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해외건설 수주 전략…"저유가시대 생존과 직결"


  건설업계 해외 사업 수주 전략이 진화하고 있다.

글로벌 건설사가 독식하던 플랜트 사업에 원청으로 참여하는가 하면, 이른바 선진국형 사업 모델이라 불리는 투자개발사업에 뛰어드는 회사도 잇따르고 있다.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회사 덩치와 수주 잔고를 불리기 위해 국내 건설사끼리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저가 수주현장을 일괄 도급방식으로 수주한 것과 비교하면 해외 사업 전략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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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해외에서 설계·조달·시공(EPC) 턴키 공사를 주로 수주하며 프로젝트관리에 실패해 엄청난 손실을 본 국내 건설사들이 최근 투자개발형 등으로 사업 모델을 틀었다. /조선일보DB

지분참여 투자에 원청 수주까지
건설업계에 따르면 GS건설은 이달 터키 이스탄불에서 약 14억달러(1조7000억원)짜리 ‘제이한 PDH-PP 프로젝트’에 주요 투자자로 참여한다. 터키 아나다주 제이한 지역에 석유화학단지를 짓는 프로젝트다. 기존 설계·조달·시공(EPC) 단순 도급방식이 아닌, 지분 참여형 투자 사업으로 앞으로 운영수익까지 확보하는 구조다. 터키 르네상스 홀딩스의 자회사인 CPEY 지분 49%를 인수하는 주주계약을 체결했다.



GS건설은 기본설계(FEED)와 EPC, 운영수익까지 추구하는 투자형 개발사업에 물꼬를 트게 됐다. 투자개발형 사업은 사업개발과 지분투자, 제품구매, 설비운영 등 사업 전 과정에 참여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우건설은 미국과 유럽, 중국 등 일부 글로벌 건설사가 독점한 플랜트 EPC 시장에 원청회사로 들어간다. 회사는 지난 9월 나이지리아 액화천연가스 트레인(LNG Train 7)의 EPC 원청 우선협상 대상자 지위를 인정받는 낙찰의향서를 받았다. 설계 등 원천 기술력 부족과 하청업체 관리능력 부재로 플랜트 EPC는 국내 건설사의 영역이 아니라고 여겨졌던 시장이다.

나이지리아 LNG 트레인 7은 1년에 800만톤의 LNG를 생산할 수 있는 플랜트와 부대시설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대우건설은 이탈리아 사이펨, 일본 치요다와 조인트벤처를 구성하여 설계, 구매, 시공, 시운전 등 모든 업무를 원청으로 공동 수행할 예정이다.

민간협력사업(PPP)도 최근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영국과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적극적이지 않았던 분야다. SK건설은 6월 영국 런던에서 올해 첫 개발형 사업인 런던교통공사(TFL)의 실버타운 터널 사업을 수주했다. PPP란 민간의 재원과 전문성을 활용해 경제·사회 인프라를 구축하고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정부와 민간의 협력 모델을 말한다.




생존과 직결된 사업 다각화
국내 건설사는 그동안 해외에서 일괄 도급방식, 이른바 EPC 턴키 공사를 맡는 경우가 많았다. 설계와 조달, 시공을 모두 한 회사가 맡는 것이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5년까지 도급형 수주비중은 96.6%에 달했지만, 투자개발형은 3.4%에 불과했다. 기본적으로 시공사가 부담하는 위험이 클 수밖에 없었고, 대부분 경쟁입찰 방식이라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예기치 않은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경우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도 잦았다.

최근 국내 건설사의 해외사업 모델이 바뀌는 건 생존과 직결돼 있다. 2014년부터 호황을 누리던 국내 주택시장이 정부규제로 급속하게 꺾이며 일감이 줄고 있다.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도 워낙 경쟁이 치열해 대형 건설사로서도 결코 만만한 시장이 아니다.

해외사업으로 다시 눈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저유가 시대에 전통의 수주 텃밭이었던 중동은 예전처럼 넉넉한 발주처가 아니다. 실제로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동 수주금액은 92억달러로 전년보다 37% 줄었고, 올해 초부터 이달 9일까지도 43억1100만달러에 그치며 전년 같은 기간보다 43% 줄었다. 인프라 개발이 필요한 중남미나 아시아 등을 공략해 사업을 다각화하는 것이 오히려 장기적으로 생존에 유리한 상황이 됐다. 어떻게 보면 2013년 이후부터 본격화된 실적 악화가 득이 된 부분도 있다. 출혈경쟁을 지양하고 견실하고 수익성 높은 사업을 수주하자는 건설업계 공동의 목표를 갖게 되면서 최근 그 결실이 나타난 것이다.

GS건설의 터키 제이한 프로젝트 계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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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홍 건설산업연구원 미래기술전략연구실 실장은 "해외 건설시장에는 돈 많은 산유국 발주처만 있는 게 아니라, 돈은 없지만 인프라가 필요한 저성장 국가도 많다"며 "이런 나라들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려면 PPP나 투자개발형 사업이 필요하고 국내 건설사도 이런 수요를 쫓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럽 선진국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중남미, 아시아 등은 투자개발형 사업 요구가 많아 시장을 다변화하려는 차원에서 국내 건설사들이 관심을 가져볼 만한 지역"이라며 "운영기간을 포함하면 길게는 25년 이상 이어질 수 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사업 수주 결정이나 전략 등을 유연하게 가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진혁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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