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추경' 급한데...복지에 퍼주다가 '텅 빈 나라곳간'


'코로나 추경' 급한데…"현금복지 퍼주다 동났다"


이미 텅 빈 나라곳간

정작 위기 때 쓸 돈이 없다


'퍼주기 복지'에 재정대응력 바닥

추경예산 적자국채로 조달해야

올 국가채무비율 40% 넘을 듯


    경제상황과 정부 대응만 놓고 봤을 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위기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경제가 고꾸라지자 ‘본예산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1분기에 추가경정예산을 짜는 등 ‘나랏돈 풀기’로 경기 살리기에 나섰다는 점에서다. 달라진 건 나라살림이다. 그때는 곳간(국가채무비율 26.8%)에 여유가 있었지만, ‘퍼주기 복지’에 멍든 지금(2019년 37.2%)은 그렇지 않다. 탄탄한 재정에 기반한 2009년의 ‘슈퍼 추경’(28조3000억원)이 이듬해 ‘깜짝 성장’(6.5%)의 발판이 된 것과 달리 상당수 전문가가 ‘코로나 추경’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경기 부양 효과에 비해 부작용(재정건전성 악화)이 더 클 수 있다”(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려를 내놓는 배경이다.


추가 병상 마련된 대구병원 찾은 丁총리 정세균 국무총리(오른쪽)가 2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를 위한 추가 병상이 마련된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에서 현장점검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권 안팎에서 요청하는 추경 규모는 ‘10조원+α’다. 재원은 적자국채를 발행해 조달해야 하는 만큼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건전재정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40%를 훌쩍 넘어서게 된다. 또 다른 재정건전성 지표인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역시 올해 전망치(-3.6%)보다 더 악화된 -4% 안팎이 될 전망이다. 나라살림이 외환위기 때인 1998년(-4.7%) 후 22년 만에 최악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최근 몇 년간 지속된 확장 재정 여파로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탓에 정작 위기가 왔을 때 대응 여력이 약화됐다고 진단한다. 정부가 고령화로 인해 복지 수요가 대폭 늘어난다는 걸 알면서도 ‘지출 다이어트’ 대신 기초연금, 아동수당, 청년수당, 노인일자리 등 ‘현금성 복지 지출 확대’란 정반대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위기에 대응해 평소 나라 곳간을 비축해놔야 한다”고 말했다.


"재정은 이럴 때 쓰라고 아끼는 건데…" 펑펑 쓰다 '빚폭탄' 부메랑


문재인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추가경정예산 편성 검토를 지시한 지난 24일, 기획재정부 예산실 분위기는 침울했다. 예비비와 기금운영계획 변경 등을 통해 추경 없이 코로나19에 대응하겠다던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공언이 또다시 허언이 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잘 아는 ‘예산맨’들이 추경 없이 버티려 했던 이유는 이랬다. ①올해 512조원이 넘는 ‘초슈퍼 예산’을 짠 덕분에 현재 여윳돈이 있는 상황에서 ②1~2주일 만에 쫓기듯 추경안을 내놓다 보면 자칫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재정건전성만 축낼 수 있다고 본 것. 하지만 “지금 카드를 다 쓰면 코로나19가 더 크게 확산될 때 내놓을 정책수단이 없다”는 일부 ‘곳간지기’의 의견은 또다시 정치권과 청와대의 힘에 눌렸다.




급격한 재정 악화 불가피


정부가 ‘코로나19 추경’을 편성하기로 함에 따라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침체와 각종 세금 감면으로 ‘벌이’(국세수입)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씀씀이’를 더 늘리기로 해서다.



경제계에서는 올해 세수 감소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 법인세뿐 아니라 소득세, 부가가치세 등 거의 모든 세수가 일제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 목표치를 2.4%로 잡았지만, 국내외 기관들은 코로나19를 반영해 앞다퉈 전망치를 1%대로 낮추고 있다. 심지어 0.4%(모건스탠리)로 전망하는 글로벌 투자은행(IB)이 나왔다. 코로나19 대책으로 각종 세금 감면이 계획된 것도 ‘세수 펑크’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행되는 추경은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치권에서 요구하는 ‘10조원+α’를 추가로 마련하려면 적자국채를 대거 찍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건전재정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꼽히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40%’가 무너지는 시점도 내년에서 올해로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올해 정부가 추정한 국가채무비율은 39.8%, 내년은 42.1%다.


전문가들은 급속도로 나빠지는 재정건전성의 원인으로 ‘방만 경영’을 꼽는다. 코로나19처럼 국가재난급 위기가 올 때 추경을 편성하는 등 적극적 재정정책을 펼치는 데 대해선 대다수가 동의한다. 하지만 평소 씀씀이를 늘린 탓에 정작 위기가 왔을 때 대응할 여력이 줄어들었다고 설명한다.




실제 그랬다. 정부는 올해 초슈퍼예산을 짜기 위해 적자국채를 60조원어치 발행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늘어난 돈의 45.7%는 노인 일자리 창출(작년 61만 개→올해 74만 개), 기초연금과 아동수당 확대 등 복지·고용 예산에 배정했다. 결과는 ‘나라 빚’ 증가였다. 2017년 660조2000억원이던 국가채무는 지난해 731조5000억원, 올해 805조원으로 불어난다. 추경이 확정되면 올해 국가채무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메르스 ‘졸속 추경’ 재연될지도”


추경에 담을 사업을 심의·검토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다. 청와대와 여당이 제시한 추경안 통과 마감시한(3월 17일)을 지키려면 늦어도 다음달 10일에는 국회에 추경안을 제출해야 한다. 총규모가 10조원에 달하는 수많은 사업을 2주일 안에 마련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졸속 추경’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




과거 정부는 전염병 및 경제위기 등에 대응하기 위한 추경을 편성하는 데 한 달 이상 시간을 썼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는 한 달,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두 달 동안 공을 들였다.


정부 안팎에서는 코로나 추경이 2015년 메르스 추경의 판박이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당시 기재부는 추경 편성을 결정(6월 25일)한 지 8일 뒤인 7월 3일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1주일 만에 12조원 가까운 돈을 쓸 계획을 내놓다 보니 허점투성이였다.


정부 일각에서는 2003년 사스 때처럼 당장 급한 곳부터 ‘핀셋 추경’으로 지원한 뒤 사태 추이를 지켜보며 추가 대책을 내놓는 ‘단계적 추경’도 대안으로 내놓는다. 정부는 2003년 6월 사스로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1차 추경을 한 뒤 9월 태풍 매미가 오자 10월 2차 추경안을 내놨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거시 경제 부양을 위해 추경 규모를 무턱대고 늘렸다가는 효과가 분산돼 혈세만 낭비하게 될 것”이라며 “일단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업종과 지역 등을 ‘핀셋 지원’해야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오상헌/성수영 기자 ohyeah@hankyung.com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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