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덴 공습과 박수 없는 2월 연주회 [허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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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 공습과 박수 없는 2월 연주회

2020.02.14

제2차 세계대전 때 처참히 파괴되었던 독일 드레스덴에서는 매년 2월 중순 추모 연주회가 열립니다. 박수가 없는 특이한 연주회입니다. 성악곡 공연에서는 독창자들과 지휘자 입장 때 짧게, 연주가 끝난 후 요란한 박수로 연주자들에 찬사를 보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드레스덴 추모 연주회에는 박수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75년 전 이맘때 유럽과 아시아 대륙, 즉 유라시아 대륙의 양단에서는 세계 대전의 종식을 앞두고 전쟁의 강도가 극도로 높아졌습니다. 나치 독일은 1945년 4월 초, 일본은 8월 중순에 항복했는데 직전 기간에 미국, 영국, 소련(USSR)이 주를 이룬 연합군은 두 추축국의 전쟁능력과 의지를 박살내 전쟁을 빨리 종식하려고 엄청난 압박을 가했던 거지요. 1945년 2월 초 전쟁 종식 방식과 전후 처리를 논의하기 위해 연합국 정상들이 소련의 얄타에서 회담을 엽니다. 스탈린은 히틀러의 본거지 베를린 가까이 진격한 소련군에 저항하는 독일이 서쪽에서 동부전선으로 병력을 이동하는 것을 막아줄 것을 요구합니다. 병력 이동을 막으려면 독일 내 철도 운송망을 파괴하는 것이 더 중요해집니다.  

이런 사정을 배경으로 정확히 75년 전 어제(2월 13일) 밤부터 며칠간 드레스덴에는 영국과 미국 공군의 대규모 공습이 이어집니다. 독일 동남부 깊숙이 체코와의 국경 가까운 작센주 엘베 강가에 위치한 드레스덴은 당시까지 연합군 폭격이 드물었던 도시였습니다. 소수의 군수산업 시설이 있었고 동남부 철도망 중심지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 발진하는 폭격기들이 이곳까지 오려면 독일 영토 전부를 통과해야 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겠지요. 또 그곳 목표물들의 전략적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드레스덴 시민들은 ‘엘베 강의 피렌체’라고 불릴 만큼 문화적 유서가 깊은 곳이라 연합군이 무차별적인 파괴를 피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2월 13일 밤 공습은 영국 폭격기들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240대가 넘는 중형 폭격기들이 참여했습니다. 본진은 시차를 두고 선두 그룹이 건물을 파괴하거나 지붕을 파괴하는 대형 폭탄을 투하한 지역에 화재를 일으키는 소이탄을 대량 투하했습니다. 군사시설이 없던 광범위한 도심지역이 폭격으로 대형 화재가 발생하며 많은 사상자를 내고 건물들이 무참히 파괴되었습니다. 다음 날 낮에는 미군 폭격기들이 도심과 주변 지역에 대한 공습을 이어갔습니다. 동쪽에서 쳐들어오는 소련군을 피해 몰려든 피란민들로 어수선했고, 방공 대피시설이 별로 없던 탓에 공습으로 인한 사망자가 약 2만5천 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한 목격자들의 생생한 기록이 많습니다. 드레스덴 폭격의 참상이 널리 알려지는 데에 미국 작가 커트 보니것(1922~2007)의 목격담의 기여가 컸습니다. 미군 병사로 참전했다가 독일군에 포로로 잡혀 드레스덴에 수용되었던 연유로 그는 연합군 공습의 피해를 목격하게 됩니다. 독일군은 포로들을 동원하여 희생자 시신들을 묻으려 했으나 너무 많아 어려움을 겪자 현장에서 화염방사기를 동원해 소각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한 유명 소설 <제5 도살장>이 1969년에 나오며 보니것은 미국의 반전 문학의 대가로 자리매김됩니다.

드레스덴이 위치한 동부 독일은 종전 후 동독의 일부가 되고 폭격으로 파괴된 역사적 건물들이 점차 복원됩니다. 19세기 후반에 바그너의 친구 젬퍼의 설계로 지어진 유서 깊은 젬퍼오퍼(Semperoper, Semper Opera House)가 1945년 공습 때 완전히 파괴되어서 동독 정부가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을 지으려고 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1985년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됩니다. 이 공연장을 주로 이용하는 드레스덴 국립관현악단(Staatskapelle Dresden)은 역사가 450년이 넘는 유럽에서도 가장 오래된 악단의 하나입니다. 칼 마리아 폰 베버가 19세기 초, 리하르트 바그너가 19세기 중반 이 관현악단 전신의 궁정악장을 역임했고, 20세기 이후에도 칼 뵘 등 고전음악 애호가들에 익숙한 유명한 지휘자들이 상임지휘자를 역임했습니다.

1951년 이후 드레스덴 관현악단과 국립오페라합창단은 이 젬퍼오퍼에서 매년 2월 13일 폭격희생자 추모 연주회를 열어 진혼곡(Requiem)을 공연해오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 공연영상 두 개를 우연히 보았습니다. 2004년 콜린 데이비스가 지휘하는 모차르트의 <진혼곡>과, 2010년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지휘하는 베토벤의 <장엄미사>입니다. 2, 3년 전 유투브에서 곡명 검색으로 찾은 이들 공연 영상에 신기하게도 박수 소리가 없었습니다. 유튜브에 변변한 설명이 없어 궁금했는데. 그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 독특한 추모 연주회가 보니것의 <제5 도살장>을 통해 내가 이미 알고 있었던 1945년 드레스덴 폭격과 연관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현재 드레스덴 관현악단의 상임 지휘자인 틸레만의 <장엄미사>도 상당히 감동적입니다. 그런데 콜린 데이비스의 <진혼곡>은 작금의 상황을 감안하면 두 가지 면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그의 출신국 영국은 바로 75년 전 드레스덴에 처음으로 폭탄을 대거 투하했던 폭격기들이 발진한 곳입니다. 드레스덴 국립관현악단은 데이비스에게 명예 지휘자 지위를 부여해 그가 2013년 사망하기 전까지 드레스덴 추모 연주회를 여러 차례 맡겼습니다. 아픈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로운 유럽을 만들자는 확실한 독일의 의지를 보여주는 제스처로 보입니다. 두 번째, 영국 정부는 올 1월 말 유럽연합(EU)을 공식적으로 탈퇴함으로써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2차 대전 이후 더 가까운 유럽을 향해 동승했던 열차에서 Brexit역에 도중하차했습니다.

곳곳에서 유권자들이 선동적인 지도자들을 선출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과거 드레스덴 추모 연주회 말미의 침묵은 전적으로 1945년 공습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의 의미였던 것에 비해 이제부터 묵념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앞날에 대한 걱정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공연의 극적인 피날레 후 열광적 박수가 아니라 무거운 침묵이 이어지는 모습을 직접 경험해보시길 권합니다. 

Sir Colin Davis의 Mozart <Requiem>
https://www.youtube.com/watch?v=D95igow6I6g

Christian Thielemann의 Beethoven <Missa Solemnis>
https://www.youtube.com/watch?v=tpS_O-2-fQ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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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2019년 초까지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다양한 국내외 경제 현상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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