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건축 ‘줄기세포’는 의자…팔걸이 클수록 더 센 권력자


최소 건축 ‘줄기세포’는 의자…팔걸이 클수록 더 센 권력자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도시와 건축

건축은 거친 자연의 환경을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드는 필터 장치다. 건축물이라는 필터장치가 스케일이 작아지면 방이 되고, 방에서 더 작아지면 가구가 된다. 가구 중에서도 가장 작은 단위는 의자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의자보다 한 단계 더 내려가서 방석이 있다. 의자와 방석은 개인이 공간을 점유하게 해주는 최소단위 장치다. 그런데 이 의자는 권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돈과 나만의 공간 있어야 의자 제작

체중 분산 더 잘 될수록 지위 높아


그리스 원형극장에 첫 시민용 의자

17세기 명예혁명 덕 공원에 벤치도


유목민족 후예 우리는 방석 발달

거실은 공통의 추억 나누는 공간


얼마 전 뒷좌석에 팔걸이가 있는 고급 승용차에 탔다. 팔걸이에 팔을 올렸을 때는 편했는데, 팔걸이를 치우니 앉아있을 때 더 힘들었다. 이런 차이는 팔의 무게를 허리 대신 팔걸이가 나누어 받쳐주기 때문이다. 팔걸이는 사람을 더 편하게 해준다. 그래서 권력자인 왕이나 회장님의 의자에는 팔걸이가 있는 것이다. 비행기 비즈니스클래스는 팔걸이가 크고, 이코노미는 작다.  



 

고대엔 동물 발 모양, 지금은 기능 우선


 

알렉산드로 멘디니의 프루스트 의자. 1978년 작품이다. [중앙포토]


권력이 클수록 더 넓은 면적으로 체중을 분산해서 받는다. 의자가 점점 더 편해지면 침대가 된다. 비행기 일등석은 의자가 침대가 된다. 최근 들어서 팔리는 안마의자는 하인 두세 명이 붙어서 서빙하는 의자와 같다. 그래서 그 제품의 이름은 ‘파라오’다.



 

의자가 권력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동맹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의자를 가진 자는 의자와 동맹을 맺음으로 더 편할 수 있고 더 진화된 상태이다. 그런데 의자를 만들려면 돈이 든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 권력자만 의자를 가질 수 있었다. 둘째, 의자는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용하지 않아도 의자는 공간을 점유한다. 식탁·침대·의자 모두 한 가지 기능으로만 쓰는데 공간은 크게 차지한다. 그만큼 공간을 낭비할 수 있는 사람만 의자를 쓸 수 있다. 권력자만 가능한 거다. 따라서 의자가 더 많이 보급될수록 그 사회는 권력이 더 분배된 민주화된 사회인 것이다.

 

인류 문명 초기에 피라미드나 지구라트 신전을 지을 때는 왕이나 귀족만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노예들은 왕 앞에 서 있어야 했다. 시민을 위한 의자가 적용된 첫 건축물은 그리스에서 나타났다. 그리스의 원형극장엔 반원형으로 배치된 의자들이 전부다.  

 

진정한 시민사회의 시작이다. 로마에 가서는 더 발전돼 360도로 의자 배치가 된 원형경기장이 만들어졌다. 로마 콜로세움 원형경기장에서는 5만개의 의자에 일반 시민과 황제가 같이 앉아서 중앙의 경기장을 구경하는 공간구조다. 세월이 흘러서 런던의 하이드파크에 벤치가 생겼다. 벤치가 생겼다는 뜻은 시민들에게 권력이 내려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1688년 명예혁명으로 왕의 권력이 아래로 내려갔기에 가능한 일이다.



 

의자 디자인을 보면 그 시대 사람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의 의자를 보면 다리가 동물의 발 모양을 하고 있다. 이는 역사 초기에 동물을 숭배했던 토템의 흔적이다. 초기 그리스 시대 의자의 다리에는 이집트의 영향으로 소 발굽 모양의 디자인이 남아있었지만,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에 접어들면서는 동물 다리 모양의 의자는 사라지게 된다. 인간의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기 시작된 것을 의미한다. 산업혁명 이후 의자는 대량생산을 고려해서 장식이 배제된 기능적인 디자인이 등장했다.


알바 알토의 의자. 핀란드 호숫가의 곡선을 떠올리게 하는 곡선의 미학을 보여준다. [아르텍]

 

술집 바에 있는 스툴 의자의 디자인은 일반의자보다 높다. 그 이유는 스툴에 앉아있는 손님의 눈높이를 서 있는 바텐더와 맞추기 위해서다. 내려다보는 시선은 권력자의 시선이다. 바텐더가 앉아있는 손님을 내려다보지 못하게 의자의 높이를 높인 것이 스툴이다.

 

이처럼 의자 디자인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숨겨져 있다. 건축가의 건축철학이 잘 드러나는 건물종류는 주택이다. 주택은 건축의 줄기세포다. 주택에서 방의 개수를 늘리면 호텔이 되고, 거실의 크기를 키우면 미술관이 된다. 주택보다 더 작은 스케일의 줄기세포는 의자다. 의자 디자인을 보면 디자이너의 가치관이 보인다. 그래서 모든 역사적인 건축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의자 디자인을 남겼다. 근대건축의 대가인 르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어 로에, 알바 알토 모두 개성 있는 의자 디자인을 남겼다. 이들의 의자는 재료도 다르다.  




건축에서 철과 유리를 많이 사용했던 미스는 철과 가죽으로만 의자를 만들었고, 건축에서 곡선과 나무를 많이 사용한 알토는 핀란드 호숫가의 곡선을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곡선의 의자를 나무로 만들었다.

 

가까운 중국은 의자가 많은데 우리나라에는 중국보다 의자 보급이 적다. 그 이유는 대략 두 가지이다. 첫째, 온돌 때문이다. 우리는 의자 대신 방석을 쓰고 침대 대신 요를 사용한다. 방석에서도 팔걸이로 권력에 차등을 만든다. 사극을 보면 왕이나 대감은 보료 옆에 팔걸이가 있다. 둘째, 오래된 유목사회의 영향이다. 단군신화를 보면 곰과 호랑이가 경쟁해서 곰이 사람이 된 것으로 나온다. 곰은 추운 북방민족이 숭배하는 동물이고, 호랑이는 더운 남방지방 사람이 숭배하는 동물이다. 단군신화로 미루어보아 우리나라는 북방 유목민족 세력이 주가 되어서 통합된 나라다. 유목민족은 이동이 잦아서 의자를 만들 수 없다. 대신 유목민족은 카펫이 발달했다. 카펫은 훗날 방석이 된 것이다.

 

우리는 의자를 가지게 된 지 얼마 안 되어서 디자인도 다양하지 않다. 70년대 라이프스타일은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다. 이후 중산층은 4인 가족이 주를 이뤘다. 예전에는 수십 명의 한 부족이 모닥불을 바라보고 둥그렇게 앉았다면 80년대 한국사회는 4명이 TV 불을 보고 앉아있다.  

  

뉴욕 타임스스퀘어 벤치는 21세기형

모닥불은 360도가 모두 정면이지만 TV 브라운관은 정면이 하나다. 정면을 4명이 같이 보기 위해서 집집이 긴 의자인 소파가 들어왔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각자 본다. 거실과 소파는 없어질 것이다. 일인 주거가 늘고 개인주의적 라이프 스타일이 도입된다. 그래서 의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리클라이너의 판매가 늘고 있다.



 

젊은이들은 비싼 집 대신 차를 사고, 차를 살 수 없는 사람은 나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는 가장 저렴한 방법인 의자를 산다. 과거 드라마 ‘허준’은 시청률이 64%, ‘모래시계’는 65%였다. 이들 드라마는 국민 공통의 추억이 되었다. 지금은 유튜브와 넷플릭스로 각자 본다. 다양성은 좋아졌지만, 공통점은 더 없어졌다. 하나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공통의 추억은 필요하다. 의자가 개인적 공간의 가치를 가진다면 공통의 가치를 가지는 의자는 벤치다.


근대 건축의 대가 르코르뷔지에의 셰즈 롱그(Chaise Logue, 1928년)는 이름 그대로 긴 의자를 뜻한다. [사진 까시나]


뉴욕은 벤치를 통해서 시민들이 공짜로 앉게 해주고, 이를 통해서 공통의 추억을 만들게 해준다. 브로드웨이 950m에는 벤치가 170개가 있지만, 같은 길이의 서울 가로수길에는 벤치가 3개다. 뉴욕은 벤치의 양적 공급 외에도 질적인 진화를 보여준다. 일반적인 벤치는 긴 의자에 4명이 앉지만, 타임스스퀘어의 벤치는 혼자 앉는 의자를 테이블 주변으로 서너 개 배치했다.  



 

개인을 존중하는 개별의 의자이면서 동시에 테이블을 중심으로 마주 보게 해주는 벤치 스타일이다. 일자형 벤치는 앉는 사람들이 한 방향만 보고 마주 보지 못한다. 이는 20세기 스타일이다. ‘따로 또 같이’가 가능한 타임스스퀘어의 벤치는 21세기형이다. 이곳 의자들은 개인 취향을 존중해서 각기 색상도 다르다. 의자를 훔쳐가지 않는다는 사회적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 사회도 이 정도로 성숙한 벤치 문화를 보여줄 때가 됐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하버드·MIT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30여 개의 국내외 건축가상을 수상했고 『어디서 살 것인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중앙일보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