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꺼진 등대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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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꺼진 등대

2019.12.30

“망망대해 무인도 옆 작은 암초에 세워진 등대의 존재는 다가오는 배들에게 자신을 피해가라는 신호입니다. 수평선 위 밤새 불을 켠 채 고기잡이에 여념 없는 배들을 멀리서 지켜보며, 고된 작업을 끝내고 돌아가는 뱃길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저녁 하늘 자신의 존재가 잊힐 만큼 달빛이 환해지면, 등대는 묵묵히 오고 가는 배들의 사연을 들어줍니다. 먹구름이 밀려오며 험난한 뱃길이 예상될수록 등대는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작가는 전국을 돌며 등대를 렌즈에 담아왔습니다. 그런데, 작품 속 등대들 모두 불이 꺼진 채 서 있습니다.” SBS 이주상 기자가 이원철 작가의 ‘불 꺼진 등대’ 사진전을 보도한 내용입니다.

이원철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 등대에 불이 꺼져 있는 이유를 “리더의 역할을 등대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우리 사회에도 등대 역할을 해야 되는 자리라든지 기관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정말 등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기 위함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같은 날, 조국 전 장관의 영장 기각 소식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법원 앞에 모인 사람들은 극명하게 둘로 나뉘어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주말 광화문에 나가면 정권 퇴진 집회가 열리고 서초동에 가면 조국 수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등대가 꺼져 있으니 사람들이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바른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등대에 불을 붙여야 할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는데 그들은 ‘바다에 떠 있는 배들 중, 내 편이 어느 배인가?’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필자가 보기엔 조국 수호를 외치는 분들이나 정권 퇴진을 부르짖는 분들이나 다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정치인을 걱정해주는 것만큼 쓸데없는 일이 없습니다. 그들은 보통사람보다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고, 더 많은 것을 누리고 더 많은 사람들과 인적 네트워크를 쌓아놓고 있습니다. 세상에 나보다 나은 사람을 걱정하는 것만큼 쓸모없는 일이 있을까요? 게다가 집권 세력은 국민들에겐 감시와 견제의 대상입니다. 집권 세력의 중심에 있던 사람을 수호한다는 발상은 독재나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나올 수 있는 겁니다.

정권 퇴진 시위를 하는 분들 역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정권은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로 정당하게 권력을 잡았습니다. 국민이 이들에게 5년의 시간을 허락했고 그 선택의 책임은 국민이 나눠 갖는 것입니다. 설령 나는 안 찍었다고 하더라도 게임의 법칙에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가 유지됩니다. 지켜보다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다음 선거에서 안 찍으면 그만입니다. 미국에 치이고 중국에 흔들리고 일본과 틀어지고 북한은 제멋대로인 상황입니다. 이럴 때, 잘하지 못한다고 마음에 안 든다고 내려오라고 하는 것은 초가삼간마저 태우는 짓입니다.

이 두 집회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좀 더 생업에 매진하고 남는 여력이 있으시면 불우한 이웃들에게 봉사를 하시는 게 훨씬 더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일 텐데, 이런 얘기를 아무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양쪽으로부터 다 비난을 받을 것이 염려되어 침묵한다면 비겁한 것이고, 한쪽만 챙겨서 이익을 얻겠다는 얄팍한 생각을 한다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회가 복잡해지고 대중들의 생각이 제각각이다 보니 통합보다는 내 편만 확실하게 챙기는 것이 실리인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1996년에 방송을 시작한 미국의 폭스뉴스(FOX News)는 극우 성향을 통해 빠른 시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중도를 포기한 대가로 달콤한 실익을 확보한 사례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대통령 선거 당시 절반만 확실하게 챙기는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중도를 걷는 전통적인 방송사들의 뉴스는 고전을 하고 있는데 대놓고 진보임을 자처하거나 극우임을 알리는 유사 언론채널들은 우후죽순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얼핏 보면 극단으로 처세를 하는 것이 더 이득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선한 의지를 가진 절대다수의 힘을 믿습니다.

미디어 이론 중에 침묵의 나선형 이론이 있습니다. 어떤 주장 하나가 힘을 얻으면 그 주장에 동조하지 않거나 반대인 소수의 사람들은 침묵하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지금 양극단으로 나뉜 광장의 소리는 다양한 매체에 의해 실제보다 크게 부풀려 있습니다. 이 소리를 전체인양 듣고 믿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겁니다. 그리고 이 소리가 두려워 옳은 말을 하지 못하는 지도층을 사람들은 더는 신뢰하지 않을 겁니다.

공자는 중용(中庸)을 얘기하면서 양극단의 가운데를 취하라 얘기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황금률(GoldenRule)을 통해 남이 네게 베풀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너 역시 남에게 그렇게 하라고 강조하면서 극단으로 치우치지 말 것을 얘기했습니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공명지조(共命之鳥)입니다. 공명지조는 몸통은 하나인데 머리가 둘인 새를 말합니다. 서로 머리를 쪼아 한 놈을 죽이면 남은 놈은 잘 살 것 같지만 결국 한 몸통이기 때문에 그 놈도 역시 죽게 된다는 뜻입니다.

먹구름이 밀려오며 태풍이 몰아쳐 하늘과 바다가 구분이 되지 않는데 등대 불빛이 보이지 않습니다. 평생 정도를 걸어 온, 그래서 다소 심심해 보이고, 그렇기 때문에 주목받지 못했으나, 적어도 후배인 필자에게서만큼은 존경받는 이주상 기자는 앞서 보신 기사의 클로징을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 사회에 불을 밝힌 등대는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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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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