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개를 길러야 하나 [임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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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개를 길러야 하나

2020.06.10

다시 살구를 먹는 계절입니다. 해마다 6월 중순이 되면 살구와 함께 봉필이를 생각합니다. 봉필이는 2006년 3월 우리 곁에 왔다가 2012년 6월 14일에 떠나간 검은 녀석 슈나우저입니다. 죽은 지 벌써 8년인데도 간간이 그 녀석이 생각납니다. 우리 가족 모두 봉필이를 보고 싶어 하고 있습니다.

봉필이가 떠난 직후 내가 글에 썼지만 그 녀석은 ‘움직이는 종합병원’이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fusedtree/70140361693 떠나보내고 나니 좀 더 잘해줄 걸 하는 후회가 많이 생기고, 개라는 동물과 봉필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기른 것을 반성하게 됩니다. 가장 미안한 것은 가족들이 나가 그 녀석 혼자 진종일 집을 지키게 한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 아파트 7층에서 밖을 내려다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짖는 것만 걱정했지, 봉필이의 스트레스와 고독에 대해서 우리는 둔감했습니다.

사료 외에는 아무것도 주지 말라는 수의사의 말에 따라 다른 걸 먹이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사람이 먹는 건 절대로 주지 않은 것도 지금은 미안합니다. 늘상 긁어대기에 약을 많이 썼는데, 그 바람에 몸이 더 나빠진 것 같아 안쓰럽습니다. 게다가 자주 데리고 나가 산책하지 못한 게 미안하고, 중환자인 걸 알고 난 뒤에는 그 아픈 애를 끌고 산책을 나간 게 잘못이었다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봉필이가 죽을 때, 칼럼만 쓰는 신문사 고문직을 맡고 있던 나는 며칠 동안 출근도 하지 않고 병구완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6월 14일 몹시도 무덥던 날 봉필이를 떠나보냈지요. 봉필이의 죽음은 가족들에게 큰 상실감과 슬픔으로 남았습니다. 나도 그 뒤 다른 사람과 술을 마시던 중 봉필이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와 당황한 일이 있습니다.

지금도 길거리에서 슈나우저를 보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됩니다. 봉필이를 기르기 전에는 시커메서 지저분해 보이기만 했던 개인데, 이젠 그놈들이 다 봉필이처럼 보이더군요. 목줄에 매인 채 주인을 따라가느라 짧은 다리를 바쁘게 놀리는 개들을 보면 귀엽고 사랑스럽기보다 안쓰럽고 가엾어 보입니다.

사실 봉필이는 개를 기르지 못할 사정이 생긴 사람으로부터 얼떨결에 넘겨받은 녀석이어서 우리는 아주 서투른 견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정이 들 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나는 ‘오뉴월 개 패듯이’ 자주 봉필이를 때린 폭력견주였습니다. 내가 그 녀석에게 잘해준 것은 목욕시켜준 것(나는 늘 빨래한다고 했음), 임종을 한 것 정도입니다.

이제 다시 개를 길러볼까. 아내와 개 이야기를 더러 합니다. 그때보다는 우리가 좀 나아졌을 거라고 믿고, 이제 시간도 좀 있으니 개를 기르면 어떠냐는 거지요. 그래서 얼마 전 유기견센터에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안으로 들어오게도 하지 않아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센터장과 한참 이야기만 하고 돌아왔습니다. 입양을 하지 않고 보고만 가면 개들도 상처를 받으니 찾아오기 전에 잘 살펴보고 알아보고 개를 고르라는 취지였어요. 듣고 보니 부모 없는 보육원 원아들이 입양 희망자와의 면접에서 상처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낯선 사람이 온 걸 안 개들이 저마다 짖어댔고, 눈치가 빤한 녀석은 자기를 데려가라는 듯 두 앞발을 모으고 겅중겅중 뛰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개 생각을 하고 있다가 인터넷에서 우연히 아래와 같은 글을 읽었습니다. “내 친구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유기견을 입양하는데, 늙고 병들어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버림받은 개들만 입양해. 그러다 보니 길어야 3년? 얼마 못 살고 무지개다리를 건넌다. 그러면 또 다시 그렇게 오늘내일하는 늙고 병든 개를 데려와. 이 친구는 어릴 때 18년 동안 개를 키우다가 하늘나라 보냄. 마지막 몇 년간은 노환으로 앞 못 보고 듣지도 못하고 관절염으로 걷지도 못함. 그런 개의 일생을 지켜보니 이쁘고 건강할 때는 개의 일생에서 너무 짧더래. 토끼같이 뛰어다니던 녀석이 늙어서 고생하는 걸 보니 너무 불쌍하더래. 그렇게 버려진 개들의 마지막을 자기가 사랑으로 보내주고 싶어지더래. 그래서 열 살 이상의 개들만 골라서 입양한다.”

글은 이렇게 계속됩니다. “입양해서 마지막 순간을 ‘난 사랑받는 개로구나’ 하고 느끼게 하며 떠나보낸 게 지금까지 일곱 마리. 지금 또 유기견 새로 데려온다 함. 직업이 프리랜서라 집에서 돌볼 수 있으니 그렇겠지만 정말 좋은 일 하는 친구야. 나중에 천국 가면 이 친구가 사랑으로 마지막을 지켜준 개들이 전부 뛰어나와 반겨주겠지.”

몇 살인지 모르지만 젊은 사람이 참 좋은 일을 하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개가 사람을 지켜주고 따르듯이 사람도 개를 지켜줘야 합니다. 고양이를 기르던 사람이 개를 기르게 된 뒤 그 생태와 생리가 너무 낯설었던지 친구에게 이렇게 물었답니다. “개는 자기 생활이 없니?” 독립적이고 공간과 장소에 집착하는 고양이와 달리 개는 사람에게 집착하고 따르는 동물이니 그만큼 정이 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기르고 보살피는 데 정성과 힘이 들어가야 됩니다. 개의 삶과 생명에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어떻게 할까. 개를 다시 기를까. 사람에게도 제대로 잘하지 못하면서 개한  테 마음을 쏟는 게 마땅하고 옳은가. 더 상의하고 더 깊이 생각해서 결정해야 할 일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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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철순(任喆淳)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역임. 현재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등 수상. 저서 ‘노래도 늙는구나’, ‘효자손으로도 때리지 말라’, ‘손들지 않는 기자들’, ‘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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