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부산 초량동 적산가옥


[한은화의 생활건축] 살아남은 부산 초량동 적산가옥


   신축 중인 고층아파트 옆 옛집(사진 오른쪽)의 나이는 94살이다. 기이한 광경이다. 40층 규모의 아파트 세 동과 16층 오피스텔 한 동이 옛집을 둘러쌌다. 집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다. 부산 동구 초량3동 81-1번지, 등록문화재 제349호의 이야기다.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적산가옥(敵産家屋)이다. 1925년 지어졌다. 당시 한반도 철도부설 사업을 위해 토목회사를 운영하던 일본인 다나카가 지었다. 현재 소유주는 일맥문화재단이다. 부산 섬유산업의 토대를 이룬 태창기업의 창업주 고 일맥 황래성 선생이 75년 설립한 재단이다.

 

2007년 등록문화재가 되면서 옛집은 재개발 북새통에서 살아남았다. 황 선생의 외손자이자, 일맥문화재단의 최성우 이사장이 이 집을 붙들고 버텼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집이라고 했다. 그는 1942년생인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의 주인장이기도 하다.

 

집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됐을 때 문화재청은 “주변의 재개발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고립된 문화재로서 방치될 가능성이 있으니 종합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집은 고립됐고, 2여년의 아파트 공사 기간에 지반침하 등 각종 피해를 겪었고, 결국 세 동 중 한 동은 철거한 끝에 살아남았다.





만약 목조주택을 그대로 다른 곳으로 옮겼다면 어땠을까. 최 이사장은 “부산 동구청이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근대문화재 루트가 백제병원-일맥문화재단-정란각인만큼 집은 여기, 초량동에 있기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영국 출신의 지리학자 에드워드 렐프는 “장소의 혼과 장소감을 훼손하는 세계는 어떤 방식으로든 빈곤해진다”고 말했다. 초량동은 한국 근현대사의 곡절이 굽이굽이 담긴 동네다. 차이나타운과 일본 영사관, 텍사스 거리가 동시에 존재한다. 하지만 북항을 내려다보는 산복도로 아랫자락, 바다와 옛집을 가로막고 들어선 고층 아파트는 초량을 넘어 지금 부산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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