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전월세 5년 동결 추진?

법무부, 전월세 5년 동결 제안

독일 사례 보고서까지 작성


   정부가 서울 등 집값 상승 지역에서 5년간 임대료를 강제 동결하고, 집주인이 세입자를 바꿀 권리를 원칙적으로 박탈하는 내용의 초강력 전·월세 규제 대책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19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법무부는 비슷한 대책을 마련한 독일 사례를 참고하기 위해 지난달 법무관 등 조사단 5명을 6박8일간 베를린에 파견, 주택 임대 계약 기간과 임대료 규제 방식을 샅샅이 조사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서 국내 도입을 제안한 핵심 사항은 크게 두 가지다. '현행 2년인 계약 기간의 무기한(無期限)화'와 '특정 지역에 대한 임대료 강제 동결'이다.

더 자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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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기간을 무기한으로 정해놓으면, 주변 시세가 오르더라도 집주인이 전세 보증금이나 월세를 올리기 어려워진다. 최근 베를린시가 도입한 '임대료 5년 동결법'에 대해 법무부는 "(우리도) 투기과열지구에 대해 별도의 임대차 보호 규정을 두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했다. 현재 투기과열지구는 서울 전역과 대구 수성구 등이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는 "정부가 공익을 위해 시장을 어느 정도 제한할 수는 있지만, 계약 기간의 무기한화나 임대료 강제 동결 등은 헌법상 권리의 본질을 침해하는 위헌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집 빌려주는 사람의 이익을 대거 박탈해 시장에서 몰아내면, 결국엔 주택 구매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임대로 공급될 집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구체적인 법제화를 위해 다녀온 출장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현행법상 집주인은 전·월세 계약 기간 중에라도 세입자에게 '1년에 5% 이내'의 임대료 인상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집주인이 이렇게 1년 단위로 전·월세를 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단 계약한 세입자에게는 최소 2년간 거주할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돼 있어서, 집주인에게는 사실상 협상력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집주인들은 임대 기간이 끝나는 2년 주기에 맞춰 전·월세금을 올린다.

법무부 제안은 이 '2년 기간' 제한을 아예 없애버리자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세입자가 임대료 미납 등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살고 있는 집에서 계속 살 수 있다. 집주인이 월세를 올리려면 그 이유를 관련 자료와 함께 문서로 제출해야 한다. 그 결과, 독일 정부 조사로는 최근 4년간 임대료가 오른 집은 61%에 불과하다. 독일은 '최초 임대료'도 정부가 제한한다.

 


법무부는 이러한 내용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우리나라 역시 독일과 마찬가지로 장기(長期) 임대차 보장을 통해 세입자의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조성해줄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독일 사례는 향후 우리나라 주택임대차법 개정의 주요한 입법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법무부 보고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베를린시가 도입하는 '임대료 동결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며 소개했다. 올해 3월부터 5년간 임대료 인상을 못 하도록 강제 동결하는 법안이다. 이 법은 독일 현지에서도 논란이다. 심지어 법무부 보고서에도 "다수의 위헌 제소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적혀 있다. 그럼에도 법무부는 "한국 투기과열지구에 대해 별도의 임대차 보호 규정을 두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했다.

법무부 조사단은 6박 8일간 독일 연방 법무부는 물론 세입자협의회 관계자까지 면담해가며 이번 보고서를 만들었다. 해당 보고서를 검토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주광덕 의원(자유한국당)은 "제대로 법리 검토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투기과열지구' 등을 구체적으로 제안하는 것은 무책임한 정권 코드 맞추기"라고 말했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최근의 임대료 상승은 정부의 규제 일변도 정책의 책임도 있는데, 정부가 '양질(良質) 주택 부족'이라는 근본적인 원인을 내버려둔 채 또 다른 규제로 해결하려 드는 게 타당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12·16 대책 이후 서울 아파트 전세 시세는 더 오르고 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 주간 전세지수는 100.5포인트. 이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8년 4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정부가 계속해서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집을 구입하는 대신 전세로 눌러앉은 사람이 늘어난 결과라는 분석이다.

정부가 자사고·외고·국제고를 모두 일반고교로 전환하겠다는 '고교 서열화 해소 방안'을 발표한 가운데, 학군 수요가 높은 지역은 더 올랐다. 강남구의 전세가격지수는 100.8, 서초구는 100.5, 송파구는 103.2로 조사됐다. 송파구는 서울에서 상승 폭이 가장 컸다. 양천구(102.2)와 강서구(101.9)도 많이 올랐다.

 


임대료 통제가 결국에는 임대료를 더욱 오르게 만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독일 현지 주택 임대 회사인 '도이체보넨' 관계자는 "임대료 통제법 시행을 앞두고 여러 주택 공급자가 베를린 시내 주택 건설 계획을 취소했고, 우리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이상우 익스포넨셜 대표는 "지금 서울에서 나타나는 아파트값 급등 현상은 새 아파트에서 살고 싶은 사람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서 벌어지는 것"이라며 "그런데도 공급자인 집주인만 계속 압박해 새 아파트를 지어도 구매할 사람이 없어지게 만들면, 나중엔 새 아파트 가격과 임대료가 동시에 치솟을 것"이라고 했다.
최아리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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