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컴퓨터에 몽당연필의 초심을 담아 [방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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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컴퓨터에 몽당연필의 초심을 담아

2019.12.05


이사 준비로 분주한 친구에게서 뜻밖에 유명 브랜드의 만년필과 볼펜 세트를 얻게 되었습니다. 때이르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기분입니다. 친구는 수십 년 간 살던 단독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하려다 보니 정리할 물건이 너무 많다며 비명을 지르던 참입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해온 귀한 물건들을 요즘 산타클로스처럼 주변에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그는 예전부터 소문난 수장가였습니다. 고교 졸업 50주년 기념앨범을 만들 때 모교 배지(badge)와 모표, 졸업장, 성적통지표는 물론 학생증, 수험표까지 내놓아 동기들이 입을 딱 벌렸습니다. 지금 서울시립박물관에는 수년 전 그가 기증한 여러 물건들이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전시되고 있습니다.

친구의 필기구 선물이 까맣게 잊고 있던 옛 추억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어린 시절 몽당연필에 침을 묻혀 찢어진 봉투 조각에다 삐뚤빼뚤 획을 그으며 가갸거겨를 익히던 일. 처음 접한 잉크에 쩔쩔매며 공책, 책가방, 옷에까지 잔뜩 묻히고 다니던 일. 눈에 콩깍지 씌어 연애하던 시절 선물로 받은 몽블랑 만년필로 입사 시험을 치르던 일. 갖가지 기억들이 아직도 눈앞에 삼삼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연필, 만년필, 볼펜 다 밀어두고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 원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글씨 쓰는 도구도 정말 엄청난 변화를 보여 왔습니다. 오랜 옛날엔 양반님네들이나 벼루에 연적으로 물을 따라 먹을 갈고 붓으로 글씨를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붓으로 글씨를 쓰는 일은 이제 서예니 서도니 해서 예술 형태로만 남았을 뿐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신 어머니는 부엌 바닥을 노트 삼아 부지깽이로 글씨를 익히셨다고 합니다. 그 당시엔 사각 나무판에 모래를 깔아서 손가락이나 막대기로 글씨를 익히기도 했답니다.

저희가 어릴 땐 연필과 지우개로 글씨를 쓰고 지우며 공부했습니다. 당시 국산 연필의 재질은 볼품이 없었습니다. 육각형을 이룬 나무 두 쪽의 결이 틀려서 칼로 깎으려다 한 쪽이 뭉청 떨어져 나가 낭패를 보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어쩌다 잠자리표 일제 톰보 연필을 하나 얻으면 대단한 자랑거리가 되었지요. 쓰기에도 깎기에도 아주 부드러웠습니다. 아까워서 마음놓고 쓰지도 못했지만.
고무로 만든 지우개는 너무 거칠고 억세서 잘못 문지르다가 공책이 찢어지는 경우도 적잖았습니다. 친구들 가운데 더러 찹쌀 지우개라며 글씨를 아주 부드럽게 지워내는 지우개를 자랑해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며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철필과 잉크는 사고뭉치였습니다, 노트는 물론 책가방에 잉크가 번져 책과 옷을 온통 시퍼렇게 물들이는 사고가 빈발했지요. 고교 시절엔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 속에서 고맙게도 무거운 책가방을 받아준 여학생 치마에 잉크를 묻혀 얼굴이 빨개졌던 사건도 있었습니다.

유복한 친구들은 파카 21이라고 쓰인 통통한 만년필을 저고리 윗주머니에 끼우고 다니며 폼을 잡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름철 버스 창가 자리에 앉았다가 느닷없이 날치기당하는 사고도 심심찮게 벌어졌습니다. 철사 고리로 만년필을 번개같이 낚아채는 대낮 절도범들이 설쳤거든요. 그래서 한동안 학생들 사이에 비상경계령이 내렸었지요.

대학 시절 비로소 책상 위에 주무기로 등장한 볼펜[ball(-point) pen]은 가히 필기구의 혁명이었습니다. 잉크병을 따로 들고 다니다 쏟아지는 불편과 위험이 일시에 사라진 것입니다. 너도 나도 국산 육각형 모나미(mon ami) 볼펜을 사서 쓰며 그 편리함에 감탄했었지요. 어쩌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검은색 둥근 볼펜은 심에서 잉크가 흐르지 않아 더욱 좋았습니다. 이후 각국 유명 브랜드의 볼펜들이 오늘날까지 필기구의 강자로 우열을 다투고 있습니다.

저희 학창 시절엔 요즈음 수많은 학생들이 들고 다니는 샤프펜슬[mechanical pencil]을 쓴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아마도 볼펜보다 더 늦게 보급되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연필처럼 번번이 깎아서 써야 하는 불편을 없앴으니 공부하는 학생들에겐 볼펜 못지않게 혁명적인 필기구인 셈입니다.

편리성을 위주로 한 필기구로는 아직까지 볼펜이나 샤프펜슬이 최강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합니다. 만년필은 좀 더 격식을 따지는 서명에나 쓰이는 정도이고. 박물관행을 앞두고 있는 형편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볼펜이나 샤프펜슬도 글자 몇 자, 몇 줄 쓸 때 필요한 도구일 뿐 디지털시대의 본격적인 글쓰기 도구 자리에서 밀려난 지 오랩니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든 취미로 삼든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 만든 글이 아니면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합니다. 볼펜으로든 만년필로든 종이 위에 쓴 글은 반드시 누군가의 컴퓨터 작업을 거쳐야만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젠 기사, 칼럼을 쓰든 시, 소설을 쓰든 글쓰기 작업은 컴퓨터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키보드를 두들기는 약간의 기술만 익히면 글쓰기에 그만큼 편리한 장비도 없습니다. 글자의 삭제와 삽입, 문장의 복사와 옮겨 붙이기가 손가락 몇 번의 놀림으로 간단히 이루어집니다. 예전에 미리 써 두었던 글을 오늘 찾아 새 글에 활용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서술을 손쉽게 복사해 인용하기도 합니다. 인터넷이라는 세계적인 통신망을 통해 글의 전달과 유통도 대단히 편리해졌습니다.

그러나 컴퓨터와 인터넷의 편리함에 취해 글을 함부로 다루면서부터 나타난 폐단들도 적지 않습니다. 손가락 장난하듯 경박한 글, 다른 사람을 일방적으로 헐뜯는 무례한 글, 근거도 출처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글, 진실과 허위가 뒤바뀐 글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글을 너무 손쉽게 다루게 되면서 글에 대한 진정성은 오히려 떨어진 탓일 겁니다.

우선 저부터 과연 예전 침 묻힌 연필로 종이에 또박또박 끌로 파내듯 글을 쓰던 때의 정성과 마음이 담긴 글을 쓰고 있는지, 자신이 없습니다. 도구의 편리함에 취해 정작 글에 들이는 성의는 그만큼 떨어진 것은 아닌지, 곰곰 생각해보게 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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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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