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심부름 [한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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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심부름

2020.02.21

오랜만에 지인으로부터 만나자는 전화가 왔습니다. 약속장소를 정하다가 흔히 하던 대로 종로3가역 5번 출구 앞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둘이 만나서 특별하게 할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늘 하던 대로 얼굴이나 보면서 술이나 한잔하자는 만남이라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장소가 편합니다. 복잡한 거리라도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면 금방 위치를 찾을 수 있어서 불편한 점은 없습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에만 해도 거리에서 만나는 약속은 드물었습니다. 특별히 커피를 좋아하지 않아도 커피숍에서 만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쉽게 찾을 수 있는 커피숍에서 만나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안부를 주고받다 술집이나 식당 등으로 이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커피가 대중화되기 전에 ‘다방’은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최소한 양복을 입고 다니는 신사들이나, 지역의 유지 정도가 되어야 다방에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일반인들은 맞선을 보기 위해, 혹은 집이나 땅을 팔고 사는 계약을 할 때나 다방 출입을 했습니다. 그러지 않고 커피를 마실 생각으로 다방 출입을 했다가는 이상한 눈초리를 받기 쉽습니다.

다방 문화가 자리 잡기 전에 어른들의 만남은 주로 집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어른들이 집에서 친구분들과 만나면 으레 막걸리를 마시게 됩니다. 아버지는 친구분이 오시면, 당신이 직접 술ㄹ주전자를 들고 술을 사러 가지 않으십니다.

그 시절의 풍습은 어른들이 대낮에 술ㄹ주전자를 들고 다니는 모습은 점잖지 못한 행동으로 보는 경향이 짙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싶을 때는 어린 자식들이나 아내들에게 주전자를 들고 가서 막걸리를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요즘에는 미성년자들에게 술을 팔지 않지만, 그 시절에는 학교에 입학하지도 않은 아이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술주전자를 들고 논둑길을 걷는 광경이나, 어스름 해가 지고 있을 때 술주전자를 들고 바쁘게 걷는 단발머리 초등학생들은 무시로 볼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막걸리 심부름을 해 본 사람이라면 몰래 몇 모금 정도 마셔 본 기억도 있을 것입니다. 과연 술맛이 어떻길래 어른들이 그렇게 좋아하나? 하는 생각에 몇 모금 맛을 봅니다. 어느 때는 너무 많이 마셔 물을 타서 아버지께 갖다 드리고 행여 들통이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놀러 나가지도 못하고 가슴 조이며 술판을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나이가 열두 살이나 열세 살 정도입니다. 아버지를 따라 일을 다니다 보면 나이는 어리지만 더벅머리 총각처럼 하루가 다르게 덩치가 자랍니다. 요즘 같으면 어림도 없겠지만, 그 시절에는 배가 든든해야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다는 명분으로 어른들이 막걸리를 따라주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 농촌에서는 현금을 만질 수 있는 때가 따로 있었습니다. 농작물을 수확해서 팔았을 경우나, 남의 집 일을 해 주고 품삯을 곡물이 아닌 현금으로 받았을 경우입니다. 특별한 경우는 1년 농사가 시작되는 1월이면 그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자금을 대출받았을 때입니다.

“아버지가 나중에 드린다고 막걸리 한 되만 달래요.”

막걸리 살 돈이 없다고 집에 온 지인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주점이나 식당 주인은 외상으로 달라는 말에 토씨 하나 달지 않고 주전자에 막걸리를 담아 줍니다. 외상은 장날 팥이며 콩이나 고추 같은 것을 판 돈으로 갚습니다.

술이 있으면 안주가 있어야 합니다. 요즘 같으면 집술을 마실 때는 치킨이나 족발은 물론이고 웬만한 안주는 모두 주문할 수 있습니다. 그 시절에는 아침상에 올라갔던 깍두기도 괜찮고, 신ㄹ김치에 멸치를 고추장을 내놓기도 합니다. 그마저 없으면 굵은 소금을 안주 삼아 막걸릿잔을 정겹게 비우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대접받는 쪽이나, 대접하는 쪽 모두 부담을 갖거나 불편해하지 않았습니다.
막걸릿잔을 가운데 두고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저녁때가 될 때도 있습니다.

“먹는 밥에 숟가락 하나만 더 얹으면 됭께, 암데서나 드시고 가셔유.”
아버지와 막걸릿잔을 주고받던 친구분은 어머니의 말씀에 집이 지척에 있는데도 밥상 앞에 앉으시기도 합니다.

막걸리는 새참에도 빠지지 않습니다. 여름날 지게를 지고 들에 일하러 갈 때 막걸리를 주전자나 병에 담아서 가지고 가는 경우는 드뭅니다. 새참을 먹을 시간과 맞춰서 막걸리를 사 와야 시원하게 마실 수가 있습니다.

초여름에 행여 주전자의 술이 쏟아질까봐 조심스럽게 걸으면 땀이 나기 마련입니다. 버드나무 밑이나, 산그늘에 앉아 있으면 갈증이 납니다. 막걸리를 딱 한 모금만 마신다는 것이 너무 많이 마셔 취한 끝에 그 자리에서 무너져 잠이 들었다는 이야기는 흔하게 들었습니다.

주머니의 전화기 역할을 하는 스마트폰이 편리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정겨운 사람들끼리 만나는 횟수는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손가락만 까닥거리면 언제든 소식을 전할 수가 있고, 영상이나 좋은 말들을 공유할 수가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특별한 일이 아니고는 약속을 일방적으로 취소할 수가 없습니다. 기다리는 쪽을 생각해서 일단 약속장소까지는 나갑니다. 지금은 간단한 문자나 전화로 약속을 취소해 버립니다. 가까운 지인일지라도 서로의 집으로 불러서 세상 사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정겨운 시간을 보내는 풍습은 먼 기억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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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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