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때문 재정파탄 그리스 "돈되는 건 모두 팔아"..한국의 운명은?


공무원 3배 늘린 그리스 재정파탄, 항만·공항까지 외국에 팔아

[조선일보 100년 기획]
[포퓰리즘에 무너지는 나라] 그리스…

취업자 4명 중 1명꼴로 공무원… 8시 반 출근해 오후 2시 반 퇴근
유럽서 가장 후한 연금제도 운영… 은퇴 전 월급의 95%까지 지급

정부자산 7만여개 매각 리스트에… 앞으로 52조원어치 더 팔 계획



    지난달 13일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서 남서쪽으로 10㎞ 떨어진 피레우스항. 해운 강국 그리스의 최대 항구지만 마치 중국의 항구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五星紅旗)가 펄럭이고 있었다. 사무소 간판엔 '中遠海運(중위안하이윈)' '比雷埃夫斯(비레이아이푸쓰)' 등 문구가 쓰여 있었다. 중국원양해운(COSCO)이 운영하는 피레우스 부두라는 뜻이었다. 하역 작업을 하는 컨테이너선 중에 가장 큰 배는 20만t급 제미니호로서 역시 COSCO 소속이었다. 하역장의 한 관계자는 "전체 물동량 중 약 80%는 중국에서 온 것"이라고 했다. '그리스의 심장' 격 피레우스항은 '중국에 의한, 중국을 위한 항구'였다.

중국에 운영권 넘긴 그리스 최대 항만 - 작년 11월 그리스 최대 항만인 피레우스항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와 항구를 둘러보고 있다. 그리스는 재정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공무원 증원과 연금 확대로 국가 부도 위기를 맞았고, 급한 불을 끄기 위해 2010년 나라의 심장과도 같은 피레우스항 운영권을 중국에 넘겼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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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는 글로벌 금융 위기와 남유럽 재정 위기라는 파고 앞에 힘없이 쓰러졌다. 2010년부터 8년간 ECB(유럽중앙은행) 등으로부터 2887억유로(약 370조원)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끌어와 간신히 국가 부도를 막았다. 그리스 정부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2곳인 피레우스항 컨테이너 터미널의 운영권을 2010년과 2016년 한 개씩 모두 COSCO에 넘겼다.

공무원 공화국이 낳은 망국의 길

그리스에 구제금융의 치욕을 가져온 장본인은 좌파 사회당의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다. 1981~1996년 사이 두 차례에 걸쳐 11년간 집권한 파판드레우는 "국민이 원하면 뭐든지 다 줘라"라는 말로 유명하다. 특히 그는 '공무원 공화국'을 만들어 망국의 길로 가는 문을 열었다.

 


파판드레우가 처음 집권한 1981년 그리스 공무원은 30만명이었다. 구제금융에 들어간 2010년에는 90만명으로 3배로 불어났다. 이 무렵 취업 인구 4명 중 한 명꼴로 공무원이었다. 공무원 증원은 단기간에 손쉽게 고용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었다. 넘쳐나는 공무원들은 8시 30분에 출근해 대개 오후 2시 반이면 퇴근했다. 경찰은 한 번 순찰을 나가면 5~6명이 떼지어 돌았다. 공무원들은 신분 보장은 기본이고 높은 수준의 임금 인상을 보장받고 친정부 세력이 됐다. 그리스의 젊은 공무원은 '골든 보이(Golden Boy)'로 불렸다. 민간 기업에서 일하는 또래보다 연봉이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공무원 증원 외에도 그리스는 유럽에서 가장 후한 연금 제도를 만들었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친 2008년, 은퇴 전 월급 대비 연금 지급액을 말하는 소득 대체율이 95%에 달했다. 독일이 42%이던 시절이다. 그리스 정부의 연금 지출액은 1991년부터 18년간 연평균 8.3% 속도로 증가했다. 연금이 후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탈리아(3.8%)보다 두 배 이상 빨랐다. 이외에도 모든 계층에게 무상 의료를 제공했다. 대학을 못 간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국비로 해외 유학을 보내주는 제도까지 만들었다.


항만·공항·유적지 국가 자산 해외 매각

무리하게 공무원을 늘리고 복지 혜택을 퍼준 결과 나랏빚은 천문학적으로 쌓였다. 1980년 그리스 국가 부채는 16억유로였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2000년에는 92배인 1482억유로까지 늘어났다. 1980년 22.5%였던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 부채는 2018년에는 184.8%까지 상승했다. 해운업·관광업 외에 산업 기반이 변변치 않은 그리스는 구제금융 시기가 도래하자 국가 자산을 내다 파는 것 외에 돈을 끌어올 방법이 없었다. 항구·공항·섬·유적지·호텔·해변 등 정부가 가진 시설물을 닥치는 대로 해외 민간 자본에 팔아넘겼다. 2011년에는 아예 국유 재산 매각을 전담하는 그리스자산개발(HRADF)이란 공기업을 세웠다. HRADF는 정부 자산 7만여개를 담은 '매각 리스트'를 만들어 가능한 대로 팔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약 12조원어치를 민간에 팔았고, 앞으로 약 52조원어치 이상 더 팔 계획이다. 작년 그리스 경제 규모(약 250조원)의 4분의 1이 넘는 금액을 매각한다는 것이다.

 


피레우스항에 이어 둘째로 큰 항구인 테살로니키항의 운영권도 2018년 다국적 컨소시엄에 넘어갔다. 로도스섬 공항 등 14개 지역 공항 운영권은 독일 자본에 팔렸다. 지난달 HRADF는 20세기 초 건축 문화유산인 '카스텔로 비벨리'를 410만유로(52억원)에 민간에 팔았다. 그리스 싱크탱크인 유럽정책연구재단의 카치카스 드미트리오스 수석연구원은 "나라가 망가진다는 걸 알면서도 그리스인들은 마약과도 같은 과도한 복지 혜택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권순완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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