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릿광대를 보내주오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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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릿광대를 보내주오

2020.03,12

코로나19 여파로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낭보(2020. 02. 09)가 몇 년도 더 된 듯 가물가물합니다. 감염병 확산이 꺾여 우리사회가 속히 활력을 되찾았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기생충'에 가렸지만 '조커(감독 토드 필립스)'도 주목할 만한 영화였습니다. 드라마('기생충')와 스릴러('조커')로 장르는 갈리지만 사회 양극화를 다룬 주제의식이 같습니다. 계단, 비탈길, 폐쇄 건물 등 주제를 뒷받침하는 화면 구성(미장센)도 닮았습니다.

조커는 배트맨 시리즈를 이끌어나가는 대표적 빌런(Villan‧악당)입니다. 조커를 보기 전 일말의 궁금증이 있었어요. 잭 니콜슨의 오리지널 명품 연기를 고(故) 히스 레저가 넘어섰는데 호아킨 피닉스는 또 어떻게 변주할 것인가? 그에 더해 일종의 스핀 오프(Spin-off) 드라마인 '조커'가 오리지널 배트맨 시리즈의 주된 이야기 흐름에 어떻게 관여할 것인가? 결과적으로 제작사(DC)도 별로 기대하지 않은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요인이 무엇일까?

무엇보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가 놀랍습니다. 전 시리즈에서 명연기를 펼친 배우들의 호연을 넘어섭니다. 호아킨 피닉스는 입술 언저리에 흉터가 있습니다. 조현병을 앓아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조커의 이미지와 묘하게 겹칩니다. 특별한 분장 없이 바로 현장에 투입해도 역을 거뜬히 소화해 낼 배우가 피에로 가면을 쓰고 불안정한 연기를 한 셈이라고나 할까. 싱크로율 100%입니다.

영화의 주제를 살펴봅니다. 최근 몇 년 새 지구촌 전체가 심한 박탈감으로 시달리고 있는 듯합니다. 어느 사회든 건널 수 없는 신분과 계층의 차이가 있고, 가진 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관점도 무시할 수 없겠지요. 영화 '조커'는 대리 배설 효과 덕에 흥행 가도를 달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담시(‘소돔과 고모라’에서 따옴)의 조커는 배트맨과 대립하는 캐릭터지만 서로 닮았습니다. 안티 히어로(Anti-hero)라는 점에서.

조커의 출생 이력도 궁금한 대목이었어요. 조커는 정신심약자여서 영화의 흐름도 현실과 망각이 뒤섞입니다. 조커의 태생적인 결핍 DNA는 어머니에게서 비롯한 것이에요. 어머니 말에 의하면, 조커는 고담시 시장을 노리는 재계의 거물 토마스 웨인(배트맨 브루스 웨인의 아버지)의 사생아입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기억 역시 사실인지 분명치 않습니다. 이 모호함이 오히려 다행스럽군요. 조커가 배트맨의 이복형임이 명백히 밝혀졌다면 조커의 운명이 보편적 공감을 얻는 대신 출생의 비밀에 얽힌 신파로 주저앉았을 테니까요.

언뜻 노래가 들려오는군요. 레온카발로의 베르시모(Versimo‧19C 이탈리아 사실주의) 오페라 <팔리아치> 중 ‘의상을 입어라’. 범종(梵鐘) 같은 목소리의 소유자인 헬덴 테너 마리오 델 모나코가 부릅니다.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고서도 무대에 오를 수밖에 없는 어릿광대의 절망과 슬픔을 다룬 비통한 노래이지요. 정신착란에 빠진 피에로는 희극 연기를 펼치다 무대를 현실로 착각하고 살인을 저지릅니다.

광대 조커와 피겨 스타 김연아의 우연한 연결고리도 흥미를 끕니다. 영화 '조커'의 주제음악인 '어릿광대를 보내주오(Send in the clowns)'는 김연아 선수가 은메달을 딴 2014 소치동계올림픽 쇼트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이기도 했습니다. 피겨 스케이팅은 우아하고 고급스런 이미지의 스포츠입니다. 그에 비해 광대가 연기하는 코미디 드라마는 아무래도 보다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측면이 있지 않는지요? 조커와 연아, 피에로와 피겨.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듯 씁쓸한 대비를 이룹니다.

영화 끝 무렵 작은 소동이 있었어요. 사회적 약자들의 영웅으로 떠오른 조커를 군중이 연호하며 고담시가 혼란에 빠집니다. 그렇게 끝나려니 하는데 앞쪽 관중석에서 거친 고함 소리가 들려왔어요. 영화의 한 장면인가 헷갈리던 차 불이 들어왔고 한 관객이 다른 관객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상대방이 빈번히 휴대전화기를 본 탓으로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고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었어요. 영화에서 조커는 웃음 조절 장애인으로 나옵니다. 웃음과 분노는 다른 것인가요? 아니면 같은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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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수필가, 문화평론가.
<한국산문> <시에> <시에티카> <문학청춘> 심사위원.
흑구문학상, 조경희 수필문학상, 한국수필작가회 문학상 수상.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영음文映音을 사랑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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