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입니다 [홍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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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이브입니다

2019.12.24

12월이 되니 사소한 일들이 생각납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서쪽 끝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 두 해 가까이 머문 적이 있습니다. 밤거리 곳곳에서 뜻밖의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구의 95퍼센트가 무슬림인 나라인데 크리스마스 장식물이 걸렸습니다. 매일 밤 정전은 일상화될 정도로 전기가 부족한 국가인데 그 장식등의 불빛이 꺼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곳에서는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이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단 하루 동네 형을 따라 교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기쁘다 구제품 나왔네!”라고 노래하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선물은 전날 저녁에 주었답니다.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부끄러움과 함께 실망감도 느꼈습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은 아니지만 나이 들어서는 크리스마스이브라는 것이 특이하게 여겨졌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이틀간인지 자문해 보기도 했습니다.
위키피디아를 찾아보았습니다. 기독교의 발상지인 이스라엘에서는 저녁부터 하루가 시작된다는 전통이 구약성서 창세기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는 한밤중에 탄생합니다. 그 풍습과 한밤중 탄생이라는 사실이 기독교에서 심야의 축하 미사나 예배의 전통이 이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도 지속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한밤중에 집집마다 찾아가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새벽송이라는 행사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크리스마스는 상당히 보편화된 세계적 명절인 듯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날은 단순한 공휴일이 아니라 오랜 전통의 명절에 비견할 만한 날입니다. 많은 이들이 선물을 주고받거나 모여서 흥겨운 저녁을 보냅니다. 백화점을 비롯한 대형 매장은 화려한 치장을 하고 교회들도 안팎으로 축하의 장식을 합니다. 그 많은 크리스마스 노래들을 라디오 방송이나 여러 장소에서 듣습니다.
이래저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시기입니다. 올해도 방송에서 보여주는 영화 '나 홀로 집에' 속에서는 잘 알려진 경쾌한 곡들을 화려한 연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방송사가 매년 이 영화시리즈를 내보내는 이유는 사건의 재미도 주지만 크리스마스의 흥겨운 분위기도 곁들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런가 하면 크리스마스가 과거처럼 즐겁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한 기억도 있습니다. 나이가 적던 시절에는 이때가 다가오면 다소라도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예전엔 좋았는데’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빛나는 청춘의 20년간 크리스천이었기에 성탄절에는 무언가를 하면서 지냈습니다. 이미 그때부터 전년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설이나 추석에도 명절의 흥이 점점 없어진다는 말을 하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겠지요. 올해엔 약간 허전하기도 한 마음을 메꿀 수 있을까 하여 한 단체카톡방에 나만의 기준으로 엄선한 크리스마스 노래를 몇 개 올리고 있기도 합니다.

그 ‘빛나던 청춘’ 시절에 들은 어느 목사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교회를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단순하면서도 인상적인 이야기여서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성서에 의하면 크리스마스는 절대자인 하나님이 죄인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시골의 마구간이라는 자리까지 내려온 날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그는 두 가지 메시지를 전해 주었습니다. 이날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는 날이 아니라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윗사람 공경을 절대적인 행동률로 배워오던 중 이 말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두 번째는 마구간 사건에서 겸손과 함께 약하고 가난한 이웃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배우라고 하였습니다. 사회 여러 곳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화려한 장식과 함께 지나치게 기쁨에만 들떠 보이는 행사에 치중하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었습니다. 물론 교회는 눈으로 보이는 축하 행사도 하지만 어두운 데 있는 이들을 돌보는 손길도 뻗치고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귀에 익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낮고 누추한 곳을 연상하게 하는 훌륭한 노래입니다. 선율도 그렇거니와 한 시골 교회에서 고장 난 오르간 대신 기타로 반주하며 부를 수 있는 곡으로 작곡된 사연이 더욱 그렇습니다. 초등학교에도 들어가기 전 부산의 영도에서 할머니 손에 이끌려 걷던 밤길이 생각납니다. 지나가는 교회의 차가워 보이는 마룻바닥에 모여 앉은 아이들(내게는 형과 누나뻘)이 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은 나이가 들도록 잊지 못하는 기억이 되었습니다.
다른 노래도 있습니다. '북치는 소년'이라는 아름다운 곡입니다. 1940년에 미국인 캐더린 데이비스가 작곡한 곡입니다. 탄생한 아기 예수에게 동방 박사들은 고귀한 예물을 드렸습니다. 한 소년은 가진 것이 없어 작은북으로 최선을 다해 연주하여 축하를 드린다는 내용입니다. ‘선율도 없는 북’만으로 말입니다.
지난 주말, 현재의 결핵환자들과 함께 한때 환자로서 그곳을 거쳐간 사람들이 모인다는 작은 교회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영문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오늘 저녁에는 어렵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10대 남매를 만날 것입니다. 짧은 시간이나마 그들 옆에 자리해 보겠습니다. 가진 것 없는 북치는 소년의 심정으로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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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홍승철

고려대 경영학과 졸. 엘지화학에서 경영기획 및 혁신, 적자사업 회생활동 등을 함. 1인기업 다온컨설팅을 창립, 회사원들 대상 강의와 중소기업 컨설팅을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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