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낡은 아파트도 재건축 막는 건 재산권 침해" l '흉물' 돼가는 여의도 아파트


[사설] 50년 낡은 아파트도 재건축 막는 건 재산권 침해다


서울시, 금가고 물 새도 불허하는 건 행정횡포 

'안전하게 살 권리' 침해…합리적 대안 내놔야


     서울 원효대교를 건너 여의도로 들어갈 때면 왼쪽에 재건축 촉구 현수막이 내걸린 낡은 아파트 단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1971년 완공돼 올해로 입주 50년차인 여의도 시범아파트다. 이 아파트가 노후화로 안전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도 서울시의 불허로 재건축이 꽉 막혀 있다는 한경 보도(6월 8일자 A2면)를 보면 주민들의 처지를 공감할 만하다.


2018년 10월 17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여의도 시범아파트 주민들이 “단지 노후화로 주민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며 서울시에 재건축 사업 진행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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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시범아파트는 안전진단을 통과해 주민들이 2017년 재건축조합을 설립했다. 그러나 이듬해 박원순 서울시장이 ‘여의도 통개발’ 구상을 내놨다가 집값 불안을 이유로 보류하는 바람에 재건축 사업 자체가 올스톱 됐다. 주민들은 아파트 안전대책 수립과 여의도 개발 마스터플랜을 조속히 내놓으라고 청원했지만, 서울시는 꿈쩍도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입주민들이 보는 피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여의도 시범단지는 정기 안전점검 결과, 전기·설비부문이 노후화해 위험이 큰 ‘3종 시설물’로 지정됐다. 아파트 지하엔 6600볼트(V) 고압전기가 흐르는 변전실과 50년 된 온수탱크가 붙어 있어 화재와 폭발 위험이 크다고 한다. 연간 6000건씩 안전보수를 해도 천장 균열과 누수, 외벽 손상 등으로 인해 주거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이런 문제는 이 아파트뿐 아니라 서울 잠실동 주공5단지, 대치동 은마아파트 등 40~50년 된 노후 아파트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의 재건축 불허로 입주민들은 사유재산권을 침해받고 있기도 하다. 공공 시설물도 아니고 개인 주택인 아파트가 낡아 위험해지면 소유주들은 리모델링을 하든, 재건축을 하든 고쳐서 살 권리가 있다. 이 같은 개인의 재산권 행사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일방적으로 막는 것은 재산권을 존중하는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 물론 우리 헌법은 공공복리 등을 위해 재산권 행사를 일부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시범아파트처럼 ‘지금은 집값 불안 때문에 안 되니 안정될 때까지 무조건 기다리라’는 식의 제한은 과도하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큰 틀에서 보면 주택가격 안정도, 여의도 종합개발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가치 때문에 개인의 의사에 반해 재산권을 희생시키는 것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주민들이 낡고 균열이 생긴 집에서 기약도 없이 불안하게 살아가야 한다면 과연 누구를 위한 재건축 규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각에선 박 시장이 여의도 종합개발 마스터플랜을 자신의 대선 공약으로 내놓기 위해 시범아파트 등의 재건축 허가를 미루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시민 안전을 볼모로 삼았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이런 뒷말이 나온다는 것은 주민들이 서울시의 불허 이유를 전혀 납득 못 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서울시는 조속히 합리적 대안을 내놔야 할 것이다.

한경닷컴




기약없는 박원순의 '통개발'…'흉물' 돼가는 여의도 아파트


박원순 시장이 보류 후 2년간 올스톱

"더 기다려라"


입주 50년차, 조합까지 세웠지만

'여의도 마스터플랜'에 사업 멈춰

서울 집값 들썩이자 정부서 반대

市는 "국토부와 상의"만 되풀이


    1971년 지어진 서울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올해로 입주 50년 차다. 재건축 기준 연한인 30년을 넘긴 지 오래다. 서울의 대표적 노후 재건축 단지인 대치동 은마아파트(1979년)와 잠실동 주공5단지(1978년)보다도 ‘형님’이다.


시범아파트는 안전진단을 통과하고 2017년 조합을 설립(신탁사업시행자 지정)하는 등 재건축 사업이 순조로웠다. 하지만 2018년 8월 이후 2년 가까이 재건축 사업이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여의도를 통으로 개발하는 마스터플랜을 내놓겠다며 개별 재건축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 여의도 고층 빌딩 앞 낡은 아파트 > 1971년 준공돼 여의도에서 가장 오래된 시범아파트. 서울시의 여의도 개발 마스터플랜 발표가 보류되면서 재건축 사업이 2년 가까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2년 기다렸는데 무작정 더 기다려라

7일 서울시의회와 시범아파트정비사업위원회 등에 따르면 서울시는 최근 여의도 마스터플랜 추진 계획에 대해 “집값 상승 우려가 있는 만큼 국토교통부와 상의해 시기를 결정하겠다”는 의견을 시의회에 전달했다.




시범아파트 주민들은 앞서 지난 2월 “언제 발표될지 모르는 마스터플랜 때문에 개별 재건축을 막는 것은 부당하다”며 단지 안전대책 수립과 마스터플랜의 조속한 발표를 촉구하는 청원서를 서울시의회에 제출했다. 이에 시의회가 서울시에 청원 내용을 질의한 결과 기존과 같은 원론적인 답변만 되돌아온 것이다.


이 단지의 재건축 시계는 2018년 8월을 기점으로 멈춰 있다. 박 시장은 2018년 7월 10일 “여의도를 통으로 개발해 신도시에 버금가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여의도를 국제금융 중심지로 발전시키기 위한 종합 마스터플랜인 ‘여의도 일대 재구조화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방침은 한 달여 만인 2018년 8월 26일 전면 보류됐다. 마스터플랜 기대로 여의도 집값이 2억~3억원 급등하는 등 서울 부동산시장 전체가 들썩이자 국토부가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후 마스터플랜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시범아파트는 2018년 6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도계위) 정비사업 계획 관련 심의에서 보류 결정을 받았다. 당시 마스터플랜을 준비 중이던 서울시는 개별 단지의 재건축 계획을 심의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범아파트가 그해 9월 제출한 정비계획안은 도계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멈춰선 여의도 재건축

‘재건축 잠룡’으로 불리는 여의도에서는 재건축 기준 연한을 넘긴 단지가 시범아파트 외 공작, 한양, 광장 등 총 16개 단지, 7746가구나 된다. 하지만 이들 단지의 재건축 진행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사업시행자 지정을 마친 광장아파트를 비롯해 사업시행자 지정을 위해 동의서를 받고 있는 대교, 한양 등이 정비계획 수립 등 재건축 사업에 필요한 행정절차를 밟지 못하고 있다.


시범아파트가 청원에 나선 것은 단지 노후화가 심해지면서 안전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단지는 지난해 시행한 정기 안전점검 결과 전기·설비 부분이 노후화해 위험 요인이 큰 3종 시설물로 지정됐다. 시범아파트 정비사업위원회 관계자는 “아파트 지하에 6600볼트(V) 전기가 흐르는 고압 변전실이 있고, 바로 그 옆에 50년 된 온수탱크가 있어 화재와 폭발 위험이 있다”며 “연 6000건씩 안전보수를 하고 있지만 천장 균열과 누수, 외벽 탈루 등 주거 환경이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여의도 마스터플랜이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의 여파로 하락세를 보이던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주 9주 만에 보합(한국감정원 기준)으로 전환했다. 금리 인하 등으로 유동성이 넘치고 용산 정비창 개발 등의 호재가 나오면서 집값이 다시 반등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어 여의도 마스터플랜을 내놓기가 여전히 부담스러울 수 있다.



커지는 사유재산권 침해 논란

부동산업계에서는 서울시가 여의도 재건축 단지들의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박 시장이 여의도 개발을 주요 공약으로 활용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2018년 마스터플랜 발표를 보류하면서 주택시장이 안정화될 때까지 계획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올초 서울시 도시계획국에 여의도 스카이라인에 대한 새로운 청사진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건축업계 관계자는 “발표가 늦어지면서 서울시 내부에서도 여의도 개별 단지의 재건축을 더 이상 막아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서울시가 마스터플랜에 대한 입장을 좀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마스터플랜이 나오더라도 기존 재건축 추진 단지들이 여기에 따라야 하는지도 논란거리다. 시범아파트 청원을 서울시에 질의한 정재웅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도시계획관리위원회 소속)은 “부동산시장 안정화라는 법적 근거가 불분명한 이유로 시범아파트 재건축 사업을 계속 지연시키는 것은 재량권 남용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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