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하지 않은 ‘스마트건설 R&D’


이복남 교수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와 산업계는 연구개발(R&D)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2016년부터 등장한 제4차 산업혁명이 과도하게 국내 전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진실보다 과다 포장돼 있다는 느낌이다.



건설도 예외가 아니다. 해외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국내 건설 산업체의 국제경쟁력 하락의 주원인으로 기술과 금융 저하를 지목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기술역량 강화를 위해 스마트 건설기술 개발을 선택했다. 스마트 건설기술 육성을 통해 글로벌 건설시장을 선도하겠다는 것이다. 스마트 건설기술 활용기반 구축을 통해 2025년까지 건설 생산성을 50%까지 향상시키는 목표를 내세웠다. 2030년까지 설계자동화도 목표에 담았다. 


스마트 건설기술 개발 목표가 스마트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기술과 법과 제도 인프라와의 관계 때문이다. 기술의 범용화는 법과 제도를 통해야 가능해진다. 기술 개발이 먼저 이뤄지고 나면 시장 적용을 통해 검증된다. 검증된 기술은 법과 제도를 통해 범용화 과정에 돌입하게 된다.




선진국의 건설은 ‘기술→제도→범용’ 사이클이 보편적이다. 국내는 ‘제도→기술→범용’ 사이클이다. 선진국의 법과 제도는 네거티브 방식이다. 국내는 포지티브 방식이다. 법과 제도에 언급되지 않은 기술을 적용하기 어렵다. 빌딩정보모델링(BIM)을 통해 스마트해 보이지 않는 예를 들어보자.


BIM은 글로벌 리더그룹이 건설 시장을 지배할 10대 미래기술에 포함시킬 만큼 파괴력이 큰 기술임에는 틀림없다. BIM을 10대 건설기술로 지목한 이유는 정보의 통합성과 사실에 가깝도록 사이버 공간에서 여러 가지를 시도해볼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구조물 체적의 최적화와 재설계·재시공을 거의 제로로 만들 수 있다. 동시에 다양한 공종 간 설계와 시공 간섭 문제를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시공 순서를 정밀하게 설계해 대기시간도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다.



BIM에 내재된 기술의 장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BIM이 활용될 수 있는 법과 제도 인프라가 고유 목적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BIM이 정보를 통합하기 위해서는 ‘기획→설계·엔지니어링→구매·조달→시공→유지관리’로 이어지는 절차가 동일 공간에서 통합될 수 있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국내법과 제도는 절차와 조직 및 책임이 분리돼 있다. 설계와 조달부서가 다르다. 설계와 시공은 계약 범위도 다르고 조직도 다르다. 설계정보가 공유되지 않는다. 시공과 유지관리는 완전히 다른 부서다. BIM 기술은 통합을 전제로 한 것인데 절차와 책임은 파편화 및 분산돼 있다. 


2025년까지 생산성을 50%까지 향상시키겠다는 목표도 스마트해 보이지 않는다. BIM을 스마트 건설기술 핵심에 포함시켰지만 현재의 법과 제도, 그리고 공공기관의 조직 운영방식으로는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 같다. 설계와 엔지니어링 업체는 BIM 설계 대가를 보상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내 한 단체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BIM 적용 대가를 받는다는 응답이 7%선임에 비해 보상받지 못한다는 응답이 93%에 이른다. 설계자 시각으로만 본다면 BIM을 도입하는 것은 분명 추가업무다. 반면 수요자 입장은 추가 비용부담일 뿐이다. 설계 이후 업무는 자신의 역할 및 책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BIM 설계는 시공 물량 최적화는 물론 시공의 편의성 증가와 재시공 방지 혜택을 가져다 준다. 조직과 책임이 파편화 및 분산된 현장에서는 부담과 혜택의 주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시공 혜택 못지않게 유지관리와 운용을 거의 자동화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기 위해서는 BIM, AR/VR, 자동화, AI 기술을 건설기술에 접목시키는 게 필수다. 포지티브 방식인 국내법과 제도 장벽을 넘어서야 가능한 환경이다. 



국토부의 건설기술의 스마트화는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임은 맞다. 하지만 국내 환경은 좋은 기술보다 허용 가능한 법과 제도, 그리고 공공기관의 조직 운영방식 혁신이 더 중요하다. 정부 한 부처의 소관을 벗어난 과제가 더 많다. BIM 운용기반 조성이 선행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숙제다. 스마트 건설기술 R&D에 상당한 재정이 투입된다. 목표하는 스마트 건설기술을 스마트 시장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국가 어젠다로 부상시켜야 해결이 가능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현실과 괴리가 분명한 사실을 외면하면서 스마트 혹은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에 휘둘리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BIM 전문가를 자처하는 국내 민간그룹도 이런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일정 금액 이상에 의무 적용하는 법은 사용자보다 BIM 기술 공급자만을 위한 일방적 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복남 교수] bkleleek@snu.ac.kr

대한전문건설신문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