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뱅킹(open banking)과 스텔스 계좌


오픈뱅킹 열리자… '스텔스 계좌'로 비상금 옮기는 남편


[앱 하나로 모든 계좌 조회·이체 가능… 스텔스 계좌도 급증]
"비상금 꼭꼭 숨겨라" 온라인서 안 보이는 '계좌 감추기', 인터넷 거래 차단된 '보안 계좌' 지점장 승인 받아야 열리는 스텔스 통장도 인기


"요즘 오픈뱅킹이라는 게 아주 편하대요! 당신 주거래 은행에서 모든 은행 계좌를 모두 조회할 수 있게 오픈뱅킹 신청해 줘요."

며칠 전 40대 직장인 A씨는 자신의 공인인증서를 갖고 있는 아내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A씨는 아내 몰래 주거래은행이 아닌 다른 은행에서 1000만원을 신용대출받아 주식에 투자해왔는데, 현재 수익률이 마이너스다. 만일 아내가 오픈뱅킹 서비스에 접속하면 그동안 감춰왔던 마이너스 통장이 들통나게 된다. A씨는 마이너스 통장을 메꾸려고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다른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 그 기록까지 오픈뱅킹을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난감한 상황이다. 그는 "급한 대로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고 있는데 아직 몇백이 부족하다. 아내에게 혼날 각오를 하고 있는데, 아내가 실망할까 봐 걱정이다"고 말했다.

 


비상금 감출 곳 없는 남편들 '울상'
하나의 은행 앱에서 모든 은행 계좌를 조회할 수 있는 오픈뱅킹 서비스가 시행된 지 1개월여가 지났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까지 오픈뱅킹 계좌를 개설한 이용자 수는 239만 명에 이른다. 모바일 앱을 통해 오픈뱅킹을 신청하면 다른 은행(현재 12개 은행)에 열려 있는 모든 계좌를 한꺼번에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타행 계좌에 든 돈을 이체하거나 해외로 송금할 수 있다. 은행들은 오픈뱅킹 이용자가 적금에 가입하면 우대 금리를 제공하는 등 고객 유치를 위해 각종 혜택을 내걸고 있다. 이자 0.1%포인트 차이가 아쉬운 요즘, 발 빠른 투자자들은 오픈뱅킹 혜택을 찾아다니고 있다.


/일러스트=박상훈

하지만 오픈뱅킹 서비스가 반갑지 않은 이들이 있다. 배우자 몰래 비상금 계좌나 마이너스 통장 등을 이용해온 일부 기혼자들이 "조만간 들통날 것"이라며 불안에 떨거나 "들켰다"며 울상을 짓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플스5(게임기) 나오면 사려고 비상금을 모아놨는데 와이프가 오픈뱅킹 신청하면 어쩌나" "겨우 200만원 만들었는데 오픈뱅킹 했다가 100만원을 빼앗겼다"는 하소연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반대로 배우자의 비상금을 발견해 환호하는 사례도 있다. 결혼 3년 차 직장인 B(31)씨는 "오픈뱅킹으로 서로 계좌를 까봤는데 남편이 다른 은행에 모아둔 300만원이 나왔다"며 "남편에게 물었더니 '네 선물 사려고 서프라이즈로 모았다'더라. 아무래도 거짓말 같지만 선물 받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했다.

 

 


'스텔스 계좌' 문의 늘어
비상금 계좌를 감추려는 고객들은 오프라인 전용 보안 계좌인 '스텔스 계좌'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스텔스 계좌란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스텔스(stealth)' 기술에서 따온 표현으로, 말 그대로 온라인에서는 '보이지 않는' 계좌다. 당연히 오픈뱅킹에도 드러나지 않는다. 스텔스 계좌는 인터넷이나 모바일 뱅킹으로는 계좌 내역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수년 전부터 '남편들의 비상금 통장' '주부들의 비자금 계좌'로 알음알음 알려졌는데, 오픈뱅킹 시행으로 이용자가 더 많아졌다.

12일 신한·KB국민·우리·KEB하나·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에 따르면, 스텔스 계좌 수는 현재 20만4620개로 작년 말(17만5613개)보다 16.5% 늘어났다. 한 은행 관계자는 "수년간 스텔스 계좌 수가 정체돼 왔는데 올해 들어 큰 폭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이전에 만들어 두고도 이용상 불편함 때문에 쓰지 않던 스텔스 계좌를 활성화하겠다는 고객들도 있다. 40대 직장인 C씨는 "몇 년 전에 개설해 놓고 깜박 잊고 있었는데, 남편과 계좌 내역을 모두 공유하기 전에 비상금을 모두 스텔스 계좌로 옮겨야겠다"고 말했다.

 


은행마다 명칭과 보안 정도가 조금씩 다르지만, 스텔스 계좌는 아예 인터넷·모바일뱅킹 등 전자금융 거래를 차단한 '보안 계좌'와 온라인상에서 계좌가 보이지 않도록 하는 '계좌 감추기' 두 가지로 나뉜다. 신한은행의 '보안계좌', KB국민 '전자금융거래 제한계좌', 우리 '시크릿 뱅킹', KEB하나 '세이프어카운트' 등 보안 계좌는 은행 지점에 가서 본인이 직접 개설해야 한다. 이후 거래할 때도 직접 은행 창구에 가거나 ATM 기기만 이용할 수 있다. KEB하나의 '세이프어카운트'는 계좌 관리 지점장의 승인까지 받아야 계좌를 열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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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좌 감추기는 원래 온라인 거래가 가능한 계좌를 잠시 인터넷뱅킹 사이트나 모바일 앱에서 보이지 않도록 감추는 기능이다. 수시로 신청·해제 할 수 있어 보안 계좌보다는 이용이 편리하다. 이 밖에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계좌, 카카오페이나 네이버페이 등 충전식 페이 서비스도 오픈뱅킹을 피하려는 이들의 '비상금 피난처'가 되고 있다. 저축은행 등은 내년 중 오픈뱅킹 서비스가 시작될 전망이지만, 아직은 대상이 아니다. 다만 충전식 페이는 예금자 보호를 받을 수 없어 거액을 넣어두기에는 불안하다는 단점이 있다.

 


오픈 뱅킹(open banking)과 스텔스 계좌
하나의 은행 앱에서 모든 거래 은행들의 입출금 이체, 잔액·거래 내용 조회 등의 업무를 할 수 있는 서비스. 10월 30일부터 은행 12곳에서 시범 실시하고 있다. 오는 18일부터는 18개 전 은행과 핀테크 기업 151곳 등으로 오픈 뱅킹 서비스가 전면 적용된다. 스텔스 계좌는 '보이지 않는' 계좌라는 의미로, 온라인에서는 확인할 수 없고 은행 창구나 ATM 기기에서만 조회·거래할 수 있다.
정경화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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