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에 대한 비난, 지나치다 [임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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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에 대한 비난, 지나치다

2020.05.04

나는 지난 3월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미래통합당이 탈북 외교관인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를 비례후보가 아니라 지역구 후보로 공천한 것에 문제가 있다고 이 칼럼에서 지적한 바가 있다. 그가 보수진영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 강남 갑구에서 당선된 지금에도 나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음을 먼저 말하고 싶다.

나는 그에게 신변안전에 문제가 없다면 지역구 국회의원이 아니라 장관을 시켜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경찰이 태 당선자를 위한 경호 인력을 늘리고 그중에 무장경호원을 붙여 최고 수준의 경호를 제공키로 한 것은 당연한 절차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입장에서 만고의 배신자인 그는 자신의 출마를 “김정은과 싸우기 위한 것”이라고 했었다. 그가 남한의 국회의원으로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모습은 김정은에겐 눈엣가시임에 틀림이 없다.

선거일인 4월15일은 북한에서 태양절(太陽節)로 기념하는 김일성 주석의 생일이다. 북한 왕조체제의 상징일인 이날 김정은은 금수산 태양궁전에 참배하지 않아 유고 소동의 발단이 됐고, 태영호는 국회의원이 되어 자유민주주의를 북한 주민들에게 알리겠다고 한 약속을 지켰다.

외신들은 한 때 공산주의자였던 그가 한국의 최고 부자동네에서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에서 부자는 인민의 적이다. 남한이 공산화되면 부자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된다.

북한의 그런 체제가 싫어 목숨을 걸고 자유대한으로 망명한 사람을 한국의 부자들이 찍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강남갑구 유권자의 45%가 태 후보를 찍지 않은 것은 우리 사회의 의견의 다양성을 말해주는 것이지만, 그의 남다른 경력으로 인해 주민과의 소통이 불편해질 지도 모를 우려를 나타낸 것일 수도 있다.

당선 이후 인터넷 상에 태 당선자에 대한 공격이 가열되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과 친여세력이 주축이 된 공격자들은 그가 망명자라는 사실은 도외시하고, 과거 북한체제에 충성한 전력만을 문제 삼아, 그를 ‘간첩’ 또는 ‘이중간첩’이라며 낙인찍기 바쁘다.

친여 세력만이 아니라 극우세력도 여기에 가세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하기야 그를 공천한 미래통합당 안에서조차 그의 지역구 공천에 대해 “나라 망신”이며, “그는 남한에 뿌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최근 김정은 유고 소동의 와중에서 태 당선자가 김정은의 건강상태와 관련, ‘거동 불능’이라고 한 추측과, 미래한국당의 탈북민 비례의원인 지성호 당선자의 ‘99% 사망설’이 빗나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공격은 한층 극렬해지고 있다.

이들은 태 당선자를 당선시킨 강남지역을 조롱하듯이 역삼동을 ‘력삼동’, 래미안 아파트를 “내래미안” 등 이북식으로 호칭하는가 하면, 강남구에 탈북자 새터민 아파트를 의무비율로 법제화해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정은 유고 소동에 대한 두 탈북민 의원 당선자의 발언은 그들의 정보능력에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앞으로 그들의 의정활동 방향이 북한 정세에 대한 단편적인 논평이 아니라 깊이 있는 연구를 토대로 한 정책제안이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다.

또한 여야는 이들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고 본다. 특히 여당인 민주당은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고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소외계층인 ‘탈북자 국회의원’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처지임을 깨닫고, 이들이 제시할 정책대안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태영호 당선자에 대한 지금의 비판적인 사회적인 분위기는 다시금 그의 신변안전에 대한 우려를 갖게 한다. “태영호가 제거됐다”는 말은 김정은이 듣고 가장 기뻐할 말일 것이다. 북한에 있는 김정은의 ‘기쁨조’는 물론 국내의 ‘태영호 체포조’ 같은 종북세력들의 암약을 경계해야 한다.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되는 국회의원으로서 그의 신변 안전은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그의 신변안전을 위해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그의 해외 의정활동이다. 국내에서의 테러는 경호의 벽을 뚫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범행의 흔적을 남기기 쉽다. 그 점에서 테러의 장소로 해외가 더 유리할 수 있겠기에 하는 말이다.

북한은 지난 2017년 말레이시아에 4인 암살조를 파견,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을 독살했고, 그에 앞서 1983년에는 당시 버마(현 미얀마)를 방문 중인 전두환 대통령 일행을 향해 아웅산 묘소 폭탄테러를 자행한 전력이 있다.

나는 태영호 당선자가 주민들과의 관계에서 야기될 수 있는 이질감을 극복하면서 4년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그가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이 보다 건설적이고 합리적으로 추진되는 데 기여한 국회의원으로 남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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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일요신문 일요칼럼,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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