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유감: 박물관인가 공원인가? [정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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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유감: 박물관인가 공원인가?

2020.02.25

한 두어 해 만이었을까요. 가볼 엄두가 잘 나지 않는 곳이라 언제 마지막으로 갔었는지도 분명히 떠오르지 않는군요. 국립중앙박물관, 그곳에 가려면 참 큰맘 먹어야 하는 곳입니다. 저만 그럴까 싶어서 주변에 물어보면 많은 분들이 찾아가기에 짜증이 나서 잘 안 가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자주는 아니라도 한 번씩은 가봐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번 '가야본성(伽倻本性)' 전시가 그랬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가야는 과연 무엇인지가 늘 궁금하던 차에 중앙박물관이 그렇게까지 홍보하는 전시라,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곳을 찾았습니다. 가는 길에서 날 수밖에 없는 예의 그 짜증을 전시에 대한 기대로 억눌렀습니다.

문외한의 눈으로, 이번 가야 전시는 훌륭했습니다. 하나하나 내용도 새롭고 전반적으로 풍성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무엇보다 전시 방법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가야 왕족의 순장묘(殉葬墓)를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벽면에 관(棺)과 순장품, 순장 인물들의 위치를 그려놓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읽어본 전문가들의 비평에, 전시 내용이 역사적 고증 면에서 그리 뛰어난 게 아니라는 이야기가 있어 다소 씁쓸함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오늘은 가야에 대한 전시보다는 국립중앙박물관 자체에 대해서 한마디 하고자 합니다. 한참 오래전에도 전철역을 나와 한여름 땡볕 아래서 15분여를 땀을 훔치며 걷다가 짜증이 나서 그때 겪은 경험을 칼럼으로 쓴 적이 있습니다. 그 칼럼의 말미에서 지하철역과 박물관 입구를 잇는 지하통로 건설을 제의한 바 있었습니다. 몇 년 후에 가보니 과연 지하통로가 멋지게 뚫려 있었습니다. 아마도 당초 설계에 있던 지하통로 건설이 개관 후로 미루어져 나중에 뚫게 된 것이라 짐작합니다. 그러나 기왕 뚫을 바에는 박물관 건물 입구에 바로 닿을 수 있도록 했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여전히 지하통로의 출구에서 박물관 건물까지 가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들고 계단 오르는 데 불편이 따릅니다. 한번 더 생각해서 지하통로를 박물관 현관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강구해주면 좋겠습니다.

그 외에도 지하통로를 걸으면서 생각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이 긴 지하통로를 이른바 "교통약자들'이 어떻게 힘들지 않게 다닐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곳을 몇 번 통과하면서 엄마 손을 잡은 아이들이 가장 많이 눈에 띄었고 장애인이나 노년층이 이 통로를 이용하는 것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분들에게 이 지하통로 통과는 일반인들보다 두세 배는 더 시간이 소요될 것이며 그러는 동안 지쳐서 박물관 가기를 포기하기가 십상일 것입니다.

요즘 김포공항엘 가보면 지하철역을 나와 공항 건물까지 가는 기나긴 통로에 셔틀 서비스(골프카트)가 있어 노약자, 장애인, 또는 짐 많은 여행객들을 수송해줍니다. 매우 잘하는 일인데 이런 서비스를 국립중앙박물관은 왜 안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박물관 자체에서 관람객 통계를 내고 있을 것으로 알지만 통계를 보면 어떤 층의 잠재적 관람객이 오지 않고 있는지를 쉬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지하통로 셔틀 서비스를 포함하여, 장애인, 노약자와 짜증이 나서 오지 않는 일반인들의 박물관 관람 장려를 위한 방안을 조속히 세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정말 유감일 수밖에 없는 것은 무엇보다 취약한 접근성  때문일 것입니다. 도심에서 먼 거리에 위치해 있다는 데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기에 반복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중앙박물관이 나라의 과거와 현재를 비쳐주는 중심적 문화 시설임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며 그런 발상에서 어떤 개선책이 나올 수도 있다는 작은 가능성마저 저버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라면 그 위상에 걸맞은 위치에 있는 것이 옳습니다. 지금 그 자리에 있는 동안에는 국내외 관람객들이 쉽게 찾아와서 쉽게 들어가 관람할 수 있도록 접근성이 개선돼야 합니다. 대중교통으로 쉽게 접근할 수 없다면 적어도 자동차로는 가기 쉽게 해야 할 것입니다.

용산의 그 큰 부지에 들어서 있는 것은, 박물관 건물을 빼고는 앞뒤로 이어지는 거대한 공원입니다. 뒤는 작은 숲이고 앞은 호수만 한 연못입니다. 전체적으로 조망할 때 이곳은 박물관으로서보다는 공원으로서 더 효용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건물의 입지도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좋은 점을 누릴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국립중앙박물관은 박물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위주로 건설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박물관으로서의 유용성보다는 방문자들이 와서 편하게 쉬면서 풍광을 감상하고 아이들이 와서 뛰어놀기 좋은 공원으로서의 효용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당국이나 설계자들이 의도적으로 그리한 것인지 또는 모르고 그리한 것인지 알 도리가 없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부지 안에 큰 공간을 차지하는 숲이 왜 필요하며 거대한 연못이나 팔각정이 왜 필요합니까?  이런 것들은 경회루가 있는 경복궁이나 비원이 있는 창덕궁 등 유서 있는 고궁에서 찾으면 될 일입니다. 박물관은 그 나라의 고대와 근현대를 비쳐주는 거울로서, 옛 숭례문처럼 나라의 진정한 얼굴로서의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본말이 전도된 이런 구조 때문에 진정 박물관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찾아가는 것부터가 짜증스러워서 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 위치에서 접근성을 크게 높이기 위한 무슨 방법이 더 없을까요?

쉽지 않을지는 몰라도 매우 단순한 방법이 있습니다. 애초의 잘못된 발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필요없는 인공의 연못을 메우고 그 일대를 주차장으로 만들어 자동차로 방문할 사람들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뀐다면 사람들이 훨씬 편리하게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을 수 있고 훨씬 적은 시간을 들여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국민을 위한 박물관이며 박물관 행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국민이라면 국립중앙박물관에 자주 들러서 과거와 대화를 하고 선인들의 문화적 유산에서 뭐라도 배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나라의 많은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이 여기에 와서 공원처럼 뛰놀고 쉬면서 즐기는 게 아니라 그들이 우리의 과거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미래의 문화를 창조하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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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파나마, 이집트대사를 역임했다. 은퇴 후 제주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절로 귀촌을 하게 되었고, 현재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꽃나무들을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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