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뒤덮은 위험한 낙관론

한국을 뒤덮은 위험한 낙관론

일본은 공부 모임 만들어 상대 국가 깊이 분석하는데
한국에선 日 기술·행정보다 관광·음식에만 관심

이하원 도쿄 특파원


    지난달 한·일 관계에 관심이 많은 일본 지식인들의 벤쿄카이(勉强会·공부 모임)에 초대받았다. 휴무(休務)인 토요일에 열린 모임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했다가 금세 자세를 가다듬어야 했다. 발표자가 "일본은 약속을 중시하는 반면 한국은 정의가 중요하다"며 양국을 비교 분석하자 참석자 20여 명은 깨알 같은 글씨로 메모했다. 문재인 정권과 한국 사회에 대한 분석에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하는 모습엔 긴장감마저 느껴졌다. 한 참석자는 어디서 들었는지 "난난갓토(남남갈등·南南葛藤)가 무슨 뜻이냐"고 기자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얼마 전 도쿄의 한 신문사에서는 서울 특파원으로 파견됐던 중견 기자의 사내 특강이 열렸다. 문 대통령은 누구인지, 한국의 집권 세력은 어떤 이들인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가 많아 기자들과 직원들을 상대로 벤쿄카이를 연 것이다.

1년 전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로 양국 관계가 '정치적 단교'에 이른 후 일본 사회에는 한국 공부 붐이 일고 있다. 최근 NHK 도 아닌 민영 상업방송이 주말 황금시간대에 한·일 관계를 2시간 동안 다룬 것은 이런 현상의 방증이다. 일본의 주간지, 월간지에는 요즘 한국 관련 기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 분위기가 과열돼 자극적인 혐한(嫌韓) 기사로 연결되는 부작용도 나오고 있다.

도쿄의 한국 특파원들은 일본인들을 만날 때마다 한국의 현 상황을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고 있다. 그 덕분에 기자는 한동안 일본에서는 생소한 '세키헤이세산(적폐청산·積弊淸算)'의 뜻을 자주 설명해줘야 했다.

일본의 대학생 10여 명을 만나 얘기할 때였다. 간담회를 마치면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이메일을 보내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세 명으로부터 한국 국회의원의 일본에 대한 관심, 한국 젊은이들의 정치 참여 등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을 받았다.



최근 한·일의 상황을 비교하자면 일본 사회는 한국 연구에 몰두한 반면, 한국은 일본 비난에 더 많은 힘을 쏟는 것처럼 보인다. 아베 정권으로부터 초유의 경제제재를 당하면서도 일본을 알려고 하는 분위기보다는 청와대의 주도로 일본을 비난하고 접촉을 차단하는 '쇄국(鎖國)'으로 맞서는 것 같다. 더욱이 한국 사회는 신임 법무부 장관 조국 관련 파문이 커지면서 한·일 관계가 관심사에서 벗어나 버린 것은 아닌지….

"일본은 약속을 중시하는 반면 한국은 정의가 중요하다"

벤쿄카이(勉强会·공부 모임) 안내문/yomipo.yomiuri.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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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 사무총장으로 서울에 부임한 일본 외교관 미치가미 히사시(道上尙史)는 이런 상황을 분석해 '문예춘추' 최근호에 기고했다. 그는 '한국을 뒤덮은 위험한 낙관론의 정체'라는 글에서 한국에서는 이제 일본을 공부하는 분위기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한국인에게) 관광 음식의 대상이 돼버렸다"며 "과거처럼 상대방 일본의 산업기술 법률 행정 학문 패션에 대해 열심히 연구해서 배우는 것은 대폭 줄었다"고 했다. 미치가미는 서울대 유학 후 주한 일본 대사관 참사관·공사, 부산 주재 총영사로 10년간 근무한 한국 전문가라는 점에서 그의 관찰은 아프게 다가온다.



조선 시대 이후 한·일 관계를 결정지은 것은 상대 국가에 대한 연구였다. 일본에서는 임진왜란의 치욕을 다시는 반복하지 말자는 뜻에서 유성룡이 기록한 징비록(懲毖錄)을 번역해 읽었지만 조선 왕조는 이를 금서로 지정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전후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조선을 연구한 후 정한론(征韓論)의 토대를 만들었지만 우리는 '왜놈'이라고 비하하며 일본을 비난하는 데 그쳤다.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데 지금도 그런 역사가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조선일보 이하원 도쿄 특파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06/20191006018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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