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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강산’에 발현된 우리 ‘넋[魂]의 DNA’

2020.04.01

-식목일 75년째에 즈음하여-

몇 년 전 독일 친구 내외와 함께 한 달여 동안 한반도를 둘러보며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궁금한 것이 많은 친구 내외는 여행 중 들르고 보는 곳마다 신기한지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스쳐 지나가는 도로변의 울창한 숲을 보면서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기색이었습니다. ‘있을 게 있다’고 생각하니 도로변의 푸른 숲이 그저 그런 풍경으로 보였던 것이겠지요. 은근히 자랑하고픈 마음이 동했습니다.

그래서 이 푸른 강산이 얼마 전까지 나무가 없어 헐벗었었다고 말했더니 자못 놀라워하면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며칠 여행하는 동안, 푸른 숲을 가리키며 “그러니까 이 숲이 ‘근작(近作)’이라는 거지?” 하며 간간이 되묻곤 했습니다. 아마 여전히 믿기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1946년 4월 5일 제정된 ‘식목일’로 그때부터 매년 4월 5일이면 민관(民官)이 함께 나무를 심었으며, 무차별 벌목을 행정력을 동원해 엄히 다스리면서 지키고 가꿔온 산물이 바로 오늘의 우리 ‘푸른 강산’이라고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자 자못 경탄(敬歎)해 마지않았습니다.

감탄하는 친구 내외를 보면서, 문득 반세기 전 어느 세미나에서 들었던 충격적인 얘기가 생각났습니다. ‘우리 주거 환경의 사막화 문제’라는 주제를 다룬 대학 내 특강 시리즈였습니다. 특강의 요점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Iberia)반도와 이탈리아반도의 산이 준(準)사막화한 원인은 15세기(1492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컨대 신대륙의 발견이 해상 교역을 크게 촉진했고, 이것이 다시 그 운송 수단인 해양 선박 건조 붐으로 이어지는 바람에 산림을 남벌하는 환경 파괴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선박 건조용 목재의 벌목이 이베리아반도와 이탈리아반도의 산을 준사막화시킨 주범이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유럽 대륙을 참혹한 전쟁터로 만들었던 로마 제국의 정복 전쟁 역시 광기 어린 벌목과 무관하지 않았으리라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으며, 프랑스의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 1769~1821)이 벌인 전쟁 역시 마찬가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산림학자의 고찰은 필자에게 많은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세미나 말미에 강연자는 현재에도 산림이 훼손되어 새로운 사막화의 길목에 서 있는 나라들이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대륙의 몇몇 나라와 더불어 한국, 바로 우리나라를 거명하는 것이었습니다. 특단의 대책 없이는 한 세기 후면 산야의 사막화 과정을 막는 게 거의 불가능한 단계에 이를 것이라는 예견까지 언급하면서 말입니다. 필자에게 예기치 않은 충격을 안겨준 그 얘기에 며칠 밤을 설쳤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1970년대에 귀국한 필자의 눈에 들어온 우리나라의 강산은 아직 ‘어설픈 녹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1980년대 말, 1990년대에 들어서자 필자의 시계(視界)에 들어온 우리 주변의 산과 들녘은 어느덧 생기가 감도는 검푸른 숲으로 변했습니다. 참으로 감탄이 절로 나오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유엔 기구의 발표에 의하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추진한 ‘재(再)산림녹화 사업(Reforest project)’ 중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성공적인 결과를 일궈냈다고 합니다. 그만큼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는 뜻입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역사를 관통하는 한 축이 보입니다. 우리가 일궈낸 한반도의 성공적 산림녹화는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임진(壬辰)·정유(丁酉) 왜란(1592~1598) 당시 침략자 일본이 패전(敗戰)한 원인 중 하나는 각 지방에서 불같이 일어난, 민간 또는 승려로 구성된 ‘의병대(義兵隊)의 출현’이었다고 합니다. 일본인들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죠.

어디 그것뿐이겠습니까. 1919년 일제 강점에 맞서 비폭력을 앞세우며 일어난 삼일운동이 그러하고, 1997년 전국적으로 350만 명이 참여해 약 227톤이라는 엄청난 양의 금을 모아 국가적 위기인 IMF 사태를 조기에 극복한 것 역시 그렇습니다.

또한 2007년 서해안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원유 유출 사고 때는 약 50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전국 각지에서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한 달여 만에 시커멓게 오염된 해안 구석구석을 손걸레로 청소해 마침내 원래의 자연환경으로 돌려놓은 쾌거를 이루었죠.

상기 열거한 사건들에는 앞서 언급한, 역사를 관통하는 한 가지 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러한 쾌거가 ‘그 시대의 몇몇 영웅’이 이룩한 산물이 결코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한반도에 살며 몸과 마음을 함께 나누는 모든 사람이 이루어낸 결과물인 것입니다.

이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문화권에서도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현상’이기에 그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서두에 얘기한 독일 친구 내외를 만나 옛 여행담을 나누던 중 그때 무엇이 가장 인상적이었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주저 없이 “재조성한 푸른 산야”라고 대답하더군요. 울창한 푸른 산야에 담긴 우리 ‘넋[魂]의 DNA’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는 계기였습니다. 그러면서 4월 5일 식목일 75회에 얽힌 우리 겨레의 혼을 돌아보며, 자랑스러운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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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전 한국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전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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