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은 이상해 [노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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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님'은 이상해

2019.11.29

매주 금요일이 기대됩니다. 그날 서울의 한 대학에서 영어회화 공부를 하는데, 구성원이 참 좋아서입니다. 50대 한국인 통·번역교육대학원 선생님의 지도하에 20~70대 학생들이 두 시간 동안 자유롭고 편안하게 영어로 대화를 합니다. 지켜야 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영어 이름 부르기, 높임말 쓰지 않기.

선생님은 영어 이름 ‘포샤(Portia)’로 불립니다. 맴(ma’am)이나 프로페서(Professor)를 붙였다가 망신당한 학생도 한두 명 있습니다. 포샤는 말합니다. “외국에선 대통령도, 사장도, 동네 아저씨·아줌마도 모두 이름만 부릅니다. 더 이상의 호칭은 필요 없습니다. 거리낌 없고 솔직하게 대화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대학 시절 “여러분, 나를 ‘교수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라고 말씀하신 은사가 있습니다. “교수는 내 직업이고, 더군다나 ‘교수님’은 사전에도 없는 말”이라며 “학문을 가르치는 사람은 ‘선생’이라 불러야 옳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교수님’은 바르지 않은 언어 표현일 뿐만 아니라, ‘선생’이 ‘교수’보다 더 격이 높은 말이란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말 전문기자’ 소리를 듣는 저도 지금껏 매번 갈등합니다. ‘선생’이란 호칭을 불쾌해하는 몇몇 ‘교수’들 때문입니다. 눈치껏 ‘선생님’과 ‘교수님’을 섞어 쓰는데, 마음이 무거운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이 글을 계기로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분들은 모두 ‘선생님’이라고 부를 생각입니다.

대학 캠퍼스에서 만난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거의 사라졌다고 합니다. 인문계열에서나 겨우 들을까 말까, 온통 ‘교수님’뿐입니다. 심지어 대학병원에선 환자는 물론 간호사들도 의사를 부를 때 ‘선생님’이 아니라 ‘교수님’이더군요.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때 당혹스러웠습니다. 이것저것 다 버리고 제발 이름만 불러 달라는 포샤가 좋은 이유입니다.

이 순간 궁금한 게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자기를 소개할 때 어떻게 하시나요? 제가 근무하는 신문사 편집국에는 공공기관, 금융기관, 기업체 관계자들이 자주 드나듭니다. 의도한 건 아닌데 내근(內勤)기자인 탓에 그들이 인사하는, 참으로 어색한 장면을 보기도 합니다. 서로 명함을 건네며 이름 뒤에 직급을 붙이는 모습입니다. “△△사에서 온 ○○○ 실장입니다.” “반갑습니다.  △△부 ○○○ 부장입니다.”

혹시 뭐가 어색한지 아시겠나요? 늘상 들어오던 인사법이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겁니다. 이 두 사람은 스스로에게 ‘존경’의 표현을 쓰는 실수를 했습니다. 직위(지위)는 내가 아닌 누군가를 높여 부를 때 쓰는 것입니다. “이분은 ○○○ 부장입니다”처럼 말이지요. ○○○ 실장은 물론 ○○○ 교수, ○○○ 대표도 다른 사람이 말할 때만 존경의 표현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 부장’이라고 스스로 이름과 직급을 말하는 것은 어색하다 못해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한마디로 자기를 소개할 때는 이름 뒤에 직위를 붙이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꼭 직위를 밝혀야 할 자리도 있을 겁니다. 그럴 경우엔 “△△부장 ○○○입니다”라고 소개하면 됩니다. 굳이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된다면 “△△사 사장입니다”라고만 말하면 됩니다. 저 같은 경우엔 “이투데이 편집국 교열팀장입니다” 혹은 “이투데이 교열팀장 노경아입니다”라고 소개합니다. 교수로 활동하는 분들이라면 “△△대학 교수 ○○○입니다”, “△△대학에서 ☆☆을(를) 가르치는 ○○○입니다”라는 표현이 좋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짧게 설명하면 상대방에게 친절한 인상을 남길 수도 있겠지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 ‘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나이가 들수록 호칭 문제로 고민을 하고, 이따금씩은 누군가와 얼굴을 붉히기까지 할까요. 직급에, 자리에 너무 연연하기 때문이겠지요.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겠지요. 이름에 가치를 두는 게 어떨까요. 직위는 한순간이지만 이름은 영원하니까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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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노경아

경향신문 교열기자·사보편집장, 서울연구원(옛 시정개발연구원) 출판담당 연구원을 거쳐 현재 이투데이 부장대우 교열팀장. 우리 어문 칼럼인‘라온 우리말 터’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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