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彼我)구분이 중요한 사람들 [임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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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彼我)구분이 중요한 사람들

2019.09.30

최근의 조국 사태 아래에서 언론인 출신의 친지 한 사람으로부터 들은 말 한마디가 줄곧 뇌리를 맴돌았다. 그가 요즘 조국 장관 옹호에 열을 올리고 있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의견이 엇갈리는 대목에서 유 씨는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언론인에겐 옳고 그름이 중하지만 우리에겐 피아 구분이 중합니다.”

조국 사태에서 조 장관 지지 세력들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다. 9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조 장관 비리혐의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에 대해 경고성 메시지를 내는 것을 보면서 그런 세력의 중심에 문재인 대통령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조국 사태가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는 그런 세력들이 입으로는 정의를 부르짖지만 그 정의는 편협하고 자의적이고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정의는 내편의 것일 때만 그렇지 상대의 정의는 불의가 된다. 그런 사고의 틀 속에서 나오는 말이니 그 말은 곧 궤변이 되는 수가 많다.

유 씨의 최근 궤변 중의 백미는 조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를 엄호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정 교수가 동양대에서 사용하던 컴퓨터를 반출해 하드웨어를 교체를 한 것이 검찰의 증거 조작 가능성에 대비해 컴퓨터의 문서를 미리 복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정 교수에 대한 구속 영장발부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정상국가라면 발부가 안 돼야 하는데 발부 가능성이 50%나 된다고 했다.

그는 동양대 안에서 얼마든지 가능했을 컴퓨터의 파일 복사를 굳이 밖으로 들고 나와서 한 것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의구심을 조롱했고, 검찰 외에 법원까지 겁박하려는 자세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공권력을 죄악시하는 그의 시각이다. 그는 검찰을 증거를 조작할 수 있는 범죄 집단쯤으로 간주하고 있고, 법원이 정 교수에 대한 영장을 발부하면 비정상적인 나라가 되는 양 말하고 있다.

국가권력을 죄악시하는 것은 운동권 사람들에게 체질화된 사고방식이긴 하다. 민주당 의총에서 나왔다는 검찰 고발론도 같은 맥락이다. 법을 어기는 것이 영웅적인 행동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다. 권력을 장악했음에도 그런 것 같다.

이들 세력 중에는 이념의 진화가 운동권 시절에서 멈추었거나, 장악한 권력의 운용방법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경력도 있는 유 씨는 그런 부류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으나, 피아 구분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국가의 기능을 일부러 외면한 것일 수는 있다.

집권세력의 대표주자의 한사람으로 ‘강남 좌파’를 자처하는 조 장관의 발언들은 매우 교묘하고 현란하다. 그가 남을 비방하고 조롱했던 말들은 자신에 대한 비방과 조롱으로 되돌아 왔다.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도 부끄러워 남 앞에 서기가 민망할 일임에도 그는 국가의 정의의 보루여야 하는 법무장관을 하겠다고 자신의 표현대로 ‘죽을 힘’을 다하고 있다.

그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갖고 있는 무기는 두 가지로 여겨진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언행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하고, 법적으로 책임질 사안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달변의 법학교수인 그는 법이나 말로 자신을 이길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는 최근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핵심적인 위법 여부를 가리게 될 사모펀드에 관해 “그것은 검찰과 자신의 아내가 다툴 일이고, 사법절차로 가려질 일”이라고 했다. 이는 자신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자신의 아내가 구속되더라도 대법원 확정판결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장관직 수행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말로 들린다.

필자는 문 대통령이 조국 장관을 지명했을 때 여론의 추이를 보아 지명을 철회할 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었다. 문 대통령이 다수의 반대여론에도 아랑곳없이 임명을 강행했을 때 그런 기대가 얼마나 어리석었나를 알았다. 문 대통령이 조 장관을 엄호하고 검찰에 경고하는 내용의 메시지를 던지는 모습에서 조 장관이 버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이들 세력이 잊고 있는 것이 있다. 박근혜대통령 탄핵수사를 한 것이 바로 지금의 윤석렬 검찰이라는 사실이다. 당시 검찰은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생중계하듯 매일 기자들에게 브리핑했다.

그냥 브리핑을 한 게 아니다. 박 대통령에 대해 “범죄의 증거가 차고 넘친다”거나 “범죄 내용을 밝히면 촛불이 횃불이 된다”는 등 선동적인 언사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 때 검찰의 수사방식에 환호를 보냈던 현 집권세력이 조 장관 수사에서 검찰의 인권억압과 피의사실공표를 문제 삼고 있다. 반면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일부 야당들이 검찰수사의 응원세력이 되어야 하는 작금의 현실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조국 사태는 조만간 결말이 날 것이다. 집권세력에 불편한 수사를 벌이던 검찰총장을 몰아냈던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을 당했다. 그런 대통령이 다시 나와서는 안 된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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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일요신문 일요칼럼,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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