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 이야기(1) [홍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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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 이야기(1)

2020.02.27

2017년 9월, 해 오던 약간의 일들이 동시에 싹 끝나버렸습니다. 그때 마침 지역 장애인 재활원에서 아르바이트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 제안을 받아들여 10월부터 12월 사이에는 생애 처음으로 지적장애인들을 돌보는 일을 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고는 2018년 1월부터 대리운전 일을 시작했습니다.
시간 관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점이 선택의 한 이유였습니다. 그즈음에 여러가지문제연구소의 김정운 소장이 신문에 쓴 칼럼을 읽었습니다. 친구 교수들을 향해 은퇴한 뒤에는 손가락을 사용하는 일을 해 보라고 권하였습니다. 그의 의도가 맞는지 모르겠으나 정신노동을 하던 사람은 육체노동을 해 보라는 뜻으로 읽었습니다. 그 글도 참고는 되었습니다.
그해 1월 초에 시작해서 2019년 7월까지, 중간의 석 달 다른 일을 한 시기를 제외하면 열여섯 달 동안 계속했습니다. 재활원에서의 아르바이트도 특별한 경험이었지만 대리운전도 새로운 세상을 겪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르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얼마간 채웠습니다. 평생 한정된 사람들과만 교유해 왔는데 다양한 사람들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 며칠 사이에(아마도 1주일 정도) 통과의례라 할 만한 일들을 겪었습니다. 눈 내린 날 밤 경기도 용인시의 어느 동네까지 갔습니다. 주변 거리가 캄캄했습니다. 콜(대리운전 호출)도 없어 서쪽으로 가는 버스가 있는지 살펴보니 다 끊긴 시간이어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중간에 본 도로 표지판을 기준으로 하면 9킬로미터 정도 걸었습니다. 서울행 붉은 버스 표지가 있는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용인경전철의 기흥역 부근이었습니다. 새벽 세 시 좀 넘었는데 시간표를 보니 첫차가 출발하려면 다섯 시가 지나야 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거리 불빛이 밝은 곳까지 옮겨 갔습니다. 거기서 콜을 기다려 보았지만 헛수고였습니다.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 컵라면으로 추위에 떨던 몸을 녹였습니다. 긴 시간을 추위 속에서 지냈는데 라면과 함께 하는 편안한 시간은 얼마나 짧게 느껴졌던지! 그날은 단 두 건의 운행만 처리한 채로 첫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이틀 쯤 뒤에는 김포의 어딘가로 갔다가 판단 잘못으로 용인에서처럼 긴 시간 걷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은 좀 늦게 시작했지만 성적이 좋았습니다. 고양시의 원흥 지구까지 갔는데 그곳에서 콜이 이어져 남양주로 갔습니다. 운 좋게 서울 방향으로 가는 버스 막차가 있어 타고 나오다가 구리 시내에 접어들자 콜을 받았습니다. 서울의 우장산 근처 아파트로 갔는데 거기서 곧바로 경기도 동탄 지구까지로 연결되었습니다. 매우 긴 거리를 별로 쉬는 시간 없이 운행했으니 시간 대비 수입은 높았습니다.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그곳은 동탄 중에서도 새로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는 거대한 벌판이었습니다. 2018년의 1월은 대단한 추위를 기록한 달인데 그날이 그 기록적인 추위가 닥친 날 중 하나였습니다. 새벽 두 시가 좀 넘어서부터 한 시간 남짓 추위를 견뎌내다가 택시를 잡아타고 사우나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습니다.
택시 기사가 내려준 곳은 북광장이란 곳이었는데 다행히 택시 요금이 그리 많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우나 간판은 찾질 못했지만 상관없었습니다. 식당과 주점, 호텔이 모여 있는 곳이었으니까요. 그러나 편의점에 들어가 컵라면을 먹은 게 그 밤의 마지막 일정이었습니다. 1호선 서동탄역을 찾아내어 서울행 첫차를 탔습니다.

먼 거리를 걷거나 대책 없이 추위에 떨거나 한 건 대리운전 생태계를 전혀 몰랐기에 겪은 일입니다. 일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대중교통 운행이 다 끊긴 시간에 대리운전 기사의 이동을 위한 수단이 있습니다. 이 사회에서는 ‘셔틀’이라고 부릅니다. 도시 외부 지역에서 도심 지역까지 운행하는 차량입니다.
대체로 개인들이 팀을 만들어 노선을 정하고 승합차로 서비스합니다. 이천 원 또는 삼천 원 정도의 요금을 받습니다. 거리에 따라서는 천 원이나 사천 원 하는 경로도 있습니다. 이 셔틀의 망(網)은 꽤나 촘촘합니다. 그러나 그 노선이 버스나 지하철처럼 공고되지 않습니다. 한번 이용해 본 사람이라야 압니다. 사고가 날 경우 보험 처리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교통수단도 있습니다. 택시 합승입니다. 도시 바깥 지역에서 이용합니다. 예를 들어 용인의 기흥이나 성남의 분당에서 네 명의 기사가 모여 서울 택시를 타면 강남의 번화가까지 가는데 한 사람당 삼천 원씩 부담합니다. 장거리를 빨리 이동할 수 있으니 효율적이지요. 택시 기사 입장에서는 미터 요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돈이지만 빈 차로 서울 가는 것보다는 낫다는 계산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택시 기사는 시간이 걸려도 미터 요금 낼 손님을 기다리느라고 이 합승을 거부합니다. 택시 기사의 이 선택은 대리기사의 그것과 비슷합니다. 대리기사도 운전하여 어느 지역에 도착하면 거기서 콜을 기다릴 것인가 콜 접수할 확률이 높은 곳으로 이동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니까요.

서울 시내에는 심야버스가 있어 도움을 받습니다. 노선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자정에 첫차가 출발하고 새벽 3시경에 막차가 출발을 합니다. 서울의 외곽 경계선에서 대각선 방향의 경계선 가까이 운행하니까 대리운전자의 이동에 긴요한 수단이 됩니다.
대리 기사를 위한 무료 애플리케이션도 있습니다. 셔틀 정보, 대중교통 정보 등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는 서비스인데 설치했다가 작동하기 불편해서 사용을 중단했습니다.

이 업계의 정보들은 셔틀이나 합승 택시 속에서 또는 도시 외곽의 주점가에서 대기하다가(다른 기사와 문답하여) 대리 기사들 사이에 유통됩니다. 셔틀 속에서는 적잖은 대화를 들을 수 있습니다. 운전을 하며 손님과 분쟁이 있은 이야기, 지역별 시장 특성, 다른 셔틀 노선의 정보, 고참(?)이 신참에게 전하는 조언, 지도 공부의 중요성 등 다양합니다. 누군가는 최근에 대리운전을 시작했다는 이에게 이런 말도 했습니다. “한겨울 추위와 여름 장마를 다 겪어 봐야 대리운전 해 봤다 소리 할 수 있는 거요.”
이 말이 들려올 때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한여름 밤의 도회지 열기가 가장 힘들었는데.’ 아프리카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 머물 때 그곳 사람들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한국의 한여름보다는 그곳 더위가 견딜 만하다고 그랬었지요. 인적이 뜸해진 한밤중 도심의 길 위에서 숨 막힐 것 같은 더위를 느껴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콜에 응하여 출발지까지 걷는 일이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 심한 더위 때문에 스스로 정한 지출의 규칙을 깨트리기도 했습니다. 대리운전을 하는 시간에는 호주머니 돈 지출의 기준을 평소와는 달리 정했습니다. 하룻밤 노동의 대가 수준에 맞추어 써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약간의 허기를 채우는 방법은 용인에서 경험한 것처럼 컵라면을 먹는 거였습니다.
고정 메뉴가 싫어질 때는 거리의 어묵 두 꼬치나 초콜릿 과자 하나를 선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도심지에서 유달리 더위를 견디기 힘든 밤이 있었습니다. 그때 눈 딱 감고 철야 영업을 하는 커피 집에 들어가 사천 원이나 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며 쉬어 보았습니다. 차가운 커피가 그렇게 맛있는 줄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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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홍승철

고려대 경영학과 졸. 엘지화학에서 경영기획 및 혁신, 적자사업 회생활동 등을 함. 1인기업 다온컨설팅을 창립, 회사원들 대상 강의와 중소기업 컨설팅을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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