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학회 50년 역사상 최초 여성 회장..."탈원전 정책, 심각한 인력 유출, 기술 공백 발생"


"탈원전에 편견 개입…에너지엔 100점도 0점도 없다"

나현철 논설위원


민병주 원자력학회 회장 인터뷰

50년 만에 첫 여성, 민병주 원자력학회 회장


    민병주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은 자신을 ‘마이너리티 중의 마이너리티’라고 부른다. 여성 공학자론 드물게 핵물리를 전공했기 때문이다. 대학도 원자핵공학과가 있던 서울대나 한양대가 아닌 이화여대 물리학과를 나왔다. 그런데도 일본으로 유학 가 박사과정으로 핵물리를 전공했다. 귀국 후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입사했는데 2000여명에 달하는 직원, 특히 700명이던 박사급 연구원 중 유일한 여성이었다. 그런 그가 지난 9월 남성들이 독점하던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런 속도로 탈원전 정책 진행되면

연구 인력의 해외 유출과 기술 공백

한전 적자…전기요금 결국 올릴 것

“원자력, 섬 아닌 교류의 광장 돼야”


원자력학회 50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회장이 된 민병주 회장은 ’미비했던 안전문제를 강화해 원자력 분야가 믿을 수 있는 에너지원이 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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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이 학회는 회원 대다수가 남성이다. 31대를 거쳐 간 그동안의 회장도 당연히 남성들뿐이었다. 대전시 유성구 원자력학회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원자력 분야가 고립된 섬이 아니라 소통의 광장이 돼 제대로 된 원전 정책이 이뤄질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회장 취임을 축하한다.

“고맙다. 사실 선거는 지난해에 있었다. 수석부회장을 선출하고 그 사람이 1년 뒤 회장을 맡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난 9월 취임식을 했다. 협회 역사상 첫 회장 취임식이었다.”

 

50년간 취임식도 없이 회장을 이어왔단 얘긴가.

“정말 그랬다. 워낙 좁은 전공이고, 하는 일도 비슷하다 보니 일종의 닫힌 사회였던 거다. 고립된 섬이었던 거다. 그간 특별한 이슈도 없었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아무튼 이번 취임식엔 수학학회 등 이과 분야의 다양한 학회장들이 참석해 축하해주셨다.”

 

취임식을 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방금 얘기한 닫힌 사회의 문화를 깨고 싶었다. 고립된 섬이 아니라 외부와 활발히 소통하는 광장 역할을 하고 싶었다. 원자력 분야는 전공자들끼리는 말이 잘 통하지만 제삼자에게 설명하는 데엔 미숙하다. 그래서 탈원전을 반대해도 국민은 ‘밥숟가락 얘기네’하고 외면해버린다.”



 

원자력 분야가 계속 시끄러운데.

“탈원전 때문에 그렇다. 이번 정부 초기 공론화에서 신고리 5·6호기는 예정대로 짓고 경북 울진에 짓기로 한 신한울 3·4호기는 보류하기로 했다. 월성 1호기 가동 중단 문제도 지난주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논의하다 보류해버렸다. 원전 분야는 불확실성이 짙게 깔려 있다. 전기요금도 계속 얘기가 나오고 있지 않은가.”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원자력 학회가 이번 정부 초기부터 많이 반대해왔지 않나.

“학회장이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아쉽다.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원전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겠다고 하지만 여러 문제가 생기고 있다. 안정적 전력 에너지의 확보가 불안정하고 한전과 한수원에 적자가 쌓이고 있다. 무분별한 대체에너지 개발로 생긴 후유증도 많다. 에너지는 국가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전문가를 포함한 여러 이해 당사자들과의 토론과 합의를 통해 선택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런 얘기할 때마다 제삼자인 국민 입장에선 의문이 든다. 지금 있는 원전을 지을 때 국민에게 물어보고 지은 게 아니지 않으냐는 의문이다.

“사실 국민 여론을 소홀히 한 점이 있었다. 과거에 원자력을 지을 때는 국가가 안전보다는 경제적인 부분을 먼저 보고 전체적인 경제 발전을 위해 에너지 정책을 세웠다. 최근에는 국민이 후쿠시마 사고 나고 경주나 포항 지진이 나면서 국민의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니 그거에 대한 논의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또 원전 건설에는 인허가라는 법적인 절차가 걸려 있다. 일단 내줬는데, 이걸 바꾸려면 안전에 중대한 문제가 있어야 한다. 이미 법적으로 안전하다고 해서 건설 허가를 내준 발전소를 중단시키는 건 법적인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그걸 중단하고 싶다면 법을 바꿔야 한다. 대만 같은 경우는 이런 절차를 다 거쳤다.”



 

탈원전의 영향을 많이 느끼나.

“물론 교수나 연구원 등 회원 대다수에겐 아직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인력 문제가 당장 걱정이다. 이런 속도로 탈원전 정책이 진행되면 전문 연구 개발 인력이 해외로 유출돼 기술 공백이 생기고, 기초인력 공급 부족으로 원전 안전운영과 안전관리에도 지장을 주게 된다. 또 관련 부품과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들이 사라져 원전 정비 및 보수에도 지장을 줄 수 있다. 최근 열렸던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 참석자들도 이런 부분에 대한 우려가 컸다.”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세상에 완벽한 에너지는 없다. 장단점을 두루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 신재생 육성은 너무 빠르고 비용도 많이 든다. 어떤 에너지가 우리 사정에 가장 맞는지, 가장 지속 가능한지를 기준으로 정권을 넘어선 긴 정책을 펴야 한다.”

 

원자력은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사용 후 핵연료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맞다. 하지만 뾰족한 다른 대안이 없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전력 공급을 위해서 원자력을 유지하되 안전에 대해서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원전 비중은 가계와 기업이 항상 쓸 수밖에 없는 최소량(기저전력) 수준이면 어떨까 싶다. 대신 원자력학회도 노력하겠다. 




그동안 공급 확대를 위해 선행주기 연구에만 치우쳤는데 이제 폐기물 같은 후행주기를 어떻게 할지를 더 연구해야 한다. 나는 10년 전부터 이 부분에 대해 준비하자고 제안했는데 당시에는 안 먹혔다. 지금 좀 늦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이라도 후행 주기와 관련된 논의를 하자고 얘기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한쪽은 발달해있고 한쪽은 발달하지 않은 불균형 상태다. 균형 잡혀 끌어올리자. 원자력을 죽이기보단 균형을 잡아서 선순환 구조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앞으로의 원전 정책은 어때야 할까.

“탈원전 정책엔 분명히 문제가 있다. 세상엔 100점짜리 에너지도, 0점짜리 에너지도 없다. 모두가 장단점이 있는데 이를 판단하는 기준이 시대에 따라 바뀐다. 원전에 대한 시각도 동일본 대지진과 경주·포항 지진으로 많이 바뀌지 않았나.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장단점을 판단하고 국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관련 전문가를 포함한 국민이 종합적으로 판단해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탈원전은 에너지에 대한 점수를 매기는 단계부터 편견이 개입돼 있다. 정부가 아니라 이해당사자들의 토론과 합의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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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국감에서 한전 사장이 “전기요금을 당분간 올릴 계획이 없다”고 했는데.

“결국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전이 언제까지 적자를 끌어안고 갈 순 없다. 그럼 미래 투자를 못 하고 국가 에너지 공급에 문제가 생긴다. 요금 부담 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용을 빼고 올려야 한다고 본다.”

 

앞으로 학회를 어떻게 이끌고 싶은가.

“학회가 사회적 갈등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고 오로지 과학·공학적 사실에 근거해 국민과 소통하도록 하고 싶다. 그래서 국민이 ‘원자력학회 말이라면 신뢰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힘쓰겠다. 그동안 원자력계가 원전 절차서 미준수, 원전 운전자 조작 미숙, 품질 서류 위조사건, 핵종 분석 오류 같은 문제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원자력이 다시 신뢰를 얻고, 원자력학회도 발전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하겠다.”

 

외부에 알릴 만한 학회의 변화가 있나.

“우선 여성 비율을 대폭 늘리고 있다. 공학계 학회라 여성이 너무 적다. 5400여 회원 중 여성은 10%도 안 된다. 하지만 국회 격인 평의회에는 258명 중 20명이다. 부회장 등 임원 중에선 24%까지 높아진다.” 

나현철 논설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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