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싸는 외국인 근로자들...주 52시간 때문에?


"주 52시간 없는 공장 갈래요"…짐싸는 외국인 근로자들


인력난 중견·중소기업 '이중고'


외국인근로자 잔업 원하는데

회사가 못 들어주자 잇단 이직

최저임금 올라 외국인 기피도


    경기 김포시에서 선반제조업체를 운영하는 민모 사장은 최근 외국인 근로자 3명의 근로계약을 해지했다. 추가근무수당을 받기 위해 “잔업을 더 달라”며 태업하는 근로자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시행된 주 52시간 근로제가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유지 등에 또 다른 변수로 떠올랐다. 최저임금 급등으로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 중견·중소기업이 외국인 근로자의 추가 잔업 요구 등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50인 이상 300인 미만 중소 규모 사업장까지 주 52시간 근로제가 확대되면서 중소기업들이 외국 인력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기 김포시의 한 제조공장에서 도장 작업을 준비 중인 외국인 근로자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민 사장은 “불황으로 일감은 줄어드는데 외국인 근로자들은 잔업수당을 받기 위해 초과 근무를 요구하고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법까지 어길 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이어 “불만을 품은 근로자들이 대놓고 태업하면서 이직을 요구하는 사업장이 많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코리안드림’을 품은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고용선호도는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 인력 확보 경쟁을 벌이던 기업들의 외국인 근로자 신청은 최근 미달사태를 빚고 있다. 2004년 도입된 외국인 근로자 고용허가제를 업계 현실에 맞게 대폭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견·중소기업의 외국인 근로자 신청률은 86.2%에 불과했다. 외국인 1만4229명 배정에 중소기업 신청 인원은 1만2261명에 그쳤다. 외국인 근로자 신청은 2014년 1분기 처음으로 미달한 데 이어 5년 만인 지난해 1분기 1만5920명 배정에 1만4897명만 신청하며 다시 미달됐다.


부산의 한 조선기자재업체 대표는 “내국인이 대체할 수 없는 일부 업무에만 외국인을 제한적으로 고용하고 있다”며 “숙식비 등 제반 비용과 고용 유지, 생산성 등을 고려하면 외국인 고용 메리트는 사라진 지 오래됐다”고 강조했다.




외국인 "주 52시간 일해선 생활비 못 보내"…50인 미만 공장으로 이직

3D 업종(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분야 산업)의 궂은일을 도맡으며 국내 중견·중소기업의 인력 공백을 메워왔던 외국인 근로자가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했다. 경기 불황으로 수주 물량이 줄어든 데다 주 52시간 근로제까지 확대 시행되면서 업계는 최대한 잔업·야근 근무를 줄이고 있지만 외국인 근로자는 “일감 많은 회사로 이직하겠다”며 사측과 갈등을 빚고 있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최근 최저임금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이들에게 지급하는 인건비가 급등한 것도 중소·중견기업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업계에선 “외국인 근로자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지 벌써 16년이 지난 만큼 현실에 맞는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감 더 달라” 태업 불사하기도

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기업의 외국인 근로자 고용 신청률은 107%로 집계됐다. 2017년 240%에 달했던 신청률은 2018년 140%로 떨어지는 등 급감하는 추세다.


인력난이 심각한 중소기업계에서 최근 외국인 노동자 선호도가 뚝 떨어진 건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올 들어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에도 주 52시간 근로제가 적용되면서 사측과 갈등을 빚는 외국인 노동자가 많아진 것 역시 주요 이유 중 하나다.


70인 규모의 한 수도꼭지 제조업체 사장은 “‘잔업을 허락하든지, 다른 업체로 이직하게 해달라’며 업무에서 빠진 외국인 근로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 중 2명의 근로계약을 해지해줬다. 이 회사 대표는 “태업 또는 근로 거부가 신고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당장 생산 일정에 차질을 빚더라도 계약 해지가 상책”이라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제도와 잔업수당으로 인해 외국인 근로자들과의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장기 근속 비중은 줄어드는 추세다. 외국인 근로자는 원칙적으로 첫 직장에서 계속 근무해야 하지만 사업주의 승인이 있거나 근로기준법 위반 등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3년간 세 번 이직할 수 있다.


지난해 같은 직장에서 6개월 이상 1년 미만 근속한 외국인은 13만8800명으로 전년 대비 1만500명 늘어난 반면 3년 이상 같은 직장에 종사한 외국인(24만8500명)은 전년 대비 7500명 줄었다. 한 금형제조업체 대표는 “외국인 근로자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직장 정보를 활발하게 공유한다”며 “대부분 현재 직장보다 근무여건이 열악하더라도 벌이가 좋은 직장으로 옮기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업계,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고용허가제 대폭 손질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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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건비 부담에 허리 휘는 中企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도 중기업계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위상이 급격히 추락한 원인 중 하나다. 지난해 2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외국인 인력 미신청 사유를 조사한 결과 ‘인건비 부담’(34%)을 꼽은 업체가 가장 많았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8년 근로소득세 연말정산을 신고한 외국인 근로자의 총급여는 14조8263억원으로 전년 대비 5.9% 증가했다. 1인당 평균 급여액은 전년 대비 3.1% 늘어난 2590만원이다. 한 페인트 도장업체 대표는 “2~3년 전 숙식비 포함 1인당 200만원 정도였던 인건비가 지금은 260만원이 넘었다”며 “내국인을 구할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최소한으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중기 인력난이 더 심해지기 전에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고용허가제를 대폭 손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 직장을 그만둬도 3개월 이내에만 새 직장을 구하면 페널티가 없는 현행 제도를 더 엄격하게 개정해야 한다”며 “임의로 직장을 옮기며 일선 사업장에 혼란을 일으키는 것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업계에선 급여에 숙식비 일부를 포함시키는 등 사측 부담을 줄여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가 외국인활용업체 1422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 중 90%는 근로자 1명당 월평균 40만원의 숙식비를 부담하고 있다. 이 중 61.3%는 ‘급여와 별도로 숙식비를 부담하고 있다’고 답했다. 고용허가제 도입 직후 싼 인건비를 배려한 사측의 숙식 제공이 관행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는 내국인에 비해 숙식비 등 간접비를 두 배 이상 많이 받고 있다”며 “산업 현장에서 외국인 역할이 적지 않은 만큼 임금 체계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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