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간(八姦)과 망국(亡國) 10조 [김홍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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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간(八姦)과 망국(亡國) 10조

2019.10.07

팔간(八姦)이란 말이 논객들의 글에 가끔 등장하곤 합니다. 팔간은 한비자(韓非子 BC 280~BC 233)가 나라를 망칠 수 있는 8가지 유형의 간사한 무리를 국정 지도자가 경계해야 한다는 고언입니다. 이 말이 클로즈업된 이유는 조국 법무부 장관이 노무현 대통령 취임 즈음인 2003년 2월 26일 중앙일보에 투고한 칼럼 ‘팔간을 경계하십시오’라는 간언 때문입니다. 읽어보니 참으로 나라의 발전과 국가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충정이 서려 있는 간청이었습니다. 팔간은 이런 것들입니다.

▵동상(同床)- 영부인 자녀 며느리 사위 등 잠자리를 같이하는 자
▵재방(在旁)- 대통령의 복심, 입속의 혀 같은 측근
▵부형(父兄)- 오랫동안 아버지나 형님처럼 따랐던 대신정리(大臣廷吏)
▵양앙(養殃)- 대통령의 기호나 욕망을 만족시키려 자력(資力)을 동원하는 자
▵민맹(民萌)- 공공의 재화를 뿌려 자신의 위세를 넓히려는 자
▵유행(流行)- 국민의 소리 전달 미명으로 자기 이익을 관철하려는 자
▵위강(威强)- 대통령 위세를 빌려 파당을 만들고 이익을 취하려는 자
▵사방(四方)- 주변 대국의 위세를 빌려 군주를 이끌려고 하는 자

당시 서울대에 재직했던 그는 ‘노무현 대통령 귀하’ 제목의 이 글에서 “새 정부가 밝힌 10대 국정과제가 현 단계의 우리 사회 혁신을 위해 온전히 실현되기를 고대하는 사람 중의 한 명으로, 한비자가 군주에게 악이 되는 여덟 가지 장애로 열거한 팔간의 문언을 빌려 고언을 드리고자 한다”고 시작해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엄중하기 때문에 대통령을 위시해 정부와 당에 포진해 있는 집권세력 전체가 항상 자경자계(自警自戒)해야 한다”라고 끝을 맺었습니다. 구구절절이 우국일념에 젖어 있던 그가 16년 뒤엔 왜 ‘가장 부끄러운 서울대 동문’ 1위에 올랐는지 궁금합니다.

# 왕의 위세를 빌린 견강부회는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한비자는 중국 전국시대 때 강력한 법치로 부국강병에 이어 통일천하를 이룬 진(秦)나라의 3대 법가(法家) 중의 한사람입니다. 요즘 세태에 견주어보면 한비자의 설파(說破) 중에는 팔간 경계론보다 ‘나라가 망하는 10가지 징조’론이 더 돋보입니다. 10가지 망국 징조 가운데 8가지를 추려보았습니다.

▵법은 소홀히 하고 내치를 어지럽게 만든다
▵선비들은 논쟁만 즐기고, 상인들은 나라 밖에 재물을 쌓아 둔다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의 의견만 받아들인다
▵간언은 듣지 않고 자신이 좋다고 판단하는 일만 한다
▵다른 나라와의 동맹만 믿고 이웃 적을 가볍게 생각하며 행동한다
▵나라가 혼란해도 자신은 재능이 많다고 여긴다
▵아는 사람만 등용하고 국가에 공헌한 사람은 무시한다
▵백성은 가난하고 국고는 빚더미인데 세력가의 창고는 그득하다

한비(본명)는 이런 징조가 있는데도 군왕이 형(刑)과 벌(罰)을 엄격하고 공정하게 집행하지 않으면 그 나라는 망한다고 단언했습니다. 눈을 씻고 봐도 하나 틀린 말이 없습니다. 군왕은 피눈물 나는 자기성찰을, 신하는 인륜을 뛰어넘는 공결(公決) 공도(公道) 공리(公利) 공심(公心) 공의(公義)를 앞세워야 한다는 경종입니다.

3대 법가로는 한비와 함께 상앙(商鞅), 이사(李斯)를 꼽습니다. 맨 먼저, 효공(孝公)에게 발탁된 상앙은 공론화 과정을 거쳐 왕족도 예외가 없는 엄격한 법령을 만들어 부유하고 강한 나라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본명이 공손앙(公孫鞅)인 그는 공로를 인정받아 상 땅을 다스리는 상군(商君) 자리에까지 올라 상앙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피 다 뽑은 논 없고, 도둑 다 잡은 나라 없다”는 속담도 있지만, 당시 진나라에는 도둑이 사라지고, 길에 놓아 둔 물건을 주워가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 자신이 지키지 못하는 법은 자신을 해치는 비수

그러나 상앙의 말로는 비참했습니다. 왕이 바뀌자 왕족 세력의 탄핵으로 국외 탈출 도중 함곡관 아래 한 여관을 찾았습니다. 그의 얼굴을 모르는 여관 주인은 “상군의 법에 여행증이 없는 자를 유숙시키면 처벌 받는다”며 숙박을 거절했습니다. “아, 법의 폐해가 나에게까지 이르렀구나!” 탄식과 함께 상앙은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기대를 걸고 원래 조국인 위(魏)나라를 찾았으나 ‘배신자’로 낙인 찍혀 도로 진나라로 잠입했습니다. 옛 부하들을 모아 곳곳에서 소요를 일으키다 살해된 그를 혜왕(惠王)은 새삼 거열형(車裂刑)에 처했습니다. 상군 일가도 멸족당했습니다.

한비를 모함해 죽임을 당하게 한 이사는 분서갱유(焚書坑儒)의 철권법령으로 마침내 중원을 통일하고, 진왕을 황제의 지위에 오르게 했습니다. 자신은 최고위 직인 승상(丞相) 자리에 오르고, 집 앞은 늘 장 마당같이 벼슬아치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시황이 급서하고, 환관 조고(趙高)가 주도한 유서 날조와 후계자 바꿔치기에 연루된 후 나락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조고의 농단에 이사는 2세 황제 호해(胡亥)의 미움을 사 저잣거리에서 허리를 베여 죽고, 삼족이 멸망을 당했습니다.

남을 해치려는 법, 자신의 명리를 꾀하는 법,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법은 언제나 자기를 찌르는 비수가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2,000년이 넘은 역사의 교훈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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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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