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국에 대규모 투자하는 일본...결국 기업 수주로 이어진다


일본, 개도국에 연 13조원 투자…기업 수주로 이어진다


    지난해 11월 일본 오사카시가 2025년 세계박람회(World Expo) 개최지로 선정됐다. 세계박람회는 올림픽·월드컵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3대 행사다. 일본은 세계박람회의 경제 파급 효과를 2조엔(약 21조원)으로 예측하고 유치전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 투표에서 경쟁국 러시아를 92 대 61로 이겼다.


당시 투표에는 일본의 영리한 전략이 숨어 있다. 가지야마 히로시 경제산업상(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직접 나서 개발도상국 100개국에 2억1800만달러(약 2551억원)의 박람회 참가 비용을 지원하겠다는 공약을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이다. 일본으로서는 선한 대외 이미지를 구축하는 동시에 개발도상국의 표심까지 사로잡았다.


일본 오사카시가 2025년 세계박람회(World Expo) 개최지로 선정됐다. /japanfor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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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일회적 공약만이 투표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일본은 매년 100억달러 이상의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을 개발도상국에 투자한다. 현지 개발 사업을 집행하면서 개발도상국 정부와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실제 아프리카 남수단 고위급 간부는 "일본과 그간 쌓아온 협력 관계를 생각하면 (세계박람회 투표에서) 일본을 지지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본은 지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남수단에 300만달러(약 35억원)를 들여 세관 업무 효율화를 도왔다.




2017년 기준 일본의 ODA 규모는 114억6300만달러(약 13조원)로 세계 4위 수준. 일본은 동남아시아 개발 원조 계획인 콜롬보 계획에 1954년 가맹국으로 참여한 이후 원조를 확대하고 있다. 경제 호황기 이후(1989년, 1991년, 2000년) 미국을 제치고 전 세계 ODA 규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현재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와 함께 세계 5대 공여국 지위를 유지하는 아시아 유일의 국가다. 한국과 관계는 악화하고 있지만 야속하게도 국제 사회에서 일본의 대외 이미지가 긍정적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인프라 투자로 승부하는 일본형 ODA

국제 사회의 지지뿐만 아니라 경제적 실익도 ODA의 장점이다. 일본은 유상차관을 제공하고 현지 인프라 건설 용역을 담당한다. 2016~2017년 기준 일본은 ODA 자금의 가장 많은 부분(50%)을 경제인프라에 투자하고 있다. 경제인프라는 도로, 교통과 같이 사업 규모가 크고 수익성이 높은 기반 시설이다. 일본을 제외한 G7(선진국 7개국) 국가는 병원, 학교와 같은 소규모 사회인프라 투자 비중이 높다는 점과 비교된다.


경제인프라 투자 사업의 또 다른 장점은 건설 용역을 연속적으로 수주하기에 유리하다는 것. 일본 건설사의 시공 능력을 현지에서 입증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실제 베트남 인프라 투자는 일본이 독점하고 있다. 일본은 2조원 넘는 ODA 자금을 베트남에 투자하면서 1위 공여국으로 올라섰다. 하노이의 상징 까우 넛떤 다리도 일본의 ODA 자금(541억엔 규모)으로 건설됐다.




덕분에 민간기업이 베트남의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다. 2017년 기준 상위 5개 외국인투자 프로젝트 가운데 3개 프로젝트(응이선 2 화력발전소, 번퐁 1 화력발전소, B-오몬 가스관 건설 프로젝트)를 일본계 자본이 수주했다.


 

베트남 하노이를 가로지르는 넛떤 다리. 일본국제협력기구(JICA)로부터 유상차관 541억엔을 지원받아 건설됐다. ‘일본·베트남 우정의 다리’라고도 불린다.


일본형 ODA의 또 다른 경쟁력은 정보력. 도시나 항만의 개발계획을 JICA가 직접 자문하면서 정부 차원에서 획득 가능한 내밀한 정보까지 파악한다. 실제 이렇게 우리나라도 베트남에서 일본에 밀린 뼈 아픈 과거가 있다. 2006년 한국 해양수산부가 4500억원 규모의 베트남 붕따우 카이맵 컨테이너 터미널 개발사업 수주를 위해 국내 굴지 건설사와 항만하역사를 모아 컨소시엄을 만들었으나 결국 사업권자 붕따우조선소와 계약이 결렬된 것. 이후 일본계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당시 벽산건설 해외수주담당 임원으로 수주전에 참여했던 정인섭 한화에너지 대표는 "한국이 산업구조상 일본보다 항만 운영 경쟁력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일본 정부가 ODA로 항만개발계획을 베트남 정부에 자문한 덕분에, 일본계 컨소시엄의 정보력이 우리보다 뛰어났다"고 했다.




내년 미얀마 수주 놓고 한·일 전면전 예고

실제 일본은 한국과 해외 개발지에서 부딪히는 경쟁국 가운데 하나기도 하다. 일본의 ODA 지원 국가는 경제성장률이 높은 동남아시아에 집중됐다. 아세안 가입국과 인도 비중이 61.9%에 달한다. 아프리카와 같은 최빈국보다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아 경제 발전 가능성이 큰 곳들이다. 한국의 ODA 지원국 역시 이곳에 집중됐다.


한국과 ODA 지원국이 중복되면서 현지에서 인프라 수주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베트남에 이어 미얀마가 한·일 수주전의 중심지로 떠오를 전망이다. 일본은 미얀마가 민주화로 경제 개방을 시작한 2013년 20억8900만달러(약 2조원)를 단번에 투자했다. 당시 미얀마가 일본의 ODA 지원국 1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도 미얀마 순방 당시 유상차관 규모를 10억달러(약 1조원)까지 확대하기로 약속했다.


양국은 유상차관을 기반으로 각자 인프라 건설 사업에 나서고 있다. 일본은 틸라와 지역에 경제협력 산업단지와 항만을 조성했다. 수출입은행은 올해 한·미얀마 우정의 다리와 경제협력 산업단지 건설에 본격 착수했다. 내년에는 미얀마 정부가 민관협력사업(PPP) 방식으로 양곤 고가도로 프로젝트를 발주할 계획이다. 입찰 경쟁에 한국과 일본의 컨소시엄이 모두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일 전면전이 예고된 상황이다.


plus point

[Interview] 아마다 기요시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홍보실장


"한 기구에 권한 몰아주니 원조의 질 높아져"


아마다 기요시 컬럼비아대 국제행정대학원 석사,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전략기획국장·스리랑카 사무소장


일본이 공적개발원조(ODA) 강국인 배경에는 효율적인 행정 구조가 있다. 현재 일본의 ODA 기능은 일본국제협력기구(JICA)가 전담하고 있다. 기존에 무상차관, 기술협력, 유상차관 기능을 각각 외교부, JICA, 국제협력은행(JBIC)이 분담했는데 2008년 통합한 것이다. 아마다 기요시 JICA 홍보실장은 ‘이코노미조선’과 이메일 인터뷰에서 "JICA가 ODA 단일조직으로 기능하면서 효율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면서 "특히 미얀마의 틸라와 경제협력 산업단지 프로젝트를 통해 통합 효과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JICA는 2015년 유상차관으로 미얀마 틸라와 지역에 경제협력 산업단지를 조성했다. 인프라 건설을 비롯해 기술 협력까지 함께 제공하는 종합 패키지 프로젝트였다. JICA는 해당 부지와 미얀마 최대 경제산업도시 양곤을 연결하는 도로와 항만 건설 사업에 자금을 대고, 단지 내부에 위치한 원스톱 서비스 센터 설립에 기술력을 제공했다. 아마다 홍보실장은 "만약 두 단체에서 인프라 투자와 기술 협력 계획을 별도로 추진했다면 승인 단계를 거치고 협력하는 과정이 더뎠을 것"이라고 했다.


아마다 홍보실장은 JICA의 변천 과정을 30년 동안 지켜봤다. 그는 처음에는 유상차관을 집행하는 해외경제협력기금(OECF) 소속이었다. 1999년 OECF가 JBIC에 편입됐고 이후 2008년 JBIC가 JICA에 편입됐다. 완전체가 된 JICA에서 그가 느낀 변화는 바로 ‘혁신성’이었다. 아마다 홍보실장은 "조직의 권한이 확대되면서 새로운 개발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일도 많아졌다"고 했다.


JICA는 지난해부터 새로운 자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JICA 개발 연구 프로그램(JICA-DSP)으로 개발도상국에서 젊은 미래 지도자를 초청한다. 일본의 근대화 경험을 공유하면서 개발도상국의 인재 육성을 돕는 것이다. 일본 정부와 비전을 공유하기도 한다. 일본 정부는 2016년 ‘고품질 인프라 투자(Quality Infrastructure Investment)’를 경제 성장 전략으로 내세웠다. 이에 JICA에서도 인프라 투자 관련 규칙 네 가지를 세웠다. ① 수원국 발전에 쓸모 있어야 한다 ② 일본과 수원국의 관계 강화에 도움 돼야 한다 ③ 일본 경제와 기업에 이익을 줘야 한다 ④ JICA에 금전적 부담을 지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조선 기자 김소희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1/29/20191129027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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