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의 님과 놈


김여정의 '님'과 '놈'

안용현 논설위원


    김정은 여동생 김여정이 2018년 2월 평창 올림픽 북한 대표단으로 서울에 왔다. 6·25 이후 김일성 일가의 첫 한국 방문이다. 외국 정상이 와도 차관급이 영접하는 게 관례지만 우리 측에선 장차관급 3명이 몰려가 서른 살짜리 '백두 혈통'을 맞았다. 통일장관은 "북측 귀한 손님이 오신다니 날씨도 거기에 맞춰 따뜻하게 변한 것 같다"고 했다. 2박 3일간 김여정은 문재인 대통령을 네 차례 만났다. 그때마다 "대통령님"이라고 부르며 "평양에 꼭 오시라"고 했다. "통일의 새 장을 여는 주역이 되시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그런 김여정 두 손을 꼭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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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여정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이 자주 포착됐다. 청와대는 김여정이 문 대통령에게 공손히 술을 따르는 사진, 활짝 웃으며 대통령 부인과 환담하는 사진 등을 공개했다. 판문점에서 문 대통령이 "(김여정은) 남쪽에서 아주 스타가 돼 있다"고 하자 김여정의 얼굴이 빨개졌다고 청와대가 전하기도 했다. 우리 어용 매체들은 김여정이 '예의 바른 공주님' '평화 메신저'인 것처럼 보도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김여정 앞에서 "평창 올림픽이 두 가지를 남겼다. 성공 개최와 김 부부장(김여정) 팬클럽이 생긴 것"이라고 했다. 그 자리에 있던 문 정권 실세들이 서로 '김여정 팬클럽 회장'을 자처했다. 농담인 줄 알았다. 이후 평양 회담을 다녀온 친여 인사도 "(평양에서) 사람들이 팬클럽 회장을 하겠다고 난리였다" "남매(김정은·여정)가 없으면 북한이 걱정된다"고 했다. 농담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제 김여정이 '팬클럽 회원'들이 있는 문 정부를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나는 못된 짓 하는 놈(탈북민)보다 못 본 척하는 놈이 더 밉더라"고 했다. 문 대통령을 겨냥해 '놈'이라고 한 것이다. 2년 전 '님'이 '놈'이 됐다. 3월에도 "저능한 사고" "완벽한 바보"라고 막말을 했다. 서울 환송 만찬에서 "제가 원래 말을 잘 못한다"며 수줍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지금 북에서 김여정은 김정은 다음가는 신(神)이나 다름없다. 북 주민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다. 김씨 왕조 유지에 필요할 때만 고개를 숙이고 미소를 보내는 것이다. 김정일 여동생 김경희도 그랬다. 앞으로 남북 이벤트가 벌어지면 김여정은 표정을 바꾸고 또 '문 대통령님'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김여정 팬클럽 회원들이 열광할 것이다.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06/202006060001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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