9.4%에서 3.4%로 낮아졌다.


"중저가 아파트 값 '당분간' 떨어지지 힘들 것" 

시장에서도 저가 아파트들의 가격 상승세가 감지되고 있다. 4억원대 아파트는 5억원대로, 또 6억원대로 올라서는 분위기다. 올해 서울에서 가장 가격이 많이 오른 지역인 구로구 구로동 중앙하이츠 아파트의 경우 전용 84㎡ 기준 지난해 하반기 5억원대 초반이던 것이 최근 6억4000만원에 팔렸다. 몇개월 사이에 1억원 넘게 가격이 오른 것이다. 




강북구 미아동 현대아파트는 지난해 말까지 전용 84㎡가 4억5000만원이었는데 올해 들어선 5억원대를 넘어서 4월엔 5억1000만원에 거래됐다. 노원구 중계동 신일아파트 전용 84㎡ 역시 4억원대 초중반에서 올해 4월 5억원을 기록했다.


서울 노원구 일대의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자금력이 적은 30~40대 젊은 층들은 외곽으로 밀려가다가 '서울집 마련'을 포기하고 경기도나 인천으로 이동하고 있는 경우도 늘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분기에 서울 거주자들이 매입한 경기도 아파트는 1만1637건으로 전년동기의 3142건대비 270.3% 증가했다. 2위는 인천으로 456건에서 1658건으로 3배 가량 증가했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서울에서 비교적 저렴한 곳에서 거주하던 젊은 층이 이젠 외곽지역에서도 집을 사기 힘들어 경기도나 인천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정부 규제가 강남 집값 잡기에 주력하면서 부작용으로 실수요자들이 많은 외곽이나 저가 주택들의 가격을 올려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분간 중저가 아파트의 값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아 월급생활자들의 내 집 마련이 녹록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서울 외곽의 저가 주택들에는 정부 규제의 여파가 덜 미쳤으며 강남 등 고가 지역에 비해 값이 저평가됐다는 인식이 강해서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들어 서울에서 아파트값 상승률이 가장 높은 곳은 구로였다. 연초부터 6월 첫째주까지 구로구는 1.48%가 상승했다. 강북(0.90%) 도봉(0.81%) 노원(0.86%) 등 외곽지역 또한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구로동의 J중개업소 대표는 “이 지역 단지들은 작년 상승기에 가격이 주춤해 소외받았다는 생각이 강하다”며 “최근에는 값을 높여 내놓아도 거래가 잘 이루어지니 집주인들 입장에서는 굳이 가격을 낮출 필요가 없다 여긴다”고 전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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