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의 라이선스 사업 [정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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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의 라이선스 사업

2020.05.25

이용수 할머니의 오늘(25일) 기자회견을 앞두고 지난 며칠간 윤미향(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자,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과 그 주변에서 매일매일 새롭게 드러난 여러 범죄적 의혹에 혀를 차다가 ‘좋은 라이선스 사업’을 찾아내서 같이 해보자던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18년 전 신문사를 그만두고 인생이모작을 어떻게 시작하나 고민할 때 만난 사람인데, 재벌 계열사 임원으로 있다가 상사와의 갈등, 벽에 부닥친 승진 등등의 이유로 뛰쳐나온 그는 내가 모르는 세상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청와대의 누구는 ○○그룹 실세와 가까운데, 그건 부인들이 학교 동문이기 때문이며, 누구는 때가 되면 실력자들에게 선물을 잘 챙겨줘서 사업이 잘 나가는데, 그에게서 외제 남자용 칼러 실크팬티 세트를 선물로 받고 그것만 입는 유력 인사도 있다 라는 따위의 이야기도 해줬습니다.

라이선스 사업이라는 말이 생소해서 물어보니 그는 도랑에 그물을 쳐 놓고 거기 걸린 물고기를 건져 올리는 것에 비유하면서 설명해줬습니다. 그물이 라이선스라면서, 그물을 치는 게 어렵지 한번 쳐 놓으면 돈이 계속 들어온다고, 물고기가 도랑 안 지나가고 살 수 있는가 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마태와 삭개오도 원래는 국가에서 라이선스를 받아 세금을 징수하다 회개한 사람들이라고 보충설명도 해줬습니다.

요즘 세상에 그런 게 가능하냐, 말도 안 된다는 내 말에 그는 세금징수처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분야는 어렵겠지만 특정 다수의 기업이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분야에서는 그런 게 있다고 예를 몇 가지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오래돼서 기억이 안 납니다만 당시에는 모두가 꽤 그럴듯했습니다. 그는 또 정부나 공공기관에서만 라이선스를 내주는 게 아니다, 기업 총수나 오너들이 발급하는 라이선스도 있다며 총수가 “이 자재는 이 사람들을 통해서만 구매하도록 하라”고 아래에 지시만 하면 공장 같은 것 지을 것 없이 평생 먹고살 수 있게 된다고 나를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나의 사회관계망이 그런 라이선스를 내줄 수 있는 실력자들에게 접근하기에는 너무나 부실한 걸 알고는 두 번 다시 그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윤미향은 필요에 따라 여러 개의 개인 계좌를 열어 기부금을 거뒀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별세하면 새 계좌로 돈을 거뒀고,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무마사업인 ‘우물파주기 프로젝트’ 기부금도 개인계좌로 받았다고 합니다. 공적인 기부를 개인계좌로 받은 것도 문제지만 어떤 계좌도 입금과 출금이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게 그의 행적이 범죄 아니냐는 의심을 더 키우고 있습니다. 윤미향이 베트남 우물파주기 프로젝트를 위해 기부금을 모았다고 보도한 세계일보는 “개인계좌로 1757만 원을 거뒀지만 1200만 원만 베트남 측에 전달했다. 차액 550만 원의 용도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누가 페이스북에 옮겨놓은 세계일보의 이 보도 아래에는 “윤미향은 개인계좌로 기부금 받아 자기가 챙겨도 된다는 라이선스를 받았나”라는 내용의 댓글이 달려 있었습니다. 윤미향의 석연찮은 기부금 모금과 더 석연찮은 해명을 비웃는 댓글 중 가장 정곡을 찔렀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미향은 인쇄된 면허증보다 효력이 훨씬 강력한 라이선스를 가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 라이선스 없이는 쉼터 산다고 기업에서 10억 원을 받아낼 수 없었을 것이며, 일이 불거지자 그 기업에서 준 돈이 모자라서 쉼터를 저 멀리 안성에 마련하게 됐다, 처음에 더 많이 받아내지 못한 게 아쉽다는 식으로 해명하지는 못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가 노출되자 민주당의 여러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윤미향을 두둔했습니다. 수백 개나 되는 ‘시민단체’들도 윤미향 감싸기에 나섰습니다. 감싸고 두둔하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윤미향의 잘못을 지적한 사람들을 친일세력이라고 몰아붙였습니다. 돈 걷고 쓴 것을 투명하게 밝히라는 요구를 친일이라고 한 겁니다. 그들은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이용수 할머니도 같은 요구를 했으니, 그분도 친일파냐는 반문에는 대답을 안 하는지, 못 하는지 입을 닫고 있습니다. 그 ‘시민단체’들도 윤미향의 것과 같은 라이선스를 가졌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윤미향 감싸기에 나선 국회의원들은 그 라이선스가 가져다 줄 풍요를 함께 누리려고 그런 것 같고요.

라이선스 사업을 하려던 그 사람은 그때 나를 찾아올 것이 아니라 윤미향이나, 그의 간판과 비슷한 걸 내건 ‘시민단체’를 찾았으면 성공했을 겁니다. 그들에게 정의 공정 시민 반일 …, 이런 단어들을 잘 늘어놓았으면 평생 먹고살 길을 찾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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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뉴시스 논설고문,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 역임.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 집필 중. 저서: '목사가 미웠다'(2003년),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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