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고립무원 상태" - Asia Institute 소장


“한국은 고립무원상태… 美·中·日과 실질 교류 점점 줄어” 


[세계초대석]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아시아 인스티튜트(Asia Institute) 소장


 

한국, 현실 인정하고 통일 등 전략 마련 / 전지구적 차원으로 교류 활성화해야 / 韓·日 갈등 가장 위기… 시급한 해결 / 과제 정치 등 어렵다면 다른 것부터 해소를 / 韓·日 힘 합치면 美·中과 경쟁 가능해져 / 트럼프시대 韓·美동맹관계 크게 변해 / 방위비분담금 인상 등 충돌 많아질 듯 / 美軍 한반도 영구 주둔은 한국인 착각 /한국, 독립적인 외교·안보 수립 급선무 / 통일·동북아 안보는 한국이 주도해야



   “한국은 지금 국제 사회에서 고립돼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간 실질적인 교류가 점점 끊어지고 있습니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아시아 인스티튜트(Asia Institute) 소장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 사무소에서 가진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고,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걱정하는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아시아 인스티튜트(Asia Institute) 소장은 26일(현지시간)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현주소를 이렇게 진단했다.




페스트라이쉬 소장은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 중국, 일본을 넘나들며 3개국의 문화와 언어 등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왕성한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동아시아 분야 최고 전문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미국 예일대에서 중국 문학을 전공한 뒤 일본 도쿄대에서 비교문화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언어문화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경희대 교수 등으로 재직하면서 한국에서 12년 거주했고, 일본에서도 7년을 살았다.


그는 베스트셀러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 등 한국 책 5권, ‘미래 중국’ 등 중국어 저서 2권, 일본어 저서 ‘평화와 기후변화’를 출간했고, 연암 박지원 소설집을 영어로 번역했다. 페스트라이쉬 소장은 현재 국제관계와 자연환경 및 과학기술의 미래를 연구하는 싱크탱크인 아시아 인스티튜트를 운영하면서 최근 한국에서 미국으로 돌아와 이 연구소의 워싱턴 사무소를 열었다. 그는 “한국 등 특정 국가가 아니라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전체를 연구하고, 이와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dreamstime.com

edited by kcontents




페스트라이쉬 소장이 현재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는 남북한 통일 문제이다. 그는 곧 한반도 통일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통일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과 비전을 제시하는 저서를 출간할 예정이다. 그런 그가 “한국이 지금 덫 속에 갇힌 세상처럼 돼 버렸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페스트라이쉬 소장은 “한국이 갇혀 있는 덫은 볼 수 있거나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면서 “그 덫은 한국인들의 사고구조 속에 깊숙이 박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을 한국처럼 고속도로와 아파트 단지투성이 나라로 만들면 안 되고, 남한 사람들이 검소하고 소박하게 생활하는 북한 동포로부터 많이 배울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페스트라이쉬 소장은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는 대박을 꿈꾸지 말고, 기후변화와 환경 오염을 생각하지 않은 채 북한 자원을 개발하면 좋다는 잘못된 의식을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고립무원 상태라고 진단한 근거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한·미 동맹 관계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 미국은 한국이 아니라 동북아 전체에서 미국의 역할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5배로 올리겠다고 한 배경에는 두 세력이 서로 혼재돼 자리하고 있다. 하나는 단기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군사업계이고, 또 하나는 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하는 고립주의 세력이다. 후자는 본격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 관계가 좋은 것도 아니다. 중국의 인민일보 보도 내용을 보라. 미국, 일본, 러시아, 독일, 터키에 관해 보도하면서 한국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 심도 있는 한·중 협력이 이뤄지고 있는 게 결코 아니다. 한국과 일본 관계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한·일 정부 간 교류뿐 아니라 대학, 비정부기구(NGO) 간 교류도 끊어지고 있다.”



한국경제

edited by kcontents




그렇다면 한국이 뭘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첫 단계는 한국이 고립된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 현실 인식이 선행돼야 한국이 스스로 전략을 세울 수 있다. 한국이 한반도와 통일의 비전, 동북아 평화 질서의 청사진을 스스로 만들어 이를 미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여러 나라에 소개하고 전 지구적인 차원으로 각 분야에서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


한국이 직면한 위기 중 가장 심각한 분야는.

“한·일 갈등이다. 한국은 지금 한·미·일 3각 협력이 아니라 한·일 양국 협력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한·일 협력을 위한 플랫폼을 만드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한·일 간 정치·외교, 역사 분야가 껄끄러우면 과학·기술, 환경, 교육, 지방자치단체 교류 등을 먼저 추진할 수 있다.”


한국이 일본과 협력해야 하는 이유는.

“미국과 중국은 한국에 비해 큰 나라이다. 한국이 미국이나 중국과 경쟁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경제 규모와 민주주의 체제, 교육 등으로 볼 때 동북아에서 가장 유사한 나라가 한국과 일본이다. 한국과 일본이 힘을 합하면 미국이나 중국과 경쟁할 수 있다. 중국이 5G 분야에서 벌써 앞서가고 있고, 6G를 선도할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나 일본은 서로 협력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정말 답답하다. 일본에는 아베 신조 총리 같은 제국주의 우파 세력만 있는 게 아니다. 일본에는 한·일 협력과 교류를 환영하는 세력도 있다. 문재인정부가 진보 정권인데도 왜 일본의 진보 진영에 손을 내밀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런 행태는 정말 위험하다.”




한국이 손을 내밀면 일본이 잡을 것인가.

“이것은 정체성의 문제이다. 한국이 한·일 관계의 전략적인 비전을 수립해 끌고 가면 된다. 한국은 일본을 끌고 갈 의지가 없고, 자신감도 없다. 일본에는 친한파 그룹이 있고,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한국이 먼저 손을 내밀면 그 손을 잡을 것이다. 한국이 중앙정부 차원에서 일본에 접근하기 곤란하면 지방정부 간 교류를 먼저 추진해야 한다. 한국이 먼저 일본에 손을 내밀어 일본과 상호 협력 시스템을 구축한 뒤에 미국과 중국을 끌고 갈 생각을 왜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일본의 역사 문제를 다 용서하라는 게 절대 아니다.”


한·미 동맹이 흔들리는 이유는.

“미국이 급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뿐 아니라 미국 내에 한·미 동맹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그룹이 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선도하는 미국 우선주의, 고립주의, 불간섭주의가 가세하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국제주의 흐름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미국은 20세기까지 고립주의 전통을 유지해왔었다. 19세기에 발발한 유럽의 전쟁에 미국은 불간섭주의에 따라 중립을 유지하려 했다. 트럼프가 그런 고립주의 전통을 부활시킨 셈이다. 언론이 주목을 하지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미국이 지난 20년 동안 해외 전쟁에 참전한 것이 모두 다 잘못된 일이었다고 했다. 트럼프뿐 아니다. 많은 미국인이 트럼프 대통령의 고립주의, 민족주의 노선을 지지한다. 보수 진영뿐 아니다. 진보 진영 일각에도 지지 그룹이 있다.”


mbc

edited by kcontents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구실 삼아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나.

“방위비 문제가 심각한 충돌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이 독립적인 외교·안보 전략 수립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미 동맹 관계가 영원히 지속할 수는 없는 일이다. 주한미군의 영구 주둔은 한국인의 착각이다. 한국 전문가들은 미군 철수를 예상하고, 준비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더욱이 동북아에서 미국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한·미 간 협력도 부분적인 안전 보장과 군사 협력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출간 준비 중인 한반도 통일에 관한 저서는 어떤 내용인가.

“통일은 돈을 벌 기회가 아니다. 남한 사회의 퇴폐 소비문화를 평양에 소개하는 일은 더욱 아니다. 우리가 통일 프로젝트 전반에 걸쳐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다. 남북한의 시민이 복지와 교육, 여러 기회 측면에서 함께 어떻게 균등한 방향으로 나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남한은 북한의 모델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양측은 보다 새로운 가치를 함께 지향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데 함께 노력하고, 협력해야 한다.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의 안전 보장 문제를 한국이 주도해야 한다. 이 점에서 미국 전문가들이 큰 역할을 할 수는 없다. 한국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미국 등과 현실적인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워싱턴=글·사진 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세계일보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