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행진-자유칼럼 새해 성악콘서트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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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행진-자유칼럼 새해 성악콘서트

2020.01.14

매년 1월 1일이면 빈 필하모닉의 연주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신년음악회가 열려 세계인의 ‘귀’를 모읍니다. 자유칼럼에서도 작은 음악회를 마련했어요. 이름하여 ‘별들의 행진’. 요즘 뜨는 테너들로 호세 쿠라, 롤란도 비야손, 로베르토 알라냐, 살바토레 리치트라, 유시프 에이바조프 등이 있지만, 보통 ‘3테너’라고 하면 고인이 된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이상 3인을 일컫지요.

사실은 그들에 앞서는 원조 3테너가 있었습니다. 마리오 델 모나코, 프랑코 코렐리, 주세페 디 스테파노입니다. 그런데 또 그들 앞에 놓이는 왕고참 시조 3테너가 있었다니까요. 엔리코 카루소, 베니아미노 질리, 유시 비외를링이에요. 하지만 오늘 칼럼에서는 기량은 떨어지지 않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다른 유명 테너에 비해 덜 알려진 가수들을 소개합니다.

#페루치오 탈리아비니(Ferruccio Tagliavini, 1913~1955)

페루치오 탈리아비니는 질리의 뒤를 잇는 미성의 리릭 테너입니다. 리리코 중에서도 흐느끼는 듯한 창법인 레지에로 계열이에요. 듣는 이의 마음을 다독이는 부드러운 음색, 섬세한 고음 구사로 교묘한 감정 표현에 능했지요. 하지만 동시대에 활약한 강렬한 음색의 스핀토 테너 유시 비외를링의 위세에 눌린 데다, 음색이 비슷한 후배 스테파노의 등장으로 퇴조의 길을 걷게 된 불운의 테너이기도 했습니다.

탈리아비니는 최정상의 테너로 평가 받지 못한 측면이 있지만, 나름 대중성을 갖추었고 영화에도 출연(勿忘草, Non Ti Scordar Di Me)해 많은 팬을 확보했습니다. 가성이 섞인 듯한 독특한 고음처리는 아련한 향수를 자아냅니다.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나 비제의 <아를르의 여인> 중 '페데리코의 탄식', 쿠르티스의 '물망초'는 꼭 탈리아비니의 노래로 들어야 합니다.

#마리오 란자(Mario Lanza, 1921~1959)

마리오 란자는(그 역시 이탈리아계 이민 세대이긴 했지만) 이탈리아 테너(코렐리, 스테파노)들에 대한 대항마로 미국이 내세운 간판스타였습니다. 트럭 운전사 출신의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한 마리오 란자는 대중친화적인 스타 플레이어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테너이기도 했죠. 영화 '가극왕 카루소(The Great Caruso)' 출연을 계기로 일약 유명해졌으며, '황태자의 첫사랑(The Student Prince)'은 란자의 인기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란자는 두 편의 오페라에만 달랑 출연했을뿐더러, 과장되고 양철을 두드리는 듯한 목소리의 결이 곱지 않아 비평가들의 평가가 후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정열의 과잉이 느껴지는 신파조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그립기도 합니다. 오페라 <라 보엠> 중 '그대의 찬 손'은 정평 있는 레퍼토리입니다. <황태자의 첫사랑> 중 '축배의 노래‘나 브람스의 대학축전 서곡에 나오는 '그러니까 우리 함께 기뻐하자(Gaudeamus Igitur)'는  마리오 란자의 노래로 들어야 제맛이 나지요.

#프리츠 분덜리히(Fritz Wunderlich, 1930~1966)

20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성악가 3인방은? 소프라노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와 바리톤 피셔 디스카우 그리고 테너 프리츠 분덜리히입니다. 마리아 칼라스, 레나타 테발디와 1, 2위를 다투는 슈바르츠코프, 역대 최고의 바리톤으로 추앙받는 디스카우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루도록 하죠. 분덜리히는 서정이 넘치면서도 자유분방한 목소리와 섬세한 표현으로 짧은 기간에 당대 제1의 리릭 테너라는 명성을 획득하였습니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魔笛]>에서 타미노 역을 맡아 오페라 가수로도 활약한 분덜리히지만, 소프라노 슈바르츠코프가 그러했듯, 독일 가곡(Lied)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베토벤(‘아델라이데’), 슈만(‘시인의 사랑’), 슈베르트(‘세레나데')…. 불의의 계단 추락사고로 36세라는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해 많은 팬들이 ’20세기 성악계의 가장 비극적인 손실‘이라며 안타까워했죠. 분덜리히가 활동을 오래했더라면 ’하늘에서 내린 빛나는 음성‘으로 또 다른 소리의 진경을 펼쳐보였을 텐데.

음반 질이 좋지 않아 떨림이 심했는데 감안하고 들으셨는지요? 우리를 견인하던 그 소리의 영웅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원전의 감동이 없는 샘플링의 시대, 시뮬라크르와 하이퍼 리얼리티, 감각과 형상이 판치는 사회, 먹거리도 감자 칩보다 성형 감자 칩이 뜨는 요즈음입니다. 레코드판이나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정통 성악곡을 들으며 느꼈던 전율과 몰입, 순수의 시대가 새삼 그립기만 합니다.

*다른 테너들을 다룬 적이 있어 참고로 올립니다.

https://blog.naver.com/nixland/60099205116

https://blog.naver.com/nixland/60100934629

https://blog.naver.com/nixland/6010365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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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수필가, 문화평론가.
<한국산문> <시에> <시에티카> <문학청춘> 심사위원.
흑구문학상, 조경희 수필문학상, 한국수필작가회 문학상 수상.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영음文映音을 사랑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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