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조정제도를 활용해 보세요 [고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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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조정제도를 활용해 보세요

2020.03.03

지하철이나 택시에서 손전화기를 두고 내린 적 있죠? 전화기에는 중요 정보가 담겼고, 주로 사업에 활용하는 것이라 없으면 참 곤란합니다. 전화해 봐도 받지 않고, 좀 지나면 전원이 꺼져 있습니다. 며칠 동안 고생하여 폐쇄회로 영상을 뒤지고, 경로를 추적하여 겨우 범인(?)을 찾습니다. 남의 전화기를 가져간 것이 범죄일까요?

이런 사건은 자주 일어납니다. 전화기를 가져간 사람은 심각성을 몰랐을 수 있으나 본인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형법 360조 점유이탈물 횡령죄라고 하며 ‘타인의 점유를 이탈한 재물을 횡령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작년 11월 울릉도에 가는 배에서 보조전지를 충전하다가 하도 멀미를 심하게 하는 통에 잊고 내렸습니다. 해운사로 이리저리 전화해 봐도 찾을 길을 알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되돌아 갈 때 직원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청소하면서 발견한 것은 없다’는 퉁명스러운 대답만 들었습니다. 나도 폐쇄회로에 기록된 영상을 찾아봐야 하나 고민하다가 접었습니다. 직원이 형사 범죄로 인식했다면 태도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만.

우리 일상생활에서 행동을 잘못할 때에는 대개 민사 책임을 집니다.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뒤처리에 합의하면 좋겠지만 상대방이 오리발을 내밀 때에는 민사 절차로 풀려면 참 힘듭니다. 민사로 가면 소송제기, 변론, 판결, 강제집행에 비용과 시간이 들지만, 형사죄로 고소하면 경찰이나 검찰이 조사해서 결과를 알려주니 사건을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민사사건의 형사사건화입니다.

보기를 들면, 돈을 빌려주었는데, 갚을 능력이나 생각이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사기죄로 고소하는 것이죠, 사기죄는 10년 아래의 징역이나 2천만 원 아래의 벌금을 규정하여 죄가 무겁습니다. 당사자로서는 심적 부담이 큽니다.

우리나라에는 형사 사건이 많습니다. 검찰청 통계를 보니 고소사건이 2019년에 65만여 건이 생겼습니다. 일본이랑 비교해 보면 몇 배가 된다는 둥 하면서 국민성을 탓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부 악의를 가진 경우를 빼고는 사건을 즐기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사건이 생겼으니 빨리 해결하려는 욕심에서 나온 일이겠지요.

형사든 민사든 사건에 휘말리면 참 힘듭니다. 민사 사건에서 재판 날짜만 잡혀도 며칠 전부터 잠이 제대로 오지 않는데, 형사 사건이 생겨 경찰이나 검찰 조사를 받을 날이 오면 심적 부담이 많습니다. 형사 고소는 이런 압박감을 이용합니다.

자기 뜻과 상관없이 사고는 생길 수 있는데, 사고가 생긴다면 어떻게 수습할지가 중요합니다. 경찰 조사, 검찰 조사, 그리고 형사 재판으로 이어지면 보통 일이 아닙니다.

검찰청은 당사자끼리 서로 합의하도록 도와주는 제도를 운용합니다. 형사조정제도입니다. 저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조정위원으로 2007년부터 참여하고 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서로 연락하기 어렵고, 어렵사리 연결되더라도 본인들이 직접 풀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 중간에서 조정위원이 양쪽 의견을 존중하면서 타협점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제도입니다. 피해자는 사건을 빨리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고, 가해자는 민사상 피해를 물어주지만 상대방에게 처벌을 바라지 않는다는 뜻으로 합의하는 것이므로 사건이 곧장 해결되거나, 후속 처리에서도 그 합의한 사정을 참작해 줍니다.

작년 해넘이 무렵에 문자 쪽지를 받았습니다. 형사조정 예산이 모자라 작년에 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했는데, 올해에도 사정이 달라질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형사조정제도를 없앨 수는 없으니, 3월부터는 조정 횟수를 줄여 운영하겠다고 알려온 것입니다. 조정 수당 예산이 없어서 횟수를 줄여서 운영하겠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조정 수당이 많고, 그렇게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억 억 억하는 예산이 여기저기에서 낭비된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정작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를 몰라서 그런 걸까요?

형사조정제도는 각 지방 검찰청에서 운영하고 있을 겁니다. 형사사건에 얽혀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면 조정을 신청해 보십시오. 돈도 들지 않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건 당사자에게 복지의 한 형태가 되지않을까 싶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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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고영회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1981), 변리사, 기술사(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 (전)대한기술사회 회장, (전)대한변리사회 회장, (전)과실연 공동대표,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 mymail@patinf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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