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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대학 교정을 거닐며  [함인희]

2020.03.28

우울함을 넘어 이토록 암울한 봄맞이는 난생처음인 듯합니다. 지난 2월 초순 가족들끼리 조촐한 모임을 계획했다가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다음 달에나 모이자고 할 때만 해도 큰 불안감은 없었습니다. 2월 중순이 되면서 집안 노총각이 3월 셋째 주로 잡아 둔 결혼식 날짜를 연기하고, 최고 어르신께서 구순(九旬) 잔치를 그만두자 하실 때만 해도 나름 현명한 결정이거니 했지 지금처럼 불안하지는 않았습니다.

하기야, 3월 2일 개강을 앞두고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고자 개강일을 두 주일 연기한다고 할 때만 해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3월 16일부터 두 주일 동안 온라인 교육을 실시하라는 메일을 받고부터는 ‘아 지금 상황이 꽤 심각하구나’ 슬슬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와중에 학사 일정과 관련해서 중요한 회의가 소집되어 모처럼 학교에 갔다가 그만 텅 빈 교정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순간 눈물이 핑 돌 만큼 가슴이 먹먹해왔습니다. 매해 새 학기를 시작할 때면 교정 곳곳에서 새내기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20대 초반 특유의 생기발랄함으로 활기와 활력이 넘치곤 했는데, 대강당 앞 계단에도 학생문화관으로 가는 후윳길(올라갈 생각만 해도 한숨부터 나온다고 해서 생긴 이름)에도 학생들은 온데간데없고 정적만 가득했습니다. 이런 우리네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시라도 꽃망울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는 개나리 진달래 목련을 보자니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77학번 58년 개띠들’에겐 텅 빈 캠퍼스의 경험이 아주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대학 3학년 때인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발생한 바로 다음 날 전국의 대학 문이 일제히 닫혔습니다. 이듬해인 1980년에는 ‘5·18 광주사태’(지금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공식 명칭이 바뀌었지요) 발발 즉시 전국의 대학 문이 다시금 굳게 닫혔습니다.

지금처럼 인터넷도 동영상도 유튜브도 온라인 강의도 없었던 당시는 수강과목 교수님들께 우편으로 리포트를 제출한 후 성적표를 받아 든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와 지금 대학이 문을 닫게 된 원인은 천양지차지만, 원인과 무관하게 대학 문은 언제라도 닫힐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우울함이 더욱 깊어지네요.

그래도 이제 두 주만 지나면 3월 30일부터는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직접 만날 수 있겠거니 희망을 품고 있었는데, 온라인 강의를 2주간 연장한다는 발표를 접한 순간 힘이 쭉 빠졌습니다. 이번 학기 내내 온라인 강의를 지속하겠다고 발표한 대학도 있다고 합니다. 제 경우 학부 강의는 운 좋게 K-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 대규모 공개 온라인강좌)를 개발한 터라 별 문제없을 테지만, 전공 책을 읽고 토론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대학원 강의는 뾰족한 대안이 없어 꿈속에서도 걱정을 놓지 못하는 중입니다.

학생들 입장에서 현재의 응급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하던 차에, 지난 월요일 미국으로 편지 부칠 일이 있어 우체국에 갔습니다. EMS 국제 특송 서비스를 신청하니 ‘항공편 결항 등으로 인해 한 달 이상 소요될 수 있고, 우편물 전달과정에 대한 서비스가 불가하다’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서비스의 질이 낮아지는 것만큼 값을 깎아주나요?” 하고 물었더니 “우체국 책임이 아니니 24,000원을 그대로 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학생들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더군요. 분명 학생들 입장에서는 기대했던 서비스의 질은 낮아졌는데, 등록금은 그대로 내야 하나 의구심이 들 것 같았습니다. 물론 대학 입장에서는 대학이 책임질 일이 아니요 대학도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니,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위기 상황을 등록금 문제와 연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 것 같구요.

지금 대학의 텅 빈 교정과 고요함은 폭풍 전야와 닮아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대학은 자신의 의미와 위상과 역할을 둘러싸고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인지 깊이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냈던 선례들을 폭넓게 섭렵하면서 말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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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미 에모리대대학원 사회학 박사. 이화여대 사회과학대학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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